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천변풍경≫은 1938년 박문서관에서 나온 판본의 표기법을 그대로 살렸다. 지금의 독자들은 구식 맞춤법에 당황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대 서울말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박태원의 문학은 모더니즘으로부터 출발했다. 서울 중인 계층 출신인 박태원은 근대 문명과 도시 문물을 수용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세련된 도회적 감수성을 지닌 문화적 모더니스트였다. 세간과 문단의 이목을 끌었던 소위 ‘갓빠머리’라는 박태원의 헤어스타일은 첨단 유행에 민감했던 그의 문화적 감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박태원은 경성의 모더니스트 짝패였던 이상과 새로운 문학예술을 표방한 단체인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내용을 중시하던 프로문학을 거부하고 예술 자체의 미적 형식과 자율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박태원은 내면의 심리묘사에 치중했던 모더니즘 창작 방법론에서 후퇴해, 외부 현실의 객관적 묘사에 중점을 두는 리얼리즘적인 기법으로 쓴 장편소설 ≪천변풍경≫을 발표한다. ≪천변풍경≫은 이미 당대 평단에서 세태소설 또는 리얼리즘 논쟁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으로, 박태원 문학의 분기점에 해당한다.
‘천변’을 중심으로 그곳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복잡다기한 생활상들을 그려내고 있는 ≪천변풍경≫(박문서관, 1938)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기법이 최고조로 발휘된 박태원의 대표작이다. 2월 초부터 다음 해 정월 말까지 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청계천변의 복잡다단한 삶을 50개의 절로 분절해 묘사하고 있는 ≪천변풍경≫은 30명을 웃도는 인물들이 등장해 식민지 도시 경성을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삶의 생태와 도시의 음영을 총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무엇보다 ≪천변풍경≫은 일본 동경이나 경성 내 일본인 거주 지역이 상징하는 근대 도시의 보편적 삶과 대비되는 식민지 도시 경성의 특수한 삶, 즉 청계천변의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그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반성적 의식과 윤리적 자각이 두드러져 보인다. 또 ≪천변풍경≫에서 시도된 이발소 소년 재봉이의 시점을 통한 ‘카메라 아이(camera eye)’의 객관적 서술 기법은 경성 청계천변의 식민지적 근대의 삶을 계급이나 이념, 예술 등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도식에 의해 섣불리 재단하지 않고 모든 인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윤리적 인식을 소설 형식으로 구현했다. 요컨대 선과 악, 미와 추의 선험적 판단을 초월해 청계천변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애환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작품이 ≪천변풍경≫인 것이다. 신산한 삶을 사는 인물들의 애달픈 이야기를 담았음에도 ≪천변풍경≫을 지배하는 전체적인 주조음이 명랑성인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200자평
1930년대 서울 청계천 주변 이야기. ‘천변’을 중심으로 그곳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복잡다기한 생활상들을 그려냈다. 2월 초부터 다음 해 정월 말까지 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청계천변의 복잡다단한 삶을 50개의 절로 분절해 묘사한 작품이다.
지은이
박태원은 1910년 1월 17일(음력 1909년 12월 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절 ≪동명≫ 33호에 작문 <달맞이>를 싣게 된다. 1929년에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법정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한 뒤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1933년에는 ‘구인회’에 가입해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등과 함께 활동했다. 1934년 보통학교 교사인 김정애와 결혼하였다. 1938년에는 장편소설 ≪천변풍경≫ 및 단편소설집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출간했다. 해방정국 때 ‘조선문학가동맹’의 요직을 맡았으나 1948년 ‘보도연맹’에 가입해 전향성명서에 서명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 오장환, 정인택, 이용악 등을 따라 가족을 남겨 두고 월북했다. 북한에선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 1, 2부를 썼다. 1986년 7월 10일 죽은 뒤에는 아내가 남은 자료를 정리, 집필하여 ≪갑오농민전쟁≫ 3부를 완성했다.
엮은이
김종회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나온 이래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해 왔으며, ≪문학사상≫, ≪문학수첩≫, ≪21세기 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위원과 주간을 맡아 왔다. 현재 한국문학평론가협회와 국제한인문학회의 회장으로 있다.
차례
제1절 청계천 빨래터
제2절 이발소의 소년
제3절 시골서 온 아이
제4절 불행한 여인
제5절 경사
제6절 몰락
제7절 민 주사의 우울
제8절 선거와 포목전 주인
제9절 多事한 민 주사
제10절 사월 팔일
제11절 가엾은 사람들
제12절 소년의 애수
제13절 딱한 사람들
제14절 虛實
제15절 어느 날 아침
제16절 방황하는 處女性
제17절 샘터 問答
제18절 저녁에 찾아온 손님
제19절 어머니
제20절 어느 날의 삽화
제21절 그들의 생활 설계
제22절 종말 없는 비극
제23절 장마 풍경
제24절 창수의 금의환향
제25절 중산모
제26절 불운한 破落戶
제27절 여급 하나꼬
제28절 비 개인 날
제29절 행복
제30절 꿈
제31절 戱畵
제32절 오십 원
제33절 금순의 생활
제34절 그날의 감격
제35절 그들의 일요일
제36절 구락부의 소년 소녀
제37절 三人
제38절 다정한 안해
제39절 관철동집
제40절 시집살이
제41절 젊은 녀석들
제42절 姜某의 사상
제43절 흉몽
제44절 距離
제45절 민 주사의 感傷
제46절 근화 식당
제47절 영이의 비애
제48절 평화
제49절 손 주사와 그의 딸
제50절 천변풍경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 이가 샘터 팔지 않겠냐구, 그런 말 헙띠다.”
“샘털, 팔어?”
“응, 이편서 의향만 있다면, 자기가 넹겨 맡어 허겠답띠다… 일백오십 환까진 내겠다구….”
“뭐, 일백오십 환? 흥! 어림두 없이…. 이게 이래 뵈두 으떤 건데, 단둔 일백오십 환에 내노라는 게야? 그저 가만이 앉어만 있어두 실없이 먹구는 사는 걸….”
“허지만, 일백오십 환이면 괜찮지 않우? 사실 빨래래야 여름 한철이구, 더구나 인제 장마나 지면 틀려먹는 게구….”
“흥! 아-니, 여름 한철이라니, 그럼 봄 가알 겨울엔 빨랠 안 해 입는단 말인가? 장마가 지면 그대루 개천이 송두리채 떠나간단 말인가? 웨 어림두 없이 이러는 거야?”
“허지만, 개천을 덮는단 말두 있지 않우? 허니, 아주 이번에 작자가 난 김에….”
“아-니, 이 개천을 덮어? 무슨 수루 이 넓은 개천을 덮어? …그러지 말구 바루 하눌에 올러가서 별을 따 오라지.”
“허지만 일백오십 환이면….”
“일백오십 환커녕-.”
하고 김 첨지는 길바닥에다 침을 퇴 뱉고,
“곱절을 해서 삼백 환이래두 어림없다.”
“삼백 환은, 무슨, 흐, 흐…. 이까진 샘터 하나에 삼백 환 낼 사람이 어딨우?”
“없으면 그만이지. 누가 판다나? 보긴 이래두 버리가 으떻다구….”
조금 전에 칠성 아범하고 이야기할 때와는 아주 딴판으로, 김 첨지의 기세가 바루 장하다. 용돌이는 더 권하기를 단렴하고, 광교 편으로 눈을 주고, 생각난 듯이 그편으로 걸어갔다. 점룡이에게로 가서 아-스꾸리라도 한 곱보 얻어먹기 전에는 참말 더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