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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지은이 캐서린 헤일스
옮긴이 이경란
책소개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포스트휴머니즘 비평의 이정표 캐서린 헤일스
‘인간 대 기계’라는 거짓 이분법 너머
포스트휴먼의 새 지평을 탐사하다

인간과 기계 사이 경계가 더욱 흐려졌다. 챗GPT를 시작점으로 생성형 인공지능들이 소위 ‘인간의 영역’에 긴밀히 뒤얽힌 결과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지배 혹은 대립의 서사로 파악하는 논의, 인간만의 영역을 기어코 복원하려는 시도는 현재 벌어지는 변화를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는 데 부단히 실패하고 만다.
캐서린 헤일스는 인간과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상호 작용 그리고 공진화에 대한 연구를 선도해 온 세계적 이론가로, 포스트휴머니즘을 학술 영역에서 최초로 정의하고 본격적 학문 분야로 발전시킨 석학으로 평가받는다. 헤일스의 주저에 속하는 이 책 ≪내 어머니는 컴퓨터였다≫는 인간의 언어(language)와 컴퓨터의 코드(code), 전통적 인쇄 문학과 현대의 전자 문학,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복잡한 상호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 오늘날 인간이 지능형 기계들과 어떻게 뒤얽히며 포스트휴먼 주체성을 띠게 되는지에 대해 정밀한 해석을 제시한다. ‘인간 대 기계’라는, 우리에게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가짜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인간과 기계의 공존 관계를 적확히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선사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 왔다. 우리는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컴퓨터도 우리를 만든다.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인간은 더는 그 이전의 인간과 똑같지 않으며,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한 디지털 원주민 세대의 뇌와 사고방식은 디지털 이주민이라 할 수 있는 부모 세대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가속화하는 인간과 기계의 상호매개가 서로의 잠재성을 실현시키는 공진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 복잡성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이분법적 틀 바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힘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 작업에 유용한 도구들을, 헤일스의 인문학적 통찰과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소쉬르·데리다의 언어학에서 C++ 언어까지
들뢰즈·라투르의 철학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까지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꿰뚫는 ‘학제를 넘나드는 힘’

이 책에서 헤일스가 인간과 기계 간 복잡한 뒤얽힘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다양한 분야를 횡단하고 연결하는 힘에서 나온다. 예컨대 헤일스는 인간의 ‘말하기’·‘글쓰기’와 컴퓨터의 ‘코드’ 간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말하기’와 관련해서는 소쉬르의 언어학을,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를, ‘코드’와 관련해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C++를 참고하며 이 셋을 한데 엮어 논한다. 이로써 인간 언어와 컴퓨터 코드 간 유사성과 차이점을 또렷하게 밝히고, 서로 다른 이 두 영역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보여 준다.
이 외에도 헤일스는 전통적 인쇄 문학과 현대 전자 문학 간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들뢰즈·가타리의 ‘기관 없는 신체’와 ‘아상블라주’ 개념을 차용하고, 라투르의 ‘사실물’과 ‘우려물’ 개념을 토대로 ‘물질성’을 재정의함으로써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인문학과 문학 그리고 컴퓨터학 등을 넘나드는 헤일스의 학제적 분석은 인간-기계 상호 작용을 분석하는 데 강력하고 유용한 틀을 선사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적어도 인쇄 전통에만 빠져 있는 문학 비평가와 문화 비평가가 이전과 똑같은 식으로 계속 작업해 나갈 수는 없다는 점을 납득하게 되기를 바란다. 언어와 코드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적 틀, 텍스트를 만들고 읽고 해석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 다른 매체로 물질적으로 예화되는 텍스트들을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 과학 연구를 문화와 문학이론에 더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xxvi~xxvii쪽)

