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하늘과 땅을 감동시킨 두아의 원통함(感天動地竇娥冤)’, <두아 이야기>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며 사는 청상과부 두아가 불량배에 의해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는다. 이후로 그 지역에 3년 동안 가뭄이 들고, 결국 염방사가 되어 부임한 아버지에 의해 잘못된 판결이 바로잡혀 두아의 한이 풀린다. 두아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두천장(竇天章)에 의해 빚 대신 민며느리로 팔려가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는 청상과부가 되고, 돈을 노리고 접근한 장여아(張驢兒)에게 혼인을 강요당하다 그의 계략에 걸려 살인 누명을 쓰고, 탐관오리의 불공정한 재판을 받고 결국 참수형을 당하는, 기구한 운명의 여자로 묘사된다. 그녀는 건달패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낯선 남자에게 의존하려 하는 시어머니를 비난하며 피가 튀고 살이 터지는 온갖 고문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가 강한 여성이지만, 시어머니가 고문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거짓 자백을 하고 시어머니가 가슴 아플까 봐 형장에 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여성이기도 하다. 그녀를 괴롭힌 것은 표면적으로는 악랄한 건달패, 탐관오리였지만 근본적으로는 돈과 권력이 최고인 세상, 선한 자가 보상받지 못하고 악한 자가 활개를 치며 법 집행이 불공정해 ‘백성들이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포대제가 지혜로 노재랑을 참수하다(包待制智斬魯齋郞)’, <악한 노재랑>
황제의 비호를 받는 무소불위의 세도가 노재랑이 두 가정을 파괴한다. 15년 후 포대제가 ‘노재랑(魯齋郞)’에서 획 몇 개를 빼 ‘어제즉(魚齊卽)’으로 이름을 살짝 고쳐 황제로부터 허가를 받아 그를 처형한 뒤 흩어졌던 두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한다는 내용이다. 노재랑은 천하의 난봉꾼으로 관직을 수행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백성들을 등쳐먹는 잔인무도고 탐욕스러운 인간이다. 그의 비뚤어진 소유욕의 결정체가 ‘남의 마누라 뺏기’다. 이사의 처를 빼앗았다가 싫증나자 다시 장규의 처를 빼앗고 장규에게는 이사의 처를 ‘하사’한다. 부부가 본의 아니게 헤어지게 되면서 그 아이들도 흩어지고 장규는 출가승이 되는 등, 그야말로 양쪽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데 그 와중에 아이들을 거두어 돌봐준 것은 바로 포청천[包靑天, 포대제(包待制)]이다. 그는 15년 동안 아이들을 교육해 과거 급제까지 시키고 묵묵히 때를 기다리다가 황제의 눈을 속이는 기지를 발휘, 천하의 악한 노재랑을 처형한다.
200자평
<두아 이야기(竇娥冤)>와 <악한 노재랑(魯齋郞)>은 중국이 ‘중국의 셰익스피어’라 자부하는 희곡 작가 관한경이 쓴 원대(元代, 1279∼1368)의 희곡이다. 원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관한경의 대표작 중 원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회성이 짙은 두 작품을 엮었다.
지은이
중국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관한경(關漢卿, 13세기 중반에 활동)은 원대(元代)의 희곡작가로 호가 기재수(己齋瘦)이며 대도(大都, 지금의 北京)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불행히도 자세한 삶의 역정은 알 수 없다. 중국 역사상 한족(漢族) 지식인이 가장 천대받았던 몽고족 치하 원나라에서 관한경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극의 길로 들어섰던 것으로 보인다.
원대의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는 그는 극본 창작에서 무대 연출, 연기에 이르기까지 연극의 전 과정에 참여했던 진정한 전문 연극인이었으며 중국 희곡사상, 첫 번째 황금기를 주도한 대표 작가였다. <두아 이야기>를 비롯한 그의 대표작들에는 불합리한 사회에서 고통 받는 서민과 여성들에 대한 동정, 연민이 묻어나며 풍자와 해학, 기지가 넘쳐난다.
옮긴이
하경심(河炅心)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중국 고전희곡을 전공했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맹칭순(孟稱舜) ≪교홍기(嬌紅記)≫의 비극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서로는 ≪중국연극사≫, ≪곽말약 희곡선≫, ≪전한 희곡선≫, ≪하연 희곡선≫, ≪진백진 희곡선≫(공역)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우언과 꿈-명청인들의 희곡관 탐색>, <한중(韓中) 관극시고>, <원곡에 나타난 여성형상 연구>, <반지항(潘之恒) 연극론의 이해>, <유희와 진정-유정신(劉廷信)의 산곡세계>, <산곡을 통해 본 원대 문인의 자화상>, <중국 전통극의 결말처리에 관한 소고> 등 중국 고전희곡과 산곡(散曲), 한중비교문학에 관한 논문이 있다.
차례
두아 이야기
악한 노재랑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노재랑: 소관(小官)은 노재랑이오. 수년간, 조정에 몸담아 황공하게도 성은을 입어 이 자리를 제수받았지. 한데 작은 관직이 못마땅해 집어치우고, 말라비틀어진 말이 싫어 안 타고, 행차할 땐 문신한 건달패 거느리고, 탄궁에 끈끈이 막대 들고, 잡새 잡는 새매 새끼들 데리고 다닌다오. 매일같이 매 날리고 개 앞세워 사냥이나 하고 거리나 쏘다니지. 누군가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나한테 없다는 건 안 될 말! 한 사흘 빌려서 실컷 가지고 놀고 나흘째 되는 날 망가뜨리지도 않고 그대로 돌려주지. 준마에 멋진 안장 가진 사람이 있으면, 사람을 시켜 끌고 와 한 사흘 타고, 나흘째 되는 날 다치게도 않고 그대로 돌려준다오. 그러니 난 본분은 지키는 사람이라는 말씀! 변량(汴梁)을 떠나 이곳 허주(許州)로 왔는데 말을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은장포에서 괜찮은 여자 하나를 봤지. 좀 자세히 보려는데 그놈의 말이 빨리 달리는 바람에 잘 못 봤수다. 장용아, 넌 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