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1960∼1970년대에 이영호는 농촌 아동생활의 궁핍함과 그 가운데서도 건강하게 성장하는 소년들의 모습, 인간 차별에 대한 항의와 휴머니즘, 조국애 등을 주제로 한 아동소설을 다수 발표해 생활동화류가 판치던 당시의 문단에 충격을 준 작가다. 장편 아동소설 ≪대숲 안집 사람들≫, ≪얼굴 없는 기념사진≫, ≪열두 컷의 낡은 필름≫ 등은 일제강점기 혹은 해방 직후의 혼란상을 배경으로 해 한국 농민의 고통과 희생, 애환, 현실 비판 등의 주제를 치열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묘파한 작품들이다.
1970년대에 일반 학생들과 미감아가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데 대해 일반 학생의 학부모들이 등교 거부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 크게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영생원 아이>는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감아들을 정상적인 사회와 격리시키려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주제가 되고 있다. 문둥병 환자였던 화자(나)의 부모님에 대한 연민과 자신들을 문둥병자 취급하는 사회에 대한 주체적인 분노와 갈등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영생원 분교 건설을 방해하는 화자의 결의에 찬 행동은 인간 차별에 대한 항의와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강렬하게 보여 준다.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인간 사랑의 휴머니즘이 유감없이 표현된 작품이다.
동식물을 의인화한 작품들은 비인간적인 현대 문명을 고발하거나 인생론인 이야기로 풀어 낸 것들이 많다. 예컨대, <바람 타지 않는 민들레>는 도시 문명의 삭막함과 농촌의 따듯함을 대비함으로써 현대 문명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고, <별님과 진주를 품은 조개>는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꿈을 꾸며 소원을 빌면 언젠가는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또, <부처님과 곤줄박이>는 전생에 새들을 불에 타 죽게 했던 공주의 시녀가 곤줄박이로 다시 태어나서는 전생의 업보를 닦고 부처님의 위로를 받는다는 이야기로 불교적인 윤회 사상을 동화로 풀어 내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의 우리나라 동화와 아동소설은 아동의 일상사에서 소재를 취한 가벼운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어린이들의 주체적인 욕망과 고민을 심층적으로 그려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함량이 부족한 생활 경험이나 콩트 같은 것들이 생활동화라는 이름으로 마구 발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영호는 소설가로서의 수련을 성실히 거친 작가로서 소설적 구성이 탄탄한 아동소설을 다수 발표해 이원수와 이주홍의 맥을 잇는 아동소설가로 평가될 수 있다.
200자평
이영호는 농촌 아동생활의 궁핍함과 그 가운데서도 건강하게 성장하는 소년들의 모습, 인간 차별에 대한 항의와 휴머니즘, 조국애 등을 주제로 한 아동소설을 다수 발표해 생활동화류가 판치던 1960∼1970년대 문단에 충격을 준 작가다. 이 책에는 <영생원 아이> 외 11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이영호는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경남신문≫에 소설 <부희설 종>이 당선 없는 가작으로 입선했고, 1965년 ≪새한신문≫에 소설 <살인범의 아들>이 당선됐으며, 1967년 ≪현대문학≫ 지에 소설 <하복>이 추천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한편, 1966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토끼>가, 같은 해 문화공보부 주최 ‘신인 예술상’에 동화 <돌팔매>가 당선되어 동화작가로도 등단했다. 이후 성인소설보다는 동화와 아동소설 창작에 힘을 쏟아 세종아동문학상과 대한민국문학상, 방정환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아동문학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고, 지은 책으로는 ≪별을 따는 아이≫, ≪웃음꽃 피우는 아이들≫, ≪늪마을을 스쳐간 바람≫ 등이 있다.
해설자
권혁준은 1958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다. 공주교육대학교를 졸업했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남천 소설 연구’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학과에서 ‘문학이론의 시교육적 적용에 관한 연구’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현재는 공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독서교육의 이론과 방법≫(공저), ≪문학이론과 시교육≫, ≪초등 국어 수업의 방법≫(공저), ≪아동문학의 이해≫(공저), ≪살아 있는 동화 읽기≫, ≪깊이 있는 삶 읽기≫(공저) 등의 책을 냈다.
차례
작가의 말
영생원 아이
배냇소 누렁이
잘 가라 토끼야
별님과 진주를 품은 조개
별을 따려는 아이
은행잎 편지
청석골 편지
뱀과 개구리
까치밥 할머니
삘리삐노의 변신
부처님과 곤줄박이
바람 타지 않는 민들레
해설
이영호는
권혁준은
책속으로
나는 왜 영생원에서 태어났을까? 어쩌다 그런 아버지를, 그런 어머니를….
“문둥이, 문둥이 아버지, 문둥이 어머니, 문둥이 윙윙윙 문둥이….”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자꾸 이렇게만 들렸다. 나는 귀를 싸쥐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귀울림은 여전하고, 아버지, 어머니 소리가 자꾸 문둥이, 문둥이로 들려왔다.
아무리 귀를 막아도 그 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더욱 크게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부릅뜬 눈으로 칠판을 노려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용수철에 튕긴 나사못처럼 교실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선생님과 일곱 아이들이 뭐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곤 한 마디도 없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학교에 가는 일을 그만뒀다.
“친절하신 젊은 선생 한 분이 글을 가르친다는데, 왜 너는 안 가겠다는 거니?”
아버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말없이 돌아누워 버렸다. 내 앞에서마저 떳떳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아버지가 불쌍하고 미웠다. 아니 그보다 그런 아버지를 가진 내가 한없이 밉고 불쌍했다.
내 눈에선 어느 틈에 뜨거운 눈물이 흥건히 괴어 올랐다. 눈물은 콧잔등과 볼을 간지럽히며 베개 위로 떨어져 내렸다. 몸을 새우처럼 오그리고 아무리 눈물을 쏟아내도 가슴은 여전히 찐득찐득한 담뱃진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영생원 아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