허구는 현실과 어떻게 연루되는가?
필립 K. 딕, 스타니스와프 렘, 그렉 이건의 SF 속
‘창발 중인 미래’를 읽는 문학적 상상력

이 책을 이끄는 또 다른 큰 축은 픽션, 즉 허구다. 인공지능에 대한 가설적 전망이 인공지능의 개발에 반영되어 향후 궤적에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듯,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는 그것이 허구일지라도 기계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다. 헤일스가 이 책에서 ‘인간과 기계가 뒤얽힌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독해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들 소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존재가 앞으로 무슨 상황에 놓일지 미리 앞당겨 숙고·상상하게 하며, 이러한 ‘사고 실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듬게 한다.
이 책에서 헤일스는 필립 K. 딕의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스타니스와프 렘의 “가면”, 그렉 이건의 ≪퍼뮤테이션 시티≫와 ≪디스트레스≫ 등을 꼼꼼하게 읽고, 우리가 이미 마주하고 있거나 곧 마주할 상황들을 심도 있게 고찰한다. 정보 기술을 수단으로 인간 신체를 옭아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인간의 아날로그 의식에 기계의 디지털 프로그램이 얽혀 들 때 인간의 자유의지와 행위성은 어떤 위기에 처하게 될까(“가면”). 인간의 의식을 디지털화해 기계에 업로드할 수 있게 된다는 ‘포스트생물학적 미래’는 과연 장밋빛일까(≪퍼뮤테이션 시티≫).
이처럼 헤일스는 허구의 이야기를 경유해 인간과 기계가 뒤얽히는 상황에서 발생 가능한 상황과 쟁점을 적극적으로 상상해 봄으로써, 현재 ‘창발 중인 미래’의 단초들을 놓치지 않고 파악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책의 구성

1부에서는 언어와 코드의 관계가 다루어진다. 기초를 닦기 위해 1장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뒤얽히는 양상을 표현하는 상호매개(inter-mediation) 개념을 전개한다. 개념이 전개되면서 코드는 자연의 공통어(lingua franca of nature)로서 새로운 중요성을 띠게 된다. 2장에서는 소쉬르의 기호학,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프로그래밍 언어를 체계적으로 비교해 언어에 대한 기존 이론들이 코드의 작용을 파악하기에 적절치 않음을 보인다. 3장에서는 헨리 제임스의 “전신 창구 안에서”(1898), 필립 K. 딕의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1966), 제임스 J. 팁트리의 “플러그에 연결된 소녀”(1973)를 사례로 분석하면서, 기술이 전보 같은 수동적 코드에서 정교한 사이버네틱 장치나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능동적 코드로 변형될 때 인간이 이들에 각각 어떻게 연루되는지 밝힌다.
2부에서는 인쇄 문학과 전자 문학의 상호작용을 분석한다. 4장에서는 작품(work), 텍스트(text), 문서(document) 등과 같은 기초 개념을 재검토하고, 문학 텍스트들을 아상블라주(assemblage, 조립체)의 무리로 개념화해야 할 필요성을 설명한다. 5장에서는 언어와 코드, 인쇄 소설과 컴퓨터 프로그램 사이의 복잡한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를 원동력으로 삼아 내러티브를 구성한 사례인 닐 스티븐슨의 소설 ≪크립토노미콘≫를 독해한다. 6장에서는 셸리 잭슨의 전자 소설인 〈패치워크 소녀〉(1995)를 사례로 삼아 파편화된 주체, 복수의 분산된 원작자, 디지털 텍스트성 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3부에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 특히 이 둘이 인간의 주체성에 각각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7장에서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가면”(1976)을 독해하면서, 한 생명체 안에서 아날로그 의식과 디지털 프로그램이 뒤얽힐 때 벌어질 수 있는 사태를 숙고한다. 8장에서는 컴퓨터 속에 사는 디지털 생명체들과, 이들과 상호작용하는 인간 사이의 역학을 탐구한다. 9장에서는 그렉 이건의 SF 소설들을 분석하면서, 인간이 디지털화한 자신의 사본(copy)을 만들어 컴퓨터 속에서 살게 되는 ‘포스트생물학적 미래’에 대해 살펴본다.


 
200자평

인간과 기계 사이 경계가 더욱 흐려졌다. 챗GPT를 시작점으로 생성형 인공지능들이 소위 ‘인간의 영역’에 긴밀히 뒤얽힌 결과다. 세계적인 포스트휴머니즘 이론가인 캐서린 헤일스의 이 책 ≪내 어머니는 컴퓨터였다≫는 인간의 언어와 컴퓨터의 코드, 전통적 인쇄 문학과 현대의 전자 문학,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복잡한 상호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 오늘날 인간이 지능형 기계들과 어떻게 뒤얽히며 포스트휴먼 주체성을 띠게 되는지에 대해 정밀한 해석을 제시한다. ‘인간 대 기계’라는, 우리에게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가짜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인간과 기계의 공존 관계를 적확히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선사할 것이다.


