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엇보다도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세 편의 시-<노수부의 노래>, <크리스타벨>, <쿠블라 칸>-의 저자로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널리 알려진 이 시편들은 오늘날까지 그의 대표작으로서 끊임없이 읽히고 또 연구되어 왔다. 비평적 유행의 흐름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이 시편들과는 달리, 그의 다른 뛰어난 시편들은 무척 오랫동안 비평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이미 1800년 말부터 자신의 시적 창조력이 고갈되었다고 믿은 콜리지 자신의 지나친 자기 비하적 발언과 태도를 많은 사람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러미 벤담과 더불어 “영국이 낳은 두 맹아적(萌芽的) 정신의 하나”였던 사상가로서의 그의 면모가 근래에 더 부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의 시는 많은 시인들이 시도해 온 것보다 더 다양한 실험적인 양식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더욱이 그 다양한 양식들은 다른 어떤 시인에게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것으로서, “종합적이고 마력적인 힘”인 상상력을 통해 우리 독자들의 “전 영혼이 활동하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콜리지는 <종교적 묵상>을 비롯한 초기의 정치적·종교적 시편들에서 <요한묵시록>에 근거한 자신의 묵시적 비전을 독특한 방식으로 형상화한다. 강렬한 묵시적 경향과 갈망을 드러내는 이 초기 시편들에서 자유의 이상에의 헌신, 사악한 압제자들에 대한 분노와 순결하고 억압받는 이들에 대한 인간애, 인간 조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 등 당대의 중요한 공적 관심사들을 읽어 낼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이 시편들은 콜리지가 당대의 이성적 요구로 간주했던 바에 대한 진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에 의한 묵시’보다는 ‘상상력에 의한 묵시’ 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돌린 콜리지는 공적 세계와 소통하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대화적 양식의 무운시(無韻詩)를 통해 자연 속에서의 은거, 우정, 가정적 행복 등의 가치들을 찬미하게 된다. ‘대화시’는 시인 자신의 생각과 느낌의 내적 움직임에 집요한 관심을 보여 준 17세기 형이상학파 시, 특히 종교적 명상시를 세속적 차원에서 발전시키고 있다.
<노수부의 노래>, <쿠블라 칸>, <크리스타벨>은 영어로 쓰인 매력적인 설화시로서, 오늘날 많은 앤솔러지에 빈번히 수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 시편들은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내적 본성으로부터” 인간적 흥미를 이전시켜, 그것에다 “시적 신념”을 구성하기에 충분한 “진실의 외양”을 부여하고 “우리의 불신을 자발적으로 중지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요컨대 콜리지는 이 시편들에서 허구적 사건들과 인물들을 통해 영속적인 인간 문제들을 생생한 상상적 현실로 설득력 있게 극화함으로써 강력한 상상력의 힘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후기 시의 경우, 시작 과정의 종착지는 한 완성된 산물로서의 시라기보다는 자아의 활동과 역량에 관한 한 새로운 인식, 즉 존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연인의 존재와 관련시켜 자아의 문제를 다룬 <관념적 대상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 자신의 무기력 및 희망의 결여와 자연의 능동적 작용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극적인 자아 재현의 과정을 보여 주는 <희망 없는 일>, 자비와 겸손이라는 전통적인 기독교적 미덕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다가올 삶에 대한 신념을 표명하고 있는 <묘비명> 등의 시편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사상가이자 문학평론가. 바이런과 워즈워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영국 낭만주의의 대표적 시인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새뮤얼 콜리지의 시선집이다. 대표작인 [노수부의 노래], [크리스타벨], [쿠빌라 칸] 등을 통해 초자연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지은이
