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너 자신이 되라>는 신예 프랑스 극작가 콤 드 벨시즈가 2017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작가와 작품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청소용 세제 ‘락스’를 생산하는 자벨이라는 대기업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취업 면접 상황을 보여 주는 2인극이다. 여성 인물 두 명이 등장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를 고대 그리스어로 벽에 붙여 놓은 사무실에서, 홍보 커뮤니케이션 부서의 부장이 취업을 희망하는 한 젊은 여성을 앞에 두고 최종 면접을 보는 중이다. 시각장애인인 이 여성 부장은 신비주의에 가까운 제품 홍보 전략을 내세우며 함께 일에 적합한 직원을 뽑기 위해 여러모로 독특한 테스트를 한다.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젊은 여성은 성실하고 의욕적이며 관련 분야에서 경험도 쌓았다. 하지만 부장은 이력서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곧바로 엉뚱하면서도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실존적인 질문으로 넘어간다. “당신은 누구인가?”
취업 면접에서 진짜 자기 자신을 보여 달라는 요구에 어디까지 응할 수 있을까?
부장은 점점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해 오며 취업을 위해서는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면접자는 부장의 요구가 어딘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반박하거나 거부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무엇이든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면접에 임하게 된다. 이 작품은 수많은 취업 면접자들 사이의 무한 경쟁 상황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최종 선택을 앞둔 마지막 단계, 1 대 1 면접의 순간을 보여 준다. 경쟁자는 다른 면접자가 아니라 오히려 면접자 자신이다. 면접을 통과할 방법은 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뿐이다.
부장은 인터뷰 과정에서 면접자에게 은밀한 사생활뿐 아니라 절대자, 존재, 미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이력서에 써진 대로가 아닌, 겉모습이 아닌, 내면에 숨겨진 진정한 자기 자신을 보여 달라는 권력자의 요구에 면접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내던지며 스스로 노예가 되어 간다. 모욕, 위협, 유혹, 협박을 견뎌 내고 위험을 감수한 채 극한 게임에 응하는 것이다. 상황을 과장하고 있긴 하지만 취업 시장, 노동 시장에서 부딪히는 권력 관계의 폭력성, 성폭력, 번아웃, 부조리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엿보인다. 그 외 예술, 죽음, 사회에 대한 회의, 사랑에 대해서도 종횡무진 무질서하게 곧장 질문을 던진다.
그로테스크, 부조리, 시, 풍자, 철학적인 질문들 사이에 놓인 <너 자신이 되라>는 냉소적이면서 신랄하게 허를 찌르는 풍자 코미디이자 스릴러, 사실주의적인 여러 스타일과 상황이 뒤섞인 판타지, 희비극이라 할 수 있다.
200자평
‘락스’를 생산하는 대기업 홍보 커뮤니케이션팀의 그로테스크한 최종 면접 상황을 보여 주는 2인극이다. 취업난이라는 시의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이 권력에 어떻게 길들여지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프랑스 신예 극작가 콤 드 벨시즈의 2017년 작품이다.
지은이
콤 드 벨시즈(Côme de Bellescize, 1980∼)는 프랑스 극작가, 연출가이며 파리 태생이다. 소르본 대학 졸업 후 클로드 마티유 연극 학교에 들어가 연기를 전공한 뒤 주로 극작과 연출 작업에 전념한다. 배우 뱅상 종케즈와 함께 극단 프라카(Théâtre du Fracas)를 창단한하고 2005년에 작·연출한 <유랑하는 자들(Les Errants)>을 아비뇽 오프(Off) 페스티벌에서 초연한다. 이 작품으로 2005년 ‘파리 젊은 재능상’을 수상한다. 2008년에는 파리 서부 극장과 파리 13극장에서 막심 고리키의 <태양의 아이들(Les Enfants du soleil)>을 연출한다. 카트린 안(Catherine Anne)의 <아! 아나벨…(Ah ! Anabelle…)>(2011)을 청소년극으로 연출, 팔라브뢰세스 극단 제작으로 낭테르-아망디에 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다. 2012년에는 자신의 희곡 <아메데(Amédée)>를 연출해 파리 탕페트 극장에서 공연한다. 같은 해 피가로 보마르셰 극작가상에 노미네이트된다. 2014년에는 극단 샤를 뒤랭 요청을 받아 레지던시 작가로서 발드마른(Val-de-Marne) 지방에서 3개월간 체류하며 18∼25세 젊은이들을 인터뷰하고 <청춘을 가만히 둬(Laisse la jeunesse tranquille)>를 쓴다. 2015년에는 <외제니(Eugénie)>를 작·연출한다. 2017년에 <너 자신이 되라>를 작·연출한다. <너 자신이 되라>는 프랑스 출판사 백조들(Les Cygnes)에서 2019년 출판된다. 2017년에 루아르주 후원으로 아비뇽 오프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뒤 파리 롱포앵 극장과 벨빌 극장에서 공연된다. 이후 계속해서 곳곳에서 공연 중이다.