 
지은이

캐서린 헤일스
영문학자, 디지털 문학 연구자, 포스트휴머니즘 이론가. 포스트휴머니즘을 학술 영역에서 최초로 정의하고 본격적 학문 분야로 발전시킨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다. 로체스터공과대학교에서 화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영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로체스터대학교에서 영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융합적 학문 배경과 관심을 바탕으로 과학, 문학, 기술 간의 관계를 다루는 포스트휴먼 이론에 대한 학제적 연구를 폭넓게 수행해 왔다. 듀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동 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디지털 문학을 문학 연구의 대상으로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컴퓨터 코드와 인간의 언어가 겹치고 분기하는 방식과 그 상호매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을 제시해 왔다. 최근에는 인간 인지와 디지털 매체의 상호 관계를 탐구하며 포스트휴머니즘 연구를 지속적으로 선도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How We Became Posthuman)≫, ≪글 쓰는 기계(Writing Machines)≫, ≪비사고(Unthought)≫ 등이 있다.


 
옮긴이

이경란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20세기 전환기 미국 여성 작가 연구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에서 HK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영미문학을 중심으로 젠더와 여성 문학, 경계와 소수자 문학, 포스트휴머니즘과 디지털 주체 등에 대한 연구·저술·번역 작업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내러티브와 이야기의 치유적 힘에 관심을 두고 의료인문학연구소 공감클리닉에서 서사의학(Narrative medicine)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 ≪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미국이민소설의 초국가적 역동성≫(공저), ≪젠더와 문학≫ 등이 있고, 역서로 ≪젠더 스터디≫(공역), ≪좋은 의사 나쁜 의사≫(공역), ≪행복의 약속≫(공역), ≪이야기로 푸는 의학≫(공역), ≪포스트휴먼≫ 등이 있다.


 
차례

프롤로그: 계산하는 친족

1부 만들기: 언어와 코드

01 상호매개: 텍스트성과 계산 체제
언어와 코드 / 계산 체제 / 상호매개 / 매체 기술과 체화된 주체들

02 말하기, 글쓰기, 코드: 세 가지 세계관
복잡성의 처소 / 소쉬르의 기호와 물질적 문제들 / 데리다의 차연과 코드의 명료성 / 코드의 계층 / 이산화 그리고 코드와 언어의 상호 침투

03 정보의 꿈: 세 가지 소설에서 신체의 탈출과 구속
정보의 경제 / 재기입으로서 코드: “전신 창구 안에서” / 실체 변화로서 코드: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 (재)현현으로서 코드: “플러그에 연결된 소녀” / 여성 주체성으로서 코드: 여자는 정말로 필요할 때 무엇을 팔 수 있는가

2부 저장하기: 인쇄 텍스트와 전자 텍스트

04 매체 번역하기
인쇄에서 전자 텍스트로 / 텍스트는 무엇인가 / 물리성, 물질성, 체화된 텍스트성 / 아상블라주로서 작품 / 언어 번역과 매체 번역 사이에서 상호매개하기: 텍스트성에 대한 함의들

05 수행적 코드와 수사적 언어: 닐 스티븐슨의 ≪크립토노미콘≫
수학과 도마뱀: 변증법의 첫 항들 / 암호작성술 지배하기 / 코드의 형제단 / 매듭진 모순어법들: 소진된 변증법 / 테크놀로지와 텍스트의 상호 침투

06 셸리 잭슨의 〈패치워크 소녀〉에서 명멸하는 연결성
주체성 그리고 저작권의 법적 허구들 / 괴물 창조하기: 주체와 텍스트 / (텍스트) 신체 봉합하기: 스토리스페이스에서 바느질과 글쓰기 / 종결: 링크, 렉시아, 메모리

3부 전송하기: 아날로그와 디지털

07 행위자의 가면 벗기기: 스타니스와프 렘의 “가면”
인간 속의 기계 / 기계 속의 인간 / 기계와 인간의 상호 침투

08 내러티브를 시뮬레이션하기: 가상 생명체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는가
진화한 가상 생명체 / 진화하는 내러티브들 / 인간을 계산하기: 아날로그 주체와 디지털 주체들 / 과학적 실재론과 형식의 윤회 / 디지털 생명체와 혼종적 주체성: 형식에서 프로세스로

