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미국사의 모순에서 ‘반지성주의’의 기원을 찾다
‘반지성주의’만큼 현시대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오늘날 정치를 추동하는 것은 합리적 판단이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사회에 들끓는 혐오와 음모론, 피해망상이다. 이러한 세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이 거쳐 온 길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반지성주의는 갑자기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 서부 개척 시대부터 미국사와 늘 함께해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국사의 모순과 역설을 낱낱이 파헤친 호프스태터의 탐색을 열 가지 키워드로 살핀다. 사회 개혁의 이면에는 인종 차별과 제국주의가 있었고 진보적 사회 운동은 언제나 타협으로 끝났다. 위인으로 추앙받는 정치인들도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호프스태터는 이 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끊임없이 알리는 일이 역사의 임무이자 지식인의 의무라고 말한다. 신화를 벗겨 낸 미국사의 맨얼굴에서 반지성주의와 맞서 싸울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 1916∼1970)
미국 역사학자. 컬럼비아대학교 사학과의 디윗클린턴 교수로 재직했다. 20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손꼽힌다. 뉴욕주 버펄로시에서 유대인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2년 사회진화론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년 뒤 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간했는데, 20만 부가 넘게 팔릴 만큼 학계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역사에 나타난 보수적 사상과 정치 세력의 성장에 대한 비판적 연구에 천착했다. 주요 저서로 ≪미국 사상에서 사회진화론≫(1944), ≪미국의 정치적 전통과 그것을 만든 사람들≫(1948), ≪개혁의 시대≫(1955), ≪미국의 반지성주의≫(1963), ≪미국 정치의 편집증적 스타일≫(1965), ≪정당 체제의 사상≫(1969)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개혁의 시대≫와 ≪미국의 반지성주의≫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자평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 역사에서 반지성주의의 발전 과정을 탐색한 역사학자다. 정치 제도와 주요 인물들의 모순, 사회 개혁 운동의 보수성 등을 파헤치며 미국사를 둘러싼 신화를 깨뜨렸다. 인류학과 사회심리학의 개념 틀을 차용해 정치 세력들 간 합의 뒤에 숨은 혐오와 음모론, 피해망상을 드러냈다. 오늘날 사회의 모순과 부정의와 맞서 싸울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지은이
박진빈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다.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연방정부 공공 주택 정책의 성과와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혁신주의와 뉴딜 정책, 인종 갈등, 도시 문제 등을 주제로 연구했다. 논문으로 “브루클린 수변 산업지역 재개발”(2023), “캘리포니아 유령도시는 광산 개발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는가?”(2022), “미국 여성사와 공공역사의 상호작용”(2021), “정원도시의 탄생”(2019) 등이 있다. 단독 저서로는 ≪도시로 보는 미국사≫(2016)와 ≪백색국가 건설사≫(2006), 공저로는 ≪투자 권하는 사회≫(2023)와 ≪세계도시설명서≫(2021)가 있다. ≪빅체인지≫(2008) 등 여러 책을 번역했다.
차례
미국사의 모순과 신화를 넘어서
01 반지성주의의 토대
02 사회진화론
03 정당 정치의 유래
04 모순, 역설
05 신화, 민속 문화, 음모론
06 지위불안
07 개혁의 시대
08 미국 정치의 편집증적 망상
09 지식인 개혁가
10 합의에 대한 반대
책속으로
호프스태터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주제는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일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를 작동시키는 것은 투표권을 가진 개개 시민들이다. 그러나 다수결에 의한 국민의 합리적 선택이 국가를 운영해 나간다는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책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거나, 세계 시민에게 요구되는 협력을 공공연히 거부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반민주적 정치의 원인을 규명할 필요가 대두하자 호프스태터의 고전,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새삼 관심을 끌었다. 이미 호프스태터는 이 책에서 비합리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치의 원인이 반지성주의에 있다고 지적했다.
_“미국사의 모순과 신화를 넘어서” 중에서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미국 정치사를 저술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정치적 전통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미국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적 지도자들을 다룬다. 그런데 호프스태터는 각 장 제목을 통해 이 인물들의 모순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귀족”이었고, 존 캘훈은 “지배 계급의 카를 마르크스”였으며,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종교 부흥 운동가인 민주주의 옹호자”, 우드로 윌슨은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였다.
_“04 모순, 역설” 중에서
매카시즘에 대한 관찰은 미국 역사상 그와 유사한 피해 망상적 정치 운동이 있었는지 살피게 했는데, 호프스태터가 찾아낸 사례는 이른바 ‘무지당(Know-nothing Party)’으로 알려진 집단이었다. 반가톨릭과 반이민 외에 별다른 건설적 목표가 없었던 이 조직은 음모론에 기반을 두고 모든 구성원과 활동을 비밀에 부쳤다. 호프스태터는 정당의 명칭과 신념을 묻는 이들에게 “모른다”라는 답변만 했던 이 이상한 정치 집단에게서 시대 변화에 공포를 느낀 농촌 앵글로·색슨 개신교도들의 반사회적 피해망상을 감지했다.
_“08 미국 정치의 편집증적 망상” 중에서
민권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965년, SNCC(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의 존 루이스가 앨라배마주의 셀마에서 열린 행진에 참석해 역사적인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널 때, 배낭에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정치적 전통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흑인의 정당한 투표권 행사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며 행진하던 시위대에 사냥개와 물대포로 대응한 폭력적 경찰 진압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현장이었다. 합의할 수 없는 미국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순간, 그곳에 호프스태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호프스태터가 추구했던 미국사 연구의 지향점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다.
_“10 합의에 대한 반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