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레소스≫의 줄거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기초하고 있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 10년사 중 전쟁 막바지 50일간을 1만 5000여 행에 걸쳐 묘사했다. ≪레소스≫는 트로이 전쟁의 판세가 뒤집히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해안가에 주둔해 있던 그리스 군대의 철군 움직임이 트로이군에 포착된다. 헥토르는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스군에 첩자를 보낸다. 그때 마침 트라키아의 왕 레소스가 군대와 함께 트로이에 도착한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 트로이가 트라키아에 청병하고 10년 만이다. 이미 트로이의 승리가 확실해진 이때, 레소스와 트라키아 군대의 뒤늦은 지원에 헥토르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레소스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출정하자마자 스키타이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스키타이와의 지난한 싸움을 끝내고 곧장 트로이로 향한 트라키아 군대의 지친 모습을 보고 헥토르는 비로소 오해를 푼다. 그날 밤 레소스와 트라키아 군대는 트로이 진영에서 오랜만에 다디단 잠에 빠진다. 이날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10년간 끌어오던 트로이 전쟁의 결말을 예고한다.
≪레소스≫는 기원전 440년 이전에 상연되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창작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트라키아 왕 레소스의 죽음을 둘러싼 갈등이 극을 끌어간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극적 완성도가 떨어져 에우리피데스 작품이 맞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필멸의 인간은 신의 뜻을 알 길 없으니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는 이 작품에서도 유효해 보인다.
자, 여러분! 왕자님께 복종합시다!
무기를 들고 우리 동맹군에게
왕자님 명을 전하러 갑시다!
어쩌면 우리를 보살피는 신께서
승리를 안겨 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126쪽, 코로스의 합창 전문
≪레소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트로이군 코로스의 합창은 여전히 트로이의 승리를 낙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 이 전쟁은 결국 그리스의 승리로 끝이 난다. 신의 뜻을 인간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200자평
트로이 전쟁 10년차, 전세가 트로이에 유리한 가운데 트로이 왕자 헥토르는 해안가에 주둔하고 있던 그리스군의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한다.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스군에 첩자를 보낸 그날, 트라키아의 왕 레소스가 참전을 위해 군사를 이끌고 트로이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헥토르는 트로이의 승리가 분명해진 이때, 10년 만에 트로이에 모습을 드러낸 동맹 트라키아군과 레소스에게 서운함을 표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내용이 비극의 소재가 되고 있다. 작품성, 창작 연대 추정 등에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맞는지 논란이 있는 작품이다.
지은이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BC 406)는 아이스킬로스(Aeschylos), 소포클레스(Sophocles)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원전 534년에 그리스에서 최초로 비극이 상연된 후,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통해 그리스 연극은 전성기를 맞는다. 기원전 3세기까지의 그리스 고대극의 전통은 로마를 거쳐 유럽 전체에 퍼지며 서구 연극의 원류가 되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과정에서 서구 연극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극작가다.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다만 부유한 지주 계급 출신이라는 점과 좋은 가문에서 상당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점 정도만 전해진다. 기원전 455년에 데뷔한 이후 92편에 이르는 작품을 집필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18편뿐이다. 기원전 408년경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에 머물렀고 2년 뒤에 사망했는데,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와 <바카이>는 이때 집필된 작품이다.
옮긴이
김종환은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네브래스카 대학교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6년부터 계명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했고, 현재 한국영미어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에 재남우수논문상(한국영어영문학회)을 받았고, 1998년에는 제1회 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을, 2006년에는 원암학술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와 타자≫, ≪셰익스피어와 현대 비평≫,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공저)≫이 있으며, 세 권 모두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 저서로 ≪셰익스피어 작품 각색과 다시쓰기의 정치성≫, ≪인종 담론과 성 담론≫,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비극≫,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희극≫, ≪음악과 영화가 만난 길에서≫, ≪상징과 모티프로 읽는 영화≫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주요 작품 20편을 번역했으며, 소포클레스의 작품 전체와 아이스킬로스의 현존 작품 전체를 번역했다. 최근 ≪길가메시 서사시≫를 번역했고, 현재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서막
제1삽화
제2삽화
제3삽화
종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헥토르 : 하! 이제, 내 창이 제 역할을 하고
제우스가 내 편을 들어주니,
사방에서 친구가 모이는구나!
아니, 아니야! 이제는 지원군이 필요 없어!
처음부터 친구가 아닌 자들은 필요 없어.
이 모든 것이 시작된 이래,
호전적인 아레스가 배의 돛을 향해
전쟁의 바람을 날려서
돛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던 때부터
친구가 아닌 자들은 필요 없어.
레소스는 우리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줬어!
사냥꾼이 짐승을 사냥하고 있을 때,
레소스는 트로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어.
우리가 사냥한 짐승을 죽이자
비로소 그가 트로이에 왔어.
지금 잔치를 벌이려고 하는데
레소스가 참석하려고 해!
-44-45쪽
아테나 : 둘 다 트로이 진영을 떠나는 것이냐?
신들이 헥토르와 파리스를 죽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실망했느냐?
(둘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둘 다 잘 들어라!
레소스가 트로이에 왔다.
동맹자로 아주 당당하게 여기 왔다.
오늘 밤이 지나고도
레소스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아이아스도 아킬레우스도
창을 들고 싸워서는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너희의 모든 울타리와
모든 요새를 허물고, 함선에 이르는
넓은 길을 끊어 버릴 것이다.
그러고는 많은 함선을 파괴할 것이다.
하지만 레소스를 죽이면
너희가 승리할 수 있다.
전쟁 승리는 너희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헥토르와
그의 막사 따위는 더 생각하지 마라.
헥토르의 머리를 베는 것도
잊어버려라. 헥토르는
다른 누군가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78-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