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박재삼은 1933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해 4세 되던 해 어머니의 고향인 삼천포로 이주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삼천포 바다는 그의 시에 나타난 ‘물’, ‘눈물’, ‘빛나는 삶’, ‘죽음’, ‘설움’ 이미지의 원천이 되었다. 1953년 ≪문예≫에 <江물에서>가 추천을 받았고, 1955년 ≪현대문학≫에서 서정주와 유치환에게 추천을 받아 본격적인 문단 생활을 시작했다. 10여 권에 이르는 시집과 시조집, 수필집과 다수의 시선집을 펴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춘향을 화자(話者)로 해서 이별과 사랑의 한(恨)을 독특한 어미로 표현한 첫 시집 ≪春香이 마음≫과 삶에 대한 연민을 찬란함과 서러움으로 표현한 두 번째 시집 ≪햇빛 속에서≫를 펴냈다. 1975년 두 시집에서 시를 고르고 신작 시를 더해 펴낸 세 번째 시집 ≪千年의 바람≫은 한, 삶, 죽음, 찬란한 빛, 물 등의 이미지로 한국적 정한을 표현해 박재삼을 한국 시단의 대표적인 순수 서정시인으로 각인시켰다. 이후 1997년 작고하기까지 20여 권에 이르는 시집과 시선집을 간행했으나 사실상 박재삼 시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초기의 시집 세 권에 집중되어 있다.
개인사적인 굴곡과 연이은 투병 생활은 박재삼의 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삶과 죽음에 대한 연민과 애상의 주제는 반복되었고, 일상적 소회를 평이하게 서술한 시들에서 시적 긴장을 찾기는 어려웠다. 오랜 투병과 생활고는 달관적 삶의 자세와 허무주의로 나타났는데,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물을 바라보는 그에게 삶이란 영원히 빛날 수 없는 순간의 찬란함이며 인생이란 알 수 없는 미지수로 귀결될 뿐이었다. 초기 시에서 보여 주었던 제어된 감성으로 표현된 자연 묘사, 새로운 종결어미의 과감한 사용, 한으로 명명된 풍부한 서정성과 이미지의 조화는 후기 시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서정성과 형식적 도전이 삶의 허무와 일상의 소회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제어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면 박재삼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는 매우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박재삼은 시인의 삶을 가감없이 형상화하고 그 한계와 아픔 또한 고스란히 전달하는 순수한 시심을 보여 준 시인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초기 시편에서 이룬 것만으로도 우리 시사에서 박재삼 시가 보여 준 성과는 인정할 만하다. 이에 이 선집은 초기 시편에서 더 많은 시를 골랐다.
200자평
감성적인 어조와 독창적인 종결어미, 한과 그리움, 서러움 등의 정서를 전통 서정으로 재현한 박재삼 시의 개성은 분명 우리 시사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평이한 진술로 쓰인 인생에 대한 깨달음과 공감의 언어 또한 일반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 텍스트일 것이다.
지은이
박재삼은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1953년 삼천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같은 해 ≪文藝≫에 시 <江물에서>가 모윤숙의 추천을 받았고, 1955년에는 ≪현대문학≫에 시조 <섭리(攝理)>, 시 <정적(靜寂)>으로 신인 추천 과정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현대문학≫ 편집사원으로 입사해 1963년까지 근무했다. 입사한 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3년 만에 중퇴했고, 그 뒤로 활발한 시작 활동을 펼치다 1997년에 작고했다.
발간한 시집으로 ≪春香이 마음≫(신구문화사, 1962), ≪햇빛 속에서≫(문원사, 1970), ≪千年의 바람≫(민음사, 1975), ≪어린 것들 옆에서≫(현현각, 1976), ≪뜨거운 달≫(근역서재, 1979), ≪비 듣는 가을나무≫(동화출판공사, 1981), ≪추억에서≫(현대문학, 1983), ≪대관령 근처≫(정음사, 1985), ≪찬란한 미지수≫(오상, 1986), ≪사랑이여≫(실천문학사, 1987), ≪해와 달의 궤적≫(신원문화사, 1990),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민음사, 1991), ≪허무에 갇혀≫(시와시학사, 1993), ≪다시 그리움으로≫(실천문학사, 1996) 등이 있고, 사후에는 ≪박재삼 시전집≫(민음사, 1998)이 출간되었다. 그 밖에 시조집 ≪내 사랑은≫(영언문화사, 1985)과 수필집 여섯 편이 있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7년 문교부 문예상, 1977년 한국 시협상, 1983년 한국문학 작가상, 1986년 중앙일보 시조대상, 1988년 조연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엮은이
이상숙은 1969년 서울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 <정현종론>으로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2005년 제6회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 2006∼2007년 Harvard University Korea Institute Fellow, 고려대학교, 서울산업대학교, 한경대학교에서 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가천대학교 글로벌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평론집 ≪시인의 동경과 모국어≫, 논문 <북한문학의 민족적 특성론 연구> 외 다수가 있다.
차례
≪春香이 마음≫
水晶歌
바람 그림자를
매미 울음에
自然
華想譜
綠陰의 밤에
葡萄
한낮의 소나무에
無縫天地
待人詞
봄 바다에서
밀물결 치마
어지러운 魂
光明
밤바다에서
물먹은 돌밭 景致
가난의 골목에서는
눈물 속의 눈물
無題
섬
우리 마음
울음이 타는 가을 江
南江가에서
흥부 夫婦像
祖國 사랑
無題
怨恨
恨
追憶에서
진달래꽃
≪햇빛 속에서≫
산에 가면
고향 소식
雅歌
某月 某日
無題
가을 바다
한나절 언덕에서
天地無劃
노래의 임자
겨울나무를 보며
구름의 나들이
새벽잠 홀로 깨어
과일가게 앞에서
봄이 오는 길
病後에
貞陵 살면서
잠이 먼 밤에
은행잎 感傷
섬을 보는 자리
한 景致
늪
한 名唱의 노래에서
열 몇 살 때
피리 구멍
情景
竹細工 노래
追憶에서
꿈으로서 묻노니
小曲
맑은 하늘 한복판
흥부의 햇빛과 바람
이 가을 들면서
미루나무
꽃상여 곡소리
≪千年의 바람≫
바람 앞에서
新綠을 보며
찬란한 반짝임만
여름 가고 가을 오듯
한 山水畵家
南海岸 언덕들
千年의 바람
옹기전에는
아득하면 되리라
新 아리랑
바람이 나를 따라
바다에서 배운 것
여름 半 가을 半
小曲
사람이 사는 길 밑에
달밤이 어느새
한 물음
네 눈길 힘이 처져
어떤 祭祀
≪울음이 타는 가을 江≫
그 기러기 마음을 나는 안다
아기 발바닥에 이마 대고
나무
두 개의 못물
비 듣는 가을 나무
친구여 너는 가고
노래에는 질 수밖엔요
魯山에 와서
鳶은 소년 따라
夫婦바위
내 사랑은
垂楊散調
南海流水詩
강물에서
찬란한 未知數
日月 속에서
虚無의 큰 괄호 안에서
아름다운 천
나룻배를 보면서
슬픈 노래에 머물고
한 작정
매미 울음 끝에
먼 뻐꾸기 울음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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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치면, 精華水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 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平床의, 갈앉은 뜨락의, 물 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 올 따름, 그 옆에 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春香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 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 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山神靈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萬 里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春香은 바람에 어울린 水晶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水晶歌>,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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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 장터 생魚物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 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銀錢만큼 손 안 닿는 恨이던가
울 엄매야 울 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晉州 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 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追憶에서>, 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