09 주관적 우주론과 계산 체제: 그렉 이건 소설의 상호매개
앨런 튜링의 유산 / 징후로서 계산 / ≪퍼뮤테이션 시티≫: 죽음과 시뮬레이션으로 도착하는 편지 / ≪디스트레스≫와 참여우주

에필로그: 재귀와 창발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속으로

“이 책의 제목 ‘내 어머니는 컴퓨터였다’는 앤 발사모의 책 ≪젠더화된 신체의 기술≫에서 가져왔는데, 발사모는 한 장의 서두에서 이 용어 ‘컴퓨터’를 언급한다. 발사모의 어머니는 실제로 컴퓨터로 일했고, 발사모는 가족사의 한 편린을 이용해 정보기술의 젠더적 함의를 고찰한다. ‘내 어머니는 컴퓨터였다’라는 문장에 대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서 20세기 말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이해 방식은 계산에 필요한 지능이 주로 인간과 연관되었던 사회에서 점차 계산 기계와 연관되는 사회로 넘어가는 변화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내 어머니는 컴퓨터였다’는 호모 사피엔스와 로보 사피엔스(Robo Sapiens), 인간과 지능형 기계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수많은 문제의 제유다.”
_ “프롤로그” 중에서

“인간 언어에 대해서는 그간 방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해서도 그보다는 적지만 상당한 양의 연구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두 종류의 언어를 연결하는 피드백 루프를 탐색하는 비평은 극소수다. 문제는 코드와 언어가 다른 맥락에서 출현하고 발전할 뿐 아니라, 기호학적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에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차이들을 이해하는 작업이 여러 다양한 전문가 집단들이 관련된 탓에 지체되고 있다. 전문가 집단의 한쪽에는 인문학자와 언어학자가, 다른 한쪽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있다. 이들 공동체 간에 전반적으로 소통이 부족한데도 프로그래밍 코드와 언어는 매일 수없이 만나며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교섭은 범위 면에서는 전 지구적으로 활발히 일어나고 있으며, 일상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컴퓨터에 의존하는 환경이라면 거의 모든 곳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이제 기술적으로 발전된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언어만이 아니라 ‘언어 더하기 코드’에서 비롯한다.”
_ “01 상호매개” 중에서

의미 작용(signification)을 만들어 내는 말하기, 글쓰기, 코드라는 세 가지 주요 시스템은 하루에도 수없이 만나며 상호작용한다. 이들 각각에는 이미 이론화되어 온 세계관, 관련 기술, 사용자 피드백 루프가 따른다. 말하기에서 글쓰기, 글쓰기에서 코드로 나아가면서 뒤의 시스템은 자신의 역학 속에 이전의 가치를 기입해 넣으며 앞의 시스템을 재해석한다. 고도로 발전한 정보화 시대에 말하기와 글쓰기가 이진 숫자로 코드화될 때 의미 작용 프로세스가 어떻게 바뀌는지 이해하려면 말하기와 글쓰기라는 레거시 시스템과 코드가 어느 지점에서 겹치고 단절되는지 서둘러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프로그래밍된 매체에서 일어나는 말하기와 글쓰기를 여전히 발화된 발언이나 인쇄된 문서로 인식할 수 있다 해도, 이들은 코드와 만나면 변화한 상태로 나타난다. 또한 코드의 효과는 개별 텍스트에 한정되지 않는다. 더 넓은 의미에서 코드는 광범하게 이용되면서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 이해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_ “02 말하기, 글쓰기, 코드” 중에서

