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인 오스틴이 남긴 6편의 소설 중 가장 완벽한 소설
저명한 비평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설득≫을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스물한 살에 집필하기 시작한 ≪오만과 편견≫이 봄날의 싱그러움이라면 죽음을 맞기 2년 전인 마흔 살에 쓰기 시작한 ≪설득≫은 가을의 애상과도 같다. 주인공 앤 엘리엇은 맑은 가을 햇살이 비치는 켈린치 장원을 회한에 잠겨 쓸쓸히 산책하고, 11월의 가을비에 젖어 우중충한 어퍼크로스 마을을 떠나면서 아쉬움과 체념을 달랜다.
오스틴의 초기 작품들이 경쾌하지만 비교적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면, 후기작품인≪설득≫에서는 보다 원숙한 시각으로 삶과 화해하면서 그 의미와 가치를 조용히 찾아가려는 작가의 태도가 엿보인다.
국내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많이 출간되어 있지만, ≪설득≫이 전문가의 전문적인 손길로 번역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많은 제이나이트(제인 오스틴의 열혈독자)들에게 반가운 책임이 분명하다.
200자평
주변의 만류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와 이별했던 주인공 앤 엘리엇은 8년 만에 다시 그와 재회한다. 한 번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만나면서 겪게 되는 한 여성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곡선과 실타래처럼 엉킨 남녀의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게 표현하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인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삶과 화해하면서 그 의미와 가치를 조용히 찾아가려는 작가의 원숙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은이
제인 오스틴은 영국의 소설가다. 1775년 12월 영국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과 어머니 커샌드라의 여덟 자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독서를 장려하고 함께 연극을 공연하는 등 문화적 풍요를 누렸던 가정에서 자라며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흥미를 보였고, 열두 살의 나이에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1795년에는 첫 장편소설을 완성했는데, ≪엘리너와 메리앤≫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후일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성과 감성≫으로 재탄생된다. 1795년, 이웃의 조카인 톰 르프로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르프로이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오만과 편견≫의 초고에 해당하는 서간체 소설 ≪첫인상≫을 집필했다. 이 작품을 통해 딸의 재능을 알게 된 아버지가 원고를 런던의 출판사에 보냈으나 출간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오스틴은 이후로도 습작과 초기 작품의 개작을 계속했다. 1802년 여섯 살 연하인 해리스 빅위더에게 청혼을 받고 승낙했으나 사랑 없는 결혼에 회의를 느껴 다음 날 마음을 바꾸었고, 이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1805년 부친이 사망한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1809년 고향에서 멀지 않은 초턴에 정착, 이즈음부터 익명으로 작품들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1811년 ≪이성과 감성≫을 필두로, 1813년 ≪오만과 편견≫, 1814년 ≪맨스필드 파크≫, 1815년에는 ≪엠마≫를 출간,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다음 해 ≪설득≫을 탈고한 이후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었다. 1817년 다시 ≪샌디튼≫의 집필을 시작했으나 건강 악화로 중단해야 했고, 작품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같은 해 7월 마흔두 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에 출간된 ≪노생거 사원≫과 ≪설득≫을 비롯하여 그녀가 남긴 작품은 단 여섯 편뿐이지만, 2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전 세계의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옮긴이
이미애는 현대 영미 소설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교에서 강사 및 연구원으로 가르쳤다. 조지프 콘래드, 제인 오스틴, 존 파울즈, 카리브 지역의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논문을 썼고, 역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J. R. R. 톨킨의 ≪호빗≫, ≪반지의 제왕≫(공역),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제인 오스틴의 ≪설득≫, ≪에마≫, 조지 엘리엇의 ≪아담 비드≫, ≪영원과 하루: 토머스 모어 서한집≫,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부
제2부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앤 엘리엇은 얼마나 웅변적으로 열변을 토하고 싶었을까! 적어도 인간의 노력을 모욕하고 신의 은총을 불신하는 듯한 지나친 우려와 신중한 고려에 반대하면서, 젊은 시절의 따뜻한 애정과 미래에 대한 쾌활한 자신감을 옹호하고 싶은 열망을 얼마나 웅변적으로 토로하고 싶었을까! 그녀는 젊은 시절에 어쩔 수없이 신중함을 선택하게 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로맨스를 배우게 되었다. 자연스럽지 못한 발단에서 빚어진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