옮긴이
임혜경은 현재 숙명여대 명예교수(프랑스언어문화학과)이며, 번역가, 연극평론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극단 프랑코포니’(2009년 창단) 대표로서 거의 매년 한 편씩 공연 제작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번역 신인상(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 1991), 한국문학 번역상(한국문학번역원, 2003)을 공역자 카티 라팽과 공동 수상한 바 있으며, 서울연극인대상 번역상(서울연극협회, 2014)을 수상했다. 그 외 프랑스정부 교육공로훈장(PA)(2015), 올빛상(학술평론부문, 한국여성연극인협회, 2018)을 받았다. 프랑스어 역서(카티 라팽과 공역)로는 윤흥길의 소설≪에미≫와 ≪장마≫, ≪김광규 시선집≫을 비롯하여, 최인훈 희곡≪봄이 오면 산에 들에≫, 윤대성 희곡≪신화1900≫, 이현화 희곡≪불가불가≫, 이윤택 희곡≪문제적 인간-연산≫과 ≪이윤택희곡집≫, ≪한국 현대 희곡선≫, ≪한국연극의 어제와 오늘≫, ≪이현화 희곡집≫ 등의 한국 문학과 한국희곡, 한국연극 연구서가 프랑스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우리말 역서로는 불어권의 동시대 희곡인 미셀 마크 부샤르의 ≪고아 뮤즈들≫와 ≪유리알 눈≫, 장 뤼크 라갸르스의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와 ≪단지 세상의 끝≫, 장 미셀 리브의 ≪동물 없는 연극≫, 조엘 폼므라의 ≪두 한국의 통일≫와 ≪이 아이≫, 레오노르 콩피노의 ≪벨기에 물고기≫, 상드린느 로쉬의 ≪아홉 소녀들≫, 플로리앙 젤레르의 ≪아버지≫, 마갈리 무젤의 ≪쉬지 스톨크≫ 등이 있다. 그 외에 피에르 볼츠의 ≪희극, 프랑스 희극의 역사≫(공역), 카티 라팽의 시집 ≪그건 바람이 아니지≫와 ≪맨살의 시≫(공역)가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
2
3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부장 : 너 자신을 알라, 그노티 세오톤(Gnôthi seautón). 그리스 델포이 신전 정면에 새겨져 있는 글자죠. 모든 서양 철학의 원천이죠.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그노티 세오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면접 때 자기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것, 그게 거기서 나온 거죠. 직업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으로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해요.
-40쪽
젊은 여성 : 헐! 이 면접 완전 미쳤어! 이거 다, 나 알아, 하루 종일 파워포인트나 하게 될 건데!
부장 : 그런데 소비자들, 유혹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만일 소비자들에게 사전 준비 없이, 던져 주기만 하면, 그냥 살 것 같아요?
젊은 여성 : 아니요, 그렇지만… 그런데다 전 이런 연습에는 허당이에요! 왜 락스에 대한 광고는 말씀하지 않으세요? 시장 점유율이라든가 언론 발표 같은 거. 제가 배운 거!
부장 : 당신이 아는 거, 그건 알고 있는 거잖아요! 날 유혹하는 거, 날 사랑하는 거. 그건 모르잖아요! 그걸 당신이 발견해야 하는 거예요!
-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