“자유롭게 흐르는 정보라는 꿈은, 한편으로는 희소성, 물리적으로 제약된 공간, 계급, 젠더, 체화, 시간, 필멸성에서 벗어나려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이윤 추구, 계층화된 사회 구조, 물리적 제한, 젠더 불평등, 낙인찍히고 결함 있는 신체들 등이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재천명된다. 복합적 피드백 루프가 이 두 측면을 연결한다. 정보의 꿈을 가능하게 한 것이 통신 기술이라는 점에서, 신체를 통신이라는 보철물(prosthesis)과 잇는 것이 하나의 피드백 루프를 이룬다. 한편 주체성은 정보의 경제를 위해 재설정된 다음, 이후 계속되는 상호매개의 사이클에서 신체와 주체가 에너지와 물질의 제약하에 다시 놓이며 재설정된다. 이때 주체성이 겪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또 다른 피드백 루프를 이룬다. 2장에서 보았듯 의미 작용의 프로세스 또한 기호 변화의 역학과 연관된다. 의미 작용의 프로세스는 변동 없고 지속성 있는 인쇄의 기입에서 전자·전기 통신 기술 특유의 코드 계층들로 이동한다. 고정된 부호가 계층 구조로 변화하면서 그 인코딩/디코딩의 연쇄에 개입이 일어날 가능성이 열린다. 이러한 개입은 보통 통신 기술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미 작용의 이 변화된 본질은 인간과 기계를 결합하는 보철물들과 묶인다. 의미 작용, 기술, 주체성은 공진화한다.”
_ “03 정보의 꿈” 중에서

“나는 인쇄 문서를 전자 텍스트로 변형하는 것을 일종의 번역, 즉 ‘매체 번역(media translation)’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번역은 필연적으로 해석 행위이기도 하다. 번역이라는 비유를 끌어들이는 것은 딘 그리거의 주장에 동의하는 셈이 되는데, 그리거는 번역에서 무엇인가가 손실되기도 하고 획득되기도 한다는 격언이 인쇄 문서가 웹으로 옮겨질 때 특히 잘 들어맞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쟁점은 이 손실과 획득이 무엇을 수반하는지, 특히 읽기와 쓰기의 근본적 전제들에 관해 어떤 점을 드러내는지 철저하고 정확하게 살펴보는 일이다. 비록 잘 인식되지는 않지만, 나는 텍스트성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인쇄 매체에 특정적인 가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이 손실과 획득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하려 한다. 전자 텍스트성의 도래는 텍스트에 관한 근본 개념을 재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인쇄 텍스트와 전자 텍스트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바로 이것이 매체 번역이 제공하는 ‘획득된 것’이며, 우리가 거절하기 어려운 선물이다.”
_ “04 매체 번역하기” 중에서

“현시대에 인쇄된 책들은 두 개의 벡터 간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한다. 한 벡터는 과거에 뿌리를 박고 다른 벡터는 미래를 향해 호를 그리며, 책 제작 기술의 수 세기에 걸친 전통과 디지털 매체가 연 새로운 가능성 사이를 통과한다. 소설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는 기계 인쇄기와 매우 다른 글쓰기 기술이 17세기에 뿌리를 둔 소설의 내러티브 관습에 기입되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갈등이 특히 더 첨예해지는 순간이다. 언어와 코드가 서로 압력을 가하는 복잡한 교류 지역에 놓인 정보처리적 글쓰기 기술의 영향은 표면적으로는 종이 위의 잉크 자국인 책 안에 어떤 경로로, 어떤 방법으로 침투할까? 이러한 변화가 감추어져 있다면, 그것을 파내기 위해 어떤 비평적 전략을 사용할 수 있을까?”
_ “05 수행적 코드와 수사적 언어” 중에서

“〈패치워크 소녀〉는 왜 선형적인 인과적 모델이 그것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데 부적절할 수밖에 없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 텍스트는 의미를 창조하기 위해 전자 텍스트만큼이나 그 선조[인쇄 텍스트]에 의존한다. 이 텍스트는 언어와 코드를 배열해서 문자 그대로의 텍스트를 생산할 뿐 아니라 그 텍스트에 대한 담론도 생산한다. 그리고 연속적이면서 분리되어 있는 점선이라는 중심적 수사에서 이 텍스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보완적 역학을 실연한다. 요약하자면, 〈패치워크 소녀〉는 여러 차원에서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그 미학적 차원에서, 주체성 수행에서, 명멸하는 연결성을 창조하는 다수의 인과성에서) 상호매개의 중요성을 입증한다.”
_ “06 셸리 잭슨의 〈패치워크 소녀〉에서 명멸하는 연결성” 중에서

