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환상에 대한 인간의 열망
디지털 영상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천 냥’이란 속담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이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 중 70%가 시각을 통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눈, 즉 본다는 것이 인간에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시각의 경험은 늘‘현재 시제’의 경험이다. 유일한 방법은 기억하고, 발화, 서술, 언변하는 것뿐이었다. 음성이나 문자, 유사 기호가 개입된 재현은 일단 어떤 형태로든 모듈레이션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어 시각 경험의 생생함만이 지닐 수 있는 정보의 상당량을 소실하는 비용을 치러 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제약은 인간에게 시각 경험에 대한 열망을 갖게 했다.
이 열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본 것을 그대로 다시 그려내는(혹은 만들어내는) 재현에 대한 열망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에는 없지만 인간의 소망을 담아내는 ‘환상’이다. 이 두 가지 열망에 대한 추구는 곧 영상의 발달사다. 혈거시대 동굴벽화, 회화시대의 그림, 사진의 발명과 영화의 발전이 그렇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재현’된 영상이다. 인간의 영상에 대한 열망 중 한 가지만이 충족된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등장했고, 이는 재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변조와 조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상의 부재 속에서도 핍진한 리얼리티를 창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때문에 실존과 가상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사상(似像, pistis)’과 ‘환상(phantasma)’을 향해 누적되어 온 이미지의 과정에서 디지털은 테크놀로지의 진보였다.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기술결정론적인 측면으로만 규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바로 디지털 영상에 대한 담론이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디지털 영상의 근원적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 태초부터 염원했던 환상의 장면을 통해 확장된 인식론적 층위와 이에 따른 존재론적 지평을 탐구했다. 이 책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구현한 디지털 영상이 이전까지의 그 어떤 영상과도 구별되는 심층적 가치를 인문학과 미학적 견지에서 해석한다. 디지털 영상의 근원적 탁월성과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오랫동안 영상 제작과 학문적 연구를 병행해 온 저자는 “그간 디지털 영상을 인문학적으로 조망한 책이 없어 연구와 배움에 어려움을 겪었던 연구자들이 이 책을 통해 영상학에 대한 연구 지평을 넓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되었다. 왜 디지털 영상을 인문학, 미적으로 연구해야 하는지를 시작으로 플라톤의 미메시스와 테크네 철학, 기계복제와 환상 이미지, 디지털 환상의 구현 그리고 디지털 영상의 알레고리 등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서술하고 있다.
200자평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영화 <아바타>까지, 인류의 ‘이미지’에 대한 열망은 거대한 성취를 이뤄냈다. 이미지에 대한 열망은 핍진성과 ‘환상’의 구현에 대한 염원이다. 그리고 마침내 디지털 영상에서 환상은 구현되고 있다. 디지털 영상이 수공이나 기계 복제에 의한 이미지보다 탁월한 이유다. 이 책은 디지털 영상이 이전까지의 그 어떤 영상과도 구별되는 심층적 가치를 인문학과 미학적 견지에서 해석한다. 디지털 영상의 근원적 탁월성과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영상학을 인문학적, 미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이다.
지은이
최원호
동서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영상애니메이션학과 교수다.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 협동과정’에서 영상학을 전공했으며, “디지털 영상의 존재론적 특성”으로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방송 PD로 근무한 후, 2006년부터 동서대학교 영상애니메이션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대학원 교육을 위한 보직을 겸직하고 있고 중국 중남재경정법대학 한중뉴미디어학원에서 교환교수로 강의했다. 영상미학과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연구, 강의하고 있으며 뉴미디어에 대한 공로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표창을 수상했다. 저서로는『XR콘텐츠 제작솔루션 기술연구』(2020), 『시네마로보틱스 디지털콘텐츠 표준화기술 연구』(2018), 『영상언어와 영상편집의 이해』(2009), 『영상편집기초』(2008)가 있으며, 30여 편의 국내외 학술논문, 50편 이상의 국내외 학술 발표 실적이 있다.
차례
머리말
01 들어가는 글
02 이미지 전략과 테크네의 진보
미메시스와 테크네
테크네의 축적
기계 복제와 이미지
영상의 실현
03 기계 복제와 환상 이미지
기계 복제에 대한 신뢰와 한계
환상의 시도
영화의 등장과 환상성
04 디지털의 환상과 탈근대적 재현
디지털과 이미지의 변조
핍진적 이미지와 환상의 무대
탈근대적 재현과 디지털 영상
05 디지털 영상의 알레고리
인식론적 확장
존재론적 지평
06 맺는 글
참고문헌
책속으로
결국 ‘0’과 ‘1’로 구성된 디지털 이미지로의 도약은 이미지 재현의 역사에서 신르네상스를 창조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새로운 근원에서 출발한 디지털은 변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상의 존재와 무관하게 가상적 이미지를 실재보다 더 핍진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디지털 영상의 파급력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비약적으로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
_“01 들어가는 글” 중에서
이미지의 존재론적 위상에 대한 시도에서 가장 심대한 학문적 토대를 마련한 이론가는 플라톤이다. 이미지의 질서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학문적 성과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대상의 근원으로서의 이데아’, ‘이미지 생산을 위한 기술로서의 테크네’를 정의함으로써 철학적 성과를 이루었고, 현재에도 이미지와 기술에 대한 논의는 플라톤의 학문에서 단초가 이어지고 있다.
_“02 이미지 전략과 테크네의 진보 ” 중에서
이미지를 향한 미메시스의 역사에서 사진술이 ‘참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을 실현했다면, 영화는 찰나적 사상을 넘어 눈이 생산하는 시각에 비견할 만한 영상의 실현을 성취했다. 사실적 이미지의 완벽함과 움직임의 결합은 영상의 지평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다른 시각 매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을 형성하게 되었다.
_“02 이미지 전략과 테크네의 진보” 중에서
이미지의 역사는 두 갈래의 목표를 향한 수행의 과정이었다. 하나는 ‘눈’이 생산하는 이미지와 같은 ‘사실성의 확보’였고 나머지 하나는 ‘환상의 이미지’였다. 일찍이 플라톤의 철학에서도 이미지의 지향점을 ‘사상’과 ‘환상’으로 분류했었고 실제 이미지의 역사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_“03 기계 복제와 환상 이미지” 중에서
자동 생성에 의해 객관적이며 설득력 있는 이미지가 성취된 이후 환상에 대한 가능성이 타진되자 누적된 환상을 향한 욕구는 증폭되었다. 이때 극적인 도약이 이루어진다. 바로 디지털이다. 디지털은 복제와 환상에 대한 한계를 허물며 예상을 뛰어넘는 이미지 생산의 토대를 마련했다. ‘0’과 ‘1’로 구분되는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끈 것이다.
_“04 디지털의 환상과 탈근대적 재현” 중에서
그러나 환상이 디지털 영상을 통해 다가올 때, 이미지는 존재의 유무와 상관없이 이미지 그 자체로서 ‘대상’의 지위로 도약을 시도한다. 디지털 영상은 가상의 대상을 존재의 부재 속에서도 생생한 이미지의 하이퍼 리얼리티로 실현하기 때문이다. 이제 디지털 영상은 ‘눈’을 대체하는 곳까지 나아간다.
_“05 디지털 영상의 알레고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