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풍토기≫란 ‘기후와 지역에 대한 기록’으로 한마디로 지지(地誌), 곧 일본 최초의 지방 지리서이다. 일본 고대의 주석가는 “사물을 양육하여 공(功)을 세우는 것을 풍(風)이라 하고, 앉아서 만물을 탄생시키는 것을 (土)라 한다”(≪료슈게(令集解)≫)고 말한다. ≪풍토기≫는 개인적인 문학적 술작이 아니라 713년 5월 2일의 ≪풍토기≫ 찬진(撰進) 명령에 의해서 편찬된다. 겐메이(元明)여제의 명령에 의한 찬진의 실제 책임자는 나라 천도를 유도한 후지와라노후히토(藤原不比等)와 아와타노마히토(粟田眞人)라고 추정된다. 그러면서도 이 관명을 실은 ≪쇼쿠니혼기(續日本紀:속일본기)≫ 기사에서는 정작 서명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 이것은 ≪쇼쿠니혼기≫의 오자와 탈자 혹은 착란(錯亂)일 수도 있고, 한편 이 ‘사적’이 끝내는 공식적인 서명을 획득하지 못한 미완성작이었다는 추정도 나온다.
첫 시도와는 달리 어느새 지방 문서로 매장되어 있던 ≪풍토기≫가 다시 중앙 정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다이고(醍醐)천황 914년 4월 칙령에 응해서 제출된 미요시노기요유키(三善淸行)의 <의견봉사십이조(意見封事十二條)>(≪혼초몬스이(本朝文粹)≫)에 의해서이다. 그 뒤 925년 후지와라노다다히라(藤原忠平)는 5기 7도 지방에 “급히 풍토기를 작성하여 헌상하라!”는 명을 내리고 여러 지방에 있는 풍토기 문이라고 보이는 것을 지방청이나 군위 등에서 찾아내고 그래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옛날 노인에게 물어서라도 속히 헌상하라고 지시한다.
이런 상황은 당시 중앙에서도 풍토기가 어떠한 것인지 몰랐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아가 시대적으로도 그 뒤 오닌란(應仁亂) 등의 전국적인 내란이 일어나면서 사회적 흐름 속에서 거의 소멸해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본래 713년 ≪풍토기≫ 찬집 명령 당시의 지역 수는 모두 62개 지방 3도(島)이다. 한 지역당 한 권으로 쳐도 완성하면 60권이 넘는 대집성이다.
그러나 ≪풍토기≫ 중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히타치(常陸)·이즈모(出雲)·하리마(播磨)·분고(豊後)·히젠(肥前)의 5개 지방으로 이 중에서 ≪이즈모 지방 풍토기≫만이 완본으로, 다른 것은 생략본이거나 파손본이다. 흔히 ≪풍토기≫가 만들어진 시기와 특색에 따라 여러 지방의 특유한 소박함을 잃지 않고 남아 있는 <와도(和銅)풍토기>(히타치와 하리마)와 실용주의적인 <텐표(天平)풍토기>(이즈모, 733년), 거의 동 시기에 만들어진 큐슈(九州)제풍토기(분고와 히젠만 현존)로 나누어 부른다.
200자평
일본 최초의 지방 지리서다. 동시에 넓은 의미에서의 생활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 또한 다채롭다. 풍속서, 설화의 집합체로서 고대인들의 사상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을 연구하는 기초 문헌의 하나로 동시대에 생긴 ≪고사기≫와 나란히 고전으로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은 신라, 백제 등 한국 관련 사항들이 산적해 있음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본으로 도래한 우리 옛 선조들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는 만큼 우리들에게도 필독서가 될 것이다.
지은이
미상
옮긴이
강용자는 일본 고쿠가쿠인대학(國學院大學)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엽집(萬葉集)≫을 텍스트로 해 한일 간 고대 문화의 관계를 전공했으며 부산대학교, 동아대학교, 부경대학교, 경남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해양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서대학교, 동의대학교를 거쳐 현재 창원대학교에 출강한다.
번역서로 ≪일본 풍토기≫(동아대학교 출판부, 1999), ≪여제(女帝)의 사랑-시인(詩人)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柿本人麻呂)≫(제이플러스, 2003), ≪인터넷 시대의 종교≫(도서출판 역락, 2005), ≪양생훈≫(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풍토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일본의 종교≫(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법세 이야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만엽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萬葉 祈禱文化考>, <≪萬葉集≫에서 보는 他界觀>, <萬葉 ‘夢’考>, <萬葉 神觀考>, <萬葉 天皇考> 등이 있다.
차례
해설
Ⅰ 히타치 지방(常陸國) 풍토기
Ⅱ 이즈모 지방(出雲國) 풍토기
Ⅲ 하리마 지방(播磨國) 풍토기
Ⅳ 분고 지방(豊後國) 풍토기
Ⅴ 히젠 지방(肥前國) 풍토기
Ⅵ 풍토기 이쓰분(逸文)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흰색으로 빛나는 신라 갑(岬)에 여분의 토지가 있나 하고 보니 국토가 넉넉하구나!”라고 말했다. 그래서 처녀 가슴처럼 넓고 큰 호미를 손에 들고 생선 내장을 발라내듯 괭이로 캐내어 참억새의 이삭처럼 산산이 나눠서 굵은 밧줄에 걸치고는 서리 맞은 덩굴을 당기듯 배로 끌어 점점 나아가며 “땅이여 와라, 땅이여 와라”며 끌어당겨 이은 땅은 고즈(小津)의 단애에서 야오니키즈키(八穗爾杵築)의 갑까지이다. 이렇게 해서 끌어들인 땅을 잇기 위해 굳게 박은 못이 이와미 지방과 이즈모 지방의 경계에 있는 사히메산(佐比賣山: 三甁山)이다. 또 손으로 끈 밧줄은 소노(?)의 긴 모래밭이다.
-45~46쪽
이토섬(伊刀嶋)-모든 섬을 총칭한 이름이다. 15대 오진천황은 사수를 시카마의 이메갑에 세워두고 사냥했다. 이때 아가마 들판에서 뛰어온 암사슴이 이 언덕을 통해 바다로 들어가 이토섬으로 헤엄쳐 건너갔다. 그때 사수들이 줄곧 지켜보며 “사슴은 마침내 저 섬으로 가버렸다”고 해서 이토라고 부른다.
-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