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혼기가 찬 남녀를 짝 지워 주려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한국 최초의 희곡
1791년 6월 초여름, 국왕 정조가 한성 오부에 칙령을 내려 나이가 찼는데도 혼인하지 못하는 백성들의 혼인을 조정에서 주선하고 혼수를 보조하게 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을 맡은 경조윤과 예부는 하명대로 시행했음을 국왕에게 보고하게 되는데, 때마침 가난 때문에 파혼을 당한 신덕빈의 딸과, 같은 이유로 문제가 된 김사중의 서손 희집이 혼기를 놓치게 되자, 이미 국왕의 하명에 따라 혼사가 순조롭게 진척되고 있음을 보고한 담당 부서로서는 난감한 사태를 맞게 된다. 급기야 책임을 맡았던 이승훈과 윤형이 나서서 이들 두 사람의 혼례를 성사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호조판서 조정진, 선혜청 제조 이병모가 신랑 신부의 대부로 나서고 각 관아에서는 많은 폐물까지 지원한다. 이 내용을 다룬 자료가 <동상기>다.
<동상기>는 희곡 형식으로 창작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전 희곡이다. 노처녀 노총각을 조정에서 결혼시켜 주는 내용으로, 18세기 후반 조선시대의 서울 사회를 그리고 있다. 원대 잡극이나 청대 희곡의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 극 전통도 살아 있다. 예컨대 등장인물의 대화식 구성방식은 중국적이기보다 우리 방식이다. 어휘 선택에 있어서도 조선 후기의 조선식 한자 표기를 했는데 이는 독자층에게 훨씬 향토적 정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동상기>는 공연을 전제한 희곡이 아니라 단순히 읽기 위해 창작된 작품이다. 조선 후기 독서층에게 있어 ‘읽는 희곡’으로서 역할을 문체적으로 충족하면서 소설처럼 향유되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현재 전하는 이본 4종의 원문을 대조하여 번역했다. 여러 이본 중에서 ‘청옥당 제칠재자서 동상기’를 기본 텍스트로 고른 데는 이 자료가 그만큼 본 작품을 바라보는 역자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계급이 맞지 않고 빈부가 맞지 않아 짝을 찾지 못하는 결혼의 풍습이야 오늘날과 다를 바 없지만, 이런 다양한 자료가 남아 있게 된 이유나 생각보다 심한 각 이본 간의 오·탈자 문제를 이해하려면 이보다 더 좋은 자료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정조기 문체반정에 휘말린 작품 중 하나
변혁기에 접어든 조선 후기 사회가 고착된 집권 노론층의 정국 운영으로 더 이상 변화의 물꼬를 트기 어렵게 될 즈음, 수백 년 전통의 가례를 거부하고 중국으로부터 천주교 세례를 받고 돌아온 사람까지 나타나고, 폐쇄된 상층부 자체에서도 전통적인 성리학 지식 습득에 안주하기보다 역동적인 하층부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쪽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패사소품 서적을 탐독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이렇게 되자 국왕 정조는 이런 원인이 명·청 소품문의 유입에 있다며 문체를 바로잡으려는 정책을 펼친다. 그리하여 몇몇 인사들이 쓴 불순한 문체를 순정한 쪽으로 바꾸도록 명한다. 문체가 시대를 반영한다며 뒤숭숭한 시대 분위기를 일신코자 한 이 사건을 문체반정이라 일컫는다. 그래서 조정 관료나 유생들이 쓴 글을 검열하는데, 남공철·김조순·이상황·박지원·이덕무·김려·이옥 등이 견책을 당한 당시 선비들이다.
지금으로서는 구습을 벗고 시대에 맞는 문체를 사용한 것 같은 이 사건이 어떤 연유로 발생되었을까? 지금도 이견이 분분하지만, 이 책이 그 정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단지 소품체 어휘 몇 단어 때문에 이들이 견책을 당했다기보다 훨씬 더 백화투에 다가선 것이 이유일 것이라 믿는다. 이 책에 실린 이옥의 <김신부부사혼기>를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으로 읽을 수 없는 생경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다.
문체반정에 휘말린 사람들 중 하나인 이덕무는 자송문도 작성하지 못한 채 곧 세상을 떠났고, 이옥은 충청도 정산현에 충군되었다가 나중에는 경상도 봉성(현재 합천군 삼가면) 땅에 가서 118일간 귀양살이를 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조선 선비의 삶이었다.
청옥당이라는 이름 모를 인물에 의해 편찬된 작품집
이 책은 청옥당(靑玉堂)이라는 조선 후기의 이름 모를 인물에 의해 편찬되었다. 소설 <김신부부전>, 희곡 <동상기>를 한데 묶은 작품집이다. ‘동상기’는 희곡 하나를 일컫기도 하지만 여러 작품을 묶은 작품집을 ≪동상기≫로 부르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현재 전하는 이본 4종의 원문을 대조하여 번역했다. 여러 이본 중에서 굳이 ‘청옥당 제칠재자서 동상기’를 기본 텍스트로 고른 이유가 있다. 이 자료가 그만큼 본 작품을 바라보는 역자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계급이 맞지 않고 빈부가 맞지 않아 짝을 찾지 못하는 결혼의 풍습이야 오늘날과 다를 바 없지만, 이런 다양한 자료가 남아 있게 된 이유나 생각보다 심한 각 이본 간의 오·탈자 문제를 이해하려면 이보다 더 좋은 자료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200자평
<동상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전 희곡이다. 노처녀 노총각을 조정에서 결혼시켜 주는 내용으로, 18세기 후반 조선시대의 서울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여러 이본 중 ‘청옥당 제칠재자서 동상기’를 저본으로 골랐다. 생각보다 심한 각 이본간의 오탈자 등의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자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동상기>와 동일한 내용의 소설 <김신부부전>이 함께 실려 있다. 이 두 작품은 정조의 문체반정에 휘말린 이덕무와 이옥을 작자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문체반정의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인 생경한 문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
정용수는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거쳐,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 전공으로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2000년부터 U. C. Berkeley, Institute of East Asia Studies에서 1년간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현재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역서로 ≪후탄선생정정주해 서상기≫(국학자료원, 2006), ≪剪燈新話句解≫(푸른사상, 2003), ≪봉성에서≫(국학자료원, 2001), ≪고금소총 명엽지해≫(국학자료원, 1998), ≪국역 소문쇄록≫(국학자료원, 1997)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청옥당제칠재자서
동상기(靑玉堂第七才子書東廂記)
동상소지(東床小識)
김신부부전(金申夫婦傳)
동상기(東床記)
제1절
제2절
제3절
제4절
해설
참고문헌
역주자에 대해
책속으로
겨울 달이 밝으나
눈 속에서는 사람들이 추위서 싫다 하고,
가을꽃이 아름다우나
봄 지난 뒤 누가 아름답다 하리오.
한 떨기 향내도 근심 되면,
사람을 창증에 걸려 죽게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라.
누에가 늙으면 오히려 고치라도 되고,
꽃은 지면 그래도 열매라도 생기지만,
처녀가 늙으면 무얼 하겠느뇨?
-<동상기> 중
“한 지아비와 한 지어미가 각기 짝을 얻는 것은 고래로 수없이 많았지만, 김희집과 신씨 부부처럼 인연이 교묘하게 들어맞는 경우는 아직 없었으니, 보통 기뻐할 일이 아니거니와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김신부부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