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방송계의 산 증인들이 소중한 기억을 꺼내 놓았다. 누구는 가장 절박했던 순간, 누구는 가장 애절했던 순간, 누구는 가장 통쾌했던 순간을 꾹꾹 눌러 썼다. 무용담으로 남을 뻔한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한데 모였다. 모두 ‘사실’로 기억되어야 할 기록이다.
1부는 기자들이 썼다. ‘박통이 서거했어?’, ‘김일성과 소리 없는 전쟁 한 시간’, ‘무인도 30년, 어느 징용병의 삶’, ‘여자 화장실을 뒤져라’는 특종의 산고(産苦)를 담았다. 선택의 순간, 기자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엿볼 수 있다.
2부는 TV 제작진의 뒷이야기.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프로듀서와 카메라맨이 숨 가쁘게 달려가는 모습을 담았다. ‘여로는 女路인가, 旅路인가’는 1970년대 시청률 70%를 웃돈 연속극 <여로>의 일화다. 극본과 연출을 도맡은 방송가의 전설 고(故) 이남섭 PD를 회고했다. ‘KBS 열린음악회 탄생’은 장수 인기 프로 <열린음악회>의 탄생과 성장 배경을, ‘처음이구나, 잘해야지’는 방송 사상 최초로 세계에 위성으로 생중계한 88서울올림픽 방송의 분투기(奮鬪記)를 썼다.
3부는 라디오 PD들의 제작 후기다. ‘물의 반란이 시작되다’는 라디오 드라마 <물, 분노하다>의 실험정신을 평가했다. ‘해외 통신원 시대를 열다’는 해외 통신원 제도 도입을 놓고 벌어진 논란을, ‘All Day News, 라디오정보센터 이야기’는 우여곡절 끝에 뉴스 전문 방송 채널로 혁신한 과정을 기록했다.
4부는 아나운서들의 후일담. ‘오늘 날씨는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성으로 배달한 망신’은 아찔했던 방송 사고를 유머러스한 필체로 담아냈다.
5부는 제작기술진의 일화다. ‘취재 비행, 천하를 날다’는 헬기 조종사가 각종 사건 사고에 출동하면서 겪은 일을 소개했다. ‘프롬프터와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의 프롬프터 사용기를, ‘남산송신소에 벼락’은 초유의 방송 중단 사태를 공개했다.
6부는 방송경영진의 뒷이야기. ‘급여 통장 만세!’는 한 명 한 명에게 현금으로 월급을 주던 때부터 급여 통장 제도 도입까지를, ‘예산과 가위질’은 주판과 계산기로 복잡한 예산을 책정했던 때를, ‘수, 우, 미…, 경영 평가’는 경영 평가 제도의 시작과 끝을 추억했다.
이 밖에도 방송을 둘러싼 다채로운 일화들을 흥미롭게 펼쳐 냈다. 열악한 제작 환경과 낙후된 기술을 극복하고 차곡차곡 전범(典範)을 쌓은 선배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다. 방송인으로서의 열정과 희로애락도 엿볼 수 있다. 저자들은 방송의 뒤안길을 추적하면서 방송이 나아가야 할 길도 넌지시 내비친다. 무엇보다 <그때 그 시절 KBS 이야기>의 묘미는 각 직종에 종사한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 현장 구석구석을 방문할 기회인 셈이다.
다음은 저자들의 바람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는 추억의 거울이 되고 방송에 뜻을 둔 후진들에게는 미래를 여는 창(窓)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방송인의 에세이’이자 ‘방송의 역사서’로 그만한 가치가 있다.
200자평
KBS사우회에서 반세기 방송사를 담아내자는 취지로 기획했다. 기자, TV PD, 라디오 PD, 아나운서, 제작기술, 방송경영 등 6개 분야의 방송인 57명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방송 뒷이야기와 현장 경험담이 흥미진진하다. 국내 방송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어 사료로서도 의미 있다. 무엇보다 각 직종에 종사한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
차례
책을 펴내며
1부 무인도 30년, 어느 징용병의 삶
김성배 박통이 서거했어?
