책소개
불상 제작자인 함묘진의 두 제자 동연과 서연은 불상 제작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동연이 완벽한 부처 형태에 부처의 마음도 깃들 수 있다고 믿는 데 반해 서연은 불상의 외형보다는 불상이 담고 있어야 할 부처의 마음을 중시한다. 서연은 진정한 부처의 마음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고, 동연은 함묘진의 후계자가 되어 함묘진의 딸인 함이정과 결혼하고 세속적인 성공도 거둔다. 그러나 함묘진이 세상을 떠나자 함이정은 동연을 떠나 서연을 찾아가고, 그녀는 서연과 함께 돌부처를 만들며 들판을 헤매다가 서연의 임종을 지킨다.
이 작품에서 동연과 서연이 형식과 내용, 형태와 정신의 대립 쌍으로 기능한다면, 함묘진, 함이정, 조숭인은 양 극단을 매개하는 기능을 한다. 육신의 아버지인 동연과 정신적 아버지인 서연 사이에서 번민하던 조숭인은 서연의 장례식장에서 어머니 함이정과 함께 과거를 되짚어 가며 두 사람의 가치관을 통합하고자 한다.
1998년 5월 ≪한국연극≫에 발표했으며, 같은 해 5월 22일부터 6월 14일까지 제22회 서울연극제에 출품, 이윤택 연출로 토월극장에서 공연했다. 이 공연으로 서울연극제 대상과 희곡상, 연출상, 신인여자연기상, 무대예술상을 수상했다.
200자평
불상 제작을 둘러싼 두 인물의 갈등을 통해 형식과 내용이라는 예술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지은이
이강백은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1970년대 억압적인 정치·사회 상황에서 권력의 폭압성을 알레고리 장치를 통해 상징적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1982년 동아연극상, 1983년 한국희곡문학상, 1985년 베네수엘라 제3세계 희곡경연대회 특별상, 1986년 대한민국문학상, 1996년 대산문학상, 1998년 서울연극제 희곡상, 2000년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이강백 희곡집≫(전 7권, 평민사)이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파수꾼>, <영월행 일기>, <느낌, 극락 같은> 등이 있다.
차례
공연을 위한 작가 노트
나오는 사람들
느낌, 극락 같은
<느낌, 극락 같은>은
이강백은
책속으로
조숭인: 제 육신의 아버지는 지금도 어머니를 용서 안 해요. 어머니가 집을 나가신 후에, 아버지는 분노에 떨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 에미는 그놈에게 갔다! 나하고 결혼해 살면서도 서연이라는 그놈을 그리워하고 있었어!” 그리고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넌 이상한 놈이다! 육신은 나를 닮았는데, 생각하는 건 꼭 그놈을 닮았어!” 저는… 그런 말이 듣기 싫었어요. 이 세상의 그 어떤 욕설보다 더 듣기 싫었고… 그러면서도 저는 듣기 좋았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칭찬보다 그분을 닮았다는 소리가 듣기 좋았죠. (무릎걸음으로 목관에 다가가서 어루만진다.) 제 정신의 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육신의 아버지가 그토록 미워하던 분을 만나 보고 싶었는데… 유감이군요. 이제는 살아 계시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