1772년 10월 21일 영국 데번 주(州)의 오터리슨트메리에서 목사이자 교사인 아버지 존 콜리지와 어머니 앤 보든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세 때인 1791년 10월에 콜리지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지저스칼리지에 입학했고, 1792년 7월에는 노예무역에 관한 그리스어 송가로 메달을 수상했다. 그는 1797년 봄에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 남매를 만나 우정을 쌓기 시작했는데, 워즈워스는 콜리지와 가까이 지낼 생각에서 도셋 주에서 이주하기까지 했다. 두 시인 모두에게 유익했던 이 ‘창조적 공생’의 시기는 영문학사에서 가장 생산적인 우정의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기에 콜리지는 워즈워스와의 대화를 통해 젊은 시인과 철학자로서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가다듬었고, <노수부의 노래> <쿠블라 칸> <크리스타벨>(제1부) <한밤의 서리> 등의 뛰어난 시편들을 썼다. 두 시인의 ‘창조적 공생’은 1798년 늦여름에 영국 낭만주의의 서막을 연 작품으로 간주되는 ≪서정담시집≫이 발간됨으로써 그 결실을 맺었다. 1800년에 호반지방의 그래스미어에 정착한 워즈워스 일가의 집에서 약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케직의 ‘그레타홀’로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처음에 새 환경을 마음에 들어 했던 콜리지는 <크리스타벨>의 제2부를 워즈워스 남매에게 읽어 줄 때처럼 여러 차례 헬벨린 산(해발 950미터)을 넘어 워즈워스의 집을 방문하곤 했지만, 잦은 병 때문에 점점 더 아편에 의존하게 되었다. 또 그는 실험적 방식으로 자신의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들을 확대하면서 “신경 체계에 해가 될 정도로까지” 자신의 감각에 숱한 실험을 했는데, 이 해로운 “난해한 연구”는 <낙심 송가>에서 언급되고 있다. 1810년 3월에 연인인 새러 허친슨과, 또 10월에 워즈워스와 결별한 이후 1816년까지의 콜리지의 삶은 사적으로는 황폐했지만 놀랄 정도로 생산적이었다. 그는 수차례 대중 강의를 했고, 신문에 기고했으며, 자신이 쓴 비극이 상연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시집 ≪무녀의 엽편들≫(1817)을 준비했고, 문학 비평의 기념비적 저작이자 문학적 자서전인 ≪문학 평전≫(1817)의 저술에 착수했다. 1816년 4월에 친구인 의사 제임스 길먼이 콜리지를 맡아 그의 병과 아편중독을 관리해 주기 시작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길먼의 집에 거주하면서 치료를 받았던 콜리지는 1824년에 당시 막 창립된 왕립문학원에서 연금 100파운드를 받는 준회원이 되었다. 콜리지의 저작의 상당 부분은 이 하이게이트 시기에 저술되었는데, 특히 ≪사색의 길잡이≫와 ≪교회와 국가의 구성 원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막 부상하는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람들에게 ‘하이게이트의 현자(賢者)’로 불렸던 그는 1834년 7월 25일 세상을 떠났고 그곳에 묻혔다.
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배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영문과에서 풀브라이트 방문학자(1992∼1993)로 연구했으며, 한국현대영어영문학회 제1회 우수논문상(2005)을 수상했다. 콜리지와 워즈워스를 비롯한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과 현대 영미 시인들에 관한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해 왔고, 한국현대영미시학회장(2011∼2012)과 한국현대영어영문학회장(2011∼2013)으로 일했으며, 저서로 ≪콜리지의 시 연구≫(2001), 역서로 ≪문학과 인간의 이미지≫(1983), ≪거상-실비아 플라스 시선≫(공역, 1986), ≪영문학사(제4개정판)≫(공역, 1992), ≪Who’s Who in Korean Literature≫(공동 영역, 1996), ≪티베트 원정기≫(공역, 2006), ≪영미시의 길잡이≫(2007), ≪티베트 순례자≫(공역, 2007), ≪영문학의 길잡이≫(2008), ≪마지막 탐험가−스벤 헤딘 자서전≫(공역, 2010), ≪콜리지 시선≫(2012) 등이 있다.
차례
풍명금
내 감옥, 이 라임나무 그늘
노수부의 노래
쿠블라 칸
크리스타벨
한밤의 서리
프랑스-송가
나이팅게일
낙심-송가
잠의 고통
관념적 대상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
윌리엄 워즈워스에게
사랑의 기억
희망 없는 일
묘비명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는 밤처럼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아다닌다오.
내게 신기한 말재주가 생겼소.
누구든 얼굴을 보는 바로 그 순간,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을 알아보고
그에게 내 이야기를 가르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