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시선 초판본
낮에는 쨍쨍한 불볕을 살에 받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찬바람도 더러 느끼는
이 여름 半 가을 半
그러나 그것이 다시 가을 날씨 하나로
기울어져 시세가 나다가
가을 半 겨울 半을 겪다가…
하늘의 이 그윽한 움직임에는
사람은 지치는 일 없건만
한 목숨씩 따로따로
열매처럼 거두어들이느니,
혼령은 놔두고
살만 거두어들이느니,
하늘의 이치는 우리로 하여금
죽은 이의 혼령과
산 사람이 半半씩 어울리게도 하고
또 딴 하늘을 예비해 놓고
거기서도 없는 듯이 半半씩
참가하게 하느니,
우리가 하늘 아래 산다는 것은
언젠가는 살하고 혼령하고를
따로따로 나누어도
하나도 불편함이 없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 그것인지도 모를레라.
≪초판본 박재삼 시선≫, 이상숙 엮음, 104~105쪽
여름 반 가을 반
하늘 아래 산다는 것은
살과 혼령이 나뉘어도 불편함이 없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