“렘의 이야기는 프로그램에서 의식을 분리하면서 들뢰즈, 가타리, 라캉이 그려낸 포스트휴먼 주체를 예견한다. 이 주체에게서 의식은 행위성이 거하는 자리가 아니며, 의식은 왜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지 추측만 할 뿐이다. 렘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의식이 닿지 않는 저 너머에서 행위성이 기원한다는 것을 점차 깨닫는다. 의식은 결국 외부의 행위자가 조종하는 계산 프로그램에 의해 실연되며, 지금처럼 행동하도록 그 코드가 이미 프로그래밍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행위성은 이 심층 단계에서도 여전히 모호하다. 프로그램이 스스로의 행위자이면서 동시에 왕의 의지의 대리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모호함은 의식 속에서도 반복되는데, 의식 속에서 그는 자신이 주변부, 말하자면 코드의 목적이 모호하게 충족될 수도 있는 회색지대에서 행위성을 행사하고 있다고 느낀다. 행위성을 이렇게 복잡하게 재설정할 때는 무엇보다도 무의식을 의식의 어두운 거울이라기보다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상상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무의식에 숨겨진 행동은 적나라한 기계적 코드 작용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_ “07 행위자의 가면 벗기기” 중에서

“나는 내 환경 안에서 인간과 비인간을 망라해 모든 다른 인지자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 환경에는 당신이 이 문자들을 해독하는 바로 이 순간 실행되는 역동적 프로세스와 이 종이, 이 잉크, 명사와 동사로 이뤄진 이 낡은 언어를 만들기 위해 응결되고 과거에 실행되었던 역동적 프로세스들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 명사와 동사를 새로운 목적에 맞게 변화시켜, 여러분이 내 신체, 당신의 신체, 가상 생명체들의 신체를 동사를 실연하는 명사가 아닌 역동적인 상호매개로 보게 만들고 싶다. 이 상호매개는 풍요로운 복잡성을 지닌 분산 인지를 창조하기 위해 다양한 생명 형식들의 체화된 물질성들을 함께 엮어 내는 역동적 상호매개다. 이것이 가상 생명체들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_ “08 내러티브를 시뮬레이션하기” 중에서

“우리의 기술적 기량의 범위가 늘어나는 그만큼, 우리의 생물적 현존에 가해지는 위협도 커진다. 산성비, 온실효과 그리고 이 외 환경 악화들이 있으며, 인종 청소라는 학살과 우리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것에 다른 문화를 끼워 맞추기 위한 군사적 감행도 있다. 이러한 재앙들 사이에서 우리는 이건의 주관적 우주론 삼부작이 의미하는 바, 즉 ‘우리가 만드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존재’가 서로 깊이 얽혀 있다는 암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더 나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미래가 어떠하든, 목적론적 환상은 이건의 소설에서 강하게 작동하면서 우리가 세계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의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이미지로 기계들을 창조하고 우리 자신을 그것들과 유사한 계산 메커니즘이라고 상상하면서 더욱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 간다.”
_ “09 주관적 우주론과 계산 체제” 중에서

“지능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경험은 나를 엄청나게 변화시켜서, 그 만남에서 비롯하는 사람은 그 만남을 시작했던 그 사람과 정확히 같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인간으로서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것(내가 말하는 언어, 내가 읽는 책, 내가 일람하는 정보와 디지털 예술, 수백억 년의 진화적 역학에서 내가 물려받은 생명 작용, 정체성에 대한 나의 인식을 생성시키는 의식)은 벌써 지능 기계와 내가 맺는 상호 관계의 상호매개적 역학에 영향받고 있고,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훨씬 더 깊게 변형될 것이 틀림없다. 내가 보기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화두는 이러한 상호 관계를 지배의 구조에 기입하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이 상호 관계들의 복잡한 상호성을 인식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가 만드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존재’는 함께 공진화한다. 창발은 기술적 역학일 뿐 아니라 윤리적 역학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깨달음은 한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의 연속적 순환들로 도착하며, 각각의 알아차림은 바로 전에 온 알아차림 위에 하나씩 쌓인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이 그러했고,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역동적 창발과 관련된 일이 늘 그러하듯, 끝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_ “에필로그” 중에서



서지정보

발행일 2025년 5월 12일
쪽수 564 쪽
판형 128*188mm ,  210*290mm
ISBN(종이책) 9791143001610   93300   35000원
ISBN(EPUB) 9791143001634   95300   28000원
ISBN(큰글씨책) 9791143001627   93300   47000원
분류 미디어, 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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