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작품에서 연산은 잠들면 자신의 아명(兒名)을 부르는 폐비 윤씨의 목소리와 환영에 시달리는 꿈을 꾸고, 잠에서 깨면 어린아이처럼 녹수에게 위로를 받는 감상적이면서도 나약한 인물이다.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리던 연산은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를 위해 제를 지내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신하들은 연산의 말을 무시하고, 결국 연산은 궁궐 내에서 어머니를 죽게 만든 이들을 살육한다.
연산의 행위가 정당하게 비춰지는 것은 그를 둘러싼 고통과 좌절을 집중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밤마다 찾아오는 어머니의 혼령, 자신의 말보다 선왕과 공자 말씀을 더 따르는 신하들,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이들의 뻔뻔함이 모두 연산이 폭군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제시된다. 조선의 왕이고자 했지만 선대 법도와 공자의 그늘, 신하들의 반대에 가려 좌절하는 연산의 모습은 개인적 비극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체적일 수 없었던 연산의 비극은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었던 한국 현대사와 겹치면서 역사적 비극으로 확장한다. 1995년 이윤택 연출로 극단 ‘유’의 창단 공연으로 초연해 같은 해 동아연극상 대상, 희곡상, 남자연기상, 무대미술상과 대산문학상 희곡 부문,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200자평
폭군으로 알려져 있던 연산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해 어미를 잃은 아들, 제의를 주재하는 무당으로서 연산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연산군이 현재와 같은 평가에 이르게 된 이유를 개인의 성향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신하들, 성왕의 그늘에 가려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던 왕으로서 문제가 겹친 고뇌에서 찾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지은이
이윤택은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 방송통신대를 거쳐 ≪부산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1986년 기자 생활을 접고 연희단거리패를 창단, 부산 중구 광복동에 가마골소극장을 열면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 지역 극단으로서는 최초로, <시민 K>, <오구: 죽음의 형식> 등을 서울 무대에서 선보이면서 실험적 연극의 기수로 등장했다. 창작극을 집필, 연출하는 것 외에도 시나 소설 등을 연극으로 재창작하거나, 외국 희곡을 우리 정서에 맞게 재해석하는 등 독특한 상상력이 가미된 무대를 선보여 왔다. 또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도솔가>, <천국과 지옥>, <이순신> 등 뮤지컬 연출과 제작을 통해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발전시켰다. 1999년부터 밀양연극촌에서 연극 공동체를 운영하며 연극에 대한 고찰과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시민 K>(1988), <오구: 죽음의 형식>(1989), <문제적 인간, 연산>(1995),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1995)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무대
1막
2막
3막
<문제적 인간, 연산>은
이윤택은
책속으로
연산: (반정군들을 본다.) 호호, 알고 보니 모두 그놈이 그놈들이로구나 (돌아서며 크게 웃는다. 문득 돌아본다.) 이 역사는 누가 기록하느냐?
성희안: 내가 기록하오
연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틀렸군, 다 틀렸어! 너네들 붓끝에 놀아나는 세상, 나는 미친 광대였노라 핫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