김인규 김일성과 소리 없는 전쟁 한 시간
문인수 무인도 30년, 어느 징용병의 삶
우석호 지상명령! 시청률을 높여라
유민원 특종! 기립박수를 받다
윤재홍 여자 화장실을 뒤져라
이규창 스포츠는 KBS다
이성완 휴전선 155마일
이홍기 어느 사할린 동포의 비원
호천웅 나는 왕따 기자였다
2부 내 생에 가장 길었던 날
강대영 BBC 한국전쟁 원본 구입 비화
김기철 뷰 파인더에 비친 영상과 실상
김수동 꽃피는 팔도강산
김연진 나의 외곬 인생
김영태 생방송이 그립다
곽명세 KBS 열린음악회 탄생
박영대 고행의 문턱에서 천직은 시작되고
안국정 내 생에 가장 길었던 날
유신박 여로는 女路인가, 旅路인가
윤석호 겨울연가
이흥주 ‘짤랑짤랑 으쓱으쓱’
장한성 한류의 원류
정 훈 이제는 파란불이다
진필홍 처음이구나, 잘해야지
최상식 보통사람들
최창봉 KBS와 새마을운동
3부 사랑은 눈물의 씨앗
김선옥 물의 반란이 시작되다
김성호 한국방송, 우리말 이름 탄생
김 현 오후의 로터리 출범
서병주 해외 통신원 시대를 열다
손종만 천사가 된 소록도 아가씨
이상욱 사랑은 눈물의 씨앗
이후재 화랑 애비, 통일 에미
조원석 김삿갓 북한 방랑기와 즐거운 우리집
최승민 연탄가스, 방송을 중단시키다
홍금표 All Day News, 라디오정보센터 이야기
4부 오늘 날씨는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상준 KBS한국어연구회 발족
이계진 마이크 앞 30년, 별의별 일이
이세진 나의 첫 번째 스포츠 중계, 스키
이정부 위성으로 배달한 망신
이재봉 오늘 날씨는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5부 각하! 지금 방송이 안 되고 있습니다
강태흥 취재 비행, 천하를 날다
김성현 남산송신소에 벼락
김우식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
김 탁 프롬프터와 대통령
박상규 서울올림픽 국제방송센터
이상수 포스트 프로덕션 시대를 열다
이일로 방송 통신망의 고속화
정석현 서울올림픽, 최상의 음향을 추구하라
천기태 각하! 지금 방송이 안 되고 있습니다
6부 누군가 가야 할 길
변원일 나무만 보고 숲은 안 볼 거야?
유광호 급여 통장 만세!
이광수 예산과 가위질
이장춘 공사 창립 이야기
이춘재 누군가 가야 할 길
이현원 라디오 청취료에서 TV 수신료까지
한안성 수, 우, 미…, 경영 평가
책속으로
1초나 될까. 찰나의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편집부장! 톱뉴스에 김일성 육성 그대로 나갑니다. 김일성과 강 총리가 대화하는 구성물 2개 나갑니다.”
나의 들뜬 목소리에 편집부장으로부터 환호성 섞인 메아리가 돌아왔다.
“좋습니다! 오랜만에 화끈한 톱뉴스 기대합니다.”
드디어 9시 뉴스 시그널이 울리고 박성범 앵커가 어느 때보다 힘차게 말문을 연다.
“오늘 밤 KBS 9시 뉴스는 매우 역사적인 화면부터 소개해 드립니다.”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짙게 깔린 금수산 의사당 주석궁에서 김일성이 강영훈 총리를 비롯한 우리 대표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여러분들 평양에 오신 데 대해서 열렬히 환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총리 회담을 잘 운영해서 앞으로 조국 통일의 실행을 위해서 많은 노력 해 주기 바랍니다.”
김일성이 바리톤에 가까운 굵은 목소리로 또렷하게 인사말을 건넨다. 내 목은 저절로 마른 침을 삼킨다.
_ 1부 “김일성과 소리 없는 전쟁 한 시간”, 김인규(KBS 사장)
일본 국회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그때 일본의 한 국회의원이 “한·일 관계는 겨울연가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며 당시 일본에서 <겨울연가>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었다. 또 어느 일본인은 <겨울연가>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동안 몰랐던 한국의 불행한 과거를 알게 되어 무척 놀랐으며 사과드린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또 그러한 마음 때문에 한·일 문화 교류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일본 사람들, 한국으로 유학 온 젊은 학생들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여든이 넘은 재일 동포 할아버지께서 “이건 기적이야, 내 생전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어”라며 눈시울을 붉히실 때 그동안 수많은 재일동포가 타국에서 겪었을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재일 동포뿐 아니라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들과 유학생들도 예전에는 공공장소에서 한국말 하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말하게 되었고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한다.
_ 2부 “겨울연가”, 윤석호(윤스칼라 대표·감독)
30일. 이산가족 찾는 사람들을 모아서 전국의 이산가족들에게 TV로 보여 주자. 적십자와 협의해 경찰 컴퓨터-중계차, 전화 연결, 사연 듣고 연락하게 하라.(1983년 업무일지 메모 중에서)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 KBS 1TV를 통해 첫 방송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이렇게 간단한 콘셉트로 시작되었다.
전쟁의 포성은 사라졌지만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인간의 비극은 강산이 세 번 변한다는 30년이 지나도록 아물지 않았다는 현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예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반응 속에 ‘이산가족 찾기’ 방송은 장장 138일간 계속되었다.
하나같이 어둡고 생활에 찌든 얼굴들이 나와서 되새기고 싶지 않을 아픈 사연들을 쏟아내는 장면이 거듭되었지만 시청자들은 TV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는 6·25의 생생한 아픔이, 그 황망했던 시련이 깔려 있었고 이따금씩 터지는 상봉 장면은 이 세상의 어떤 드라마도 따라갈 수 없는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때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이산가족이든 아니든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숨을 죽이며, 한 가족이라도 더 만날 수 있도록 가슴을 조이곤 했다. 어쩌다 한번씩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가면 울어서 눈이 통통 부운 아내를 보았던 기억도 난다.
138일간 453시간 45분의 마라톤 방송으로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 시간 생방송’ 기록도 남겼다. 또 5만 3162건의 이산가족 사연 소개 중 1만 189건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으니 어찌 그냥 숫자로만 기억할 수 있겠는가?
_ 2부 “내 생에 가장 길었던 날”, 안국정(동아일보 방송설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