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헤르만은 고등학교 문학 교사다. 학생들이 제출한 작문 과제를 채점하며 그는 절망에 빠진다.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는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클라우디오의 답안에서 희망을 본다. 반에서 별로 말도 없고 항상 맨 끝줄에 앉는 학생이다.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에게 개인 교수까지 해 가며 그의 소설을 완성해 나간다.
<맨 끝줄 소년>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작가가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칠 때 한 학생이 시험지에 답 대신 시험 공부를 하지 못한 이유를 써낸 것이다. 작품은 단순히 특이한 학생과 교사의 만남을 그린 것이 아니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로 전개되지도 않는다. 장소나 장면 변화도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등장인물들끼리 과거와 현재, 이 공간과 저 공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무대에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한껏 유도하는 연극적 글쓰기다. 또한, 작품을 읽거나 관람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따라 내용도 다양해진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내에서 실제로 벌어진 이야기인지 꾸며 낸 이야기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헷갈리기 쉬운 미로 속을 걷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작품이다.
200자평
자신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맨 끝줄을 택한 소년과 그의 작문에 빠져드는 문학 교사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는 즐거움, 실제 삶과 상상 속 삶을 혼돈하는 위험, 그리고 상상하는 행위 자체를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인 더 하우스>의 원작이다.
지은이
후안 마요르가는 1965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현재 스페인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1997년에는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 1892∼1940)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드리드와 근교의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마드리드 왕립 드라마 예술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다 현재 카를로스 3세 대학에서 무대예술 강좌를 총괄하고 있다. 2011년에는 ‘라 로카 데 라 카사(La Loca de la Casa)’라는 극단을 창립해 1년에 한 번 직접 연출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Cartas de amor a Stalin)>(1999), <천국으로 가는 길(Himmelweg)>(2003), <눈송이의 유언(Últimas palabras de Copito de Nieve)>(2004), <하멜린(Hamelin)>(2005), <다윈의 거북이(La tortuga de Darwin)>(2008), <영원한 평화(La paz perpetua)>(2008), <비평가(El crítico)>(2013), <갈라진 혀(La lengua en pedazos)>(2013, 작가의 첫 연출작) 등이 있다.
옮긴이
김재선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에서 스페인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한국외대, 이화여대에 출강하고 있다. 후안 마요르가의 ≪다윈의 거북이(La tortuga de Darwin)≫(2009), ≪영원한 평화(La paz perpetua)≫(2011), ≪하멜린(Hamelin)≫(2012), ≪천국으로 가는 길(Himmelweg)≫(2013)을 번역했다.
차례
한국 독자에게
맨 끝줄 소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헤르만: (읽는다.) “지난 주말, 작성자 클라우디오 가르시아. 토요일에 난 라파엘 아르톨라 집에 공부하러 갔다. 그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왔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난 그 집에 들어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오후마다 난 공원에 가서 그 집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 밤에는 그 집 앞 보도에서 그 집을 바라보다가 라파 아버지한테 들킬 뻔했다. 금요일에 라파가 수학을 망친 것을 이용해서 나는 교환 학습을 제안했다. “너는 나한테 철학을 도와줘, 내가 네 수학 공부를 도와줄게.” 물론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라파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공부를 그 집에서 하게 될 거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라파가 한 번도 발을 디뎌 보지 않았을 동네에 있기 때문이다. 난 11시에 초인종을 눌렀고 내 앞에서 그 집 문이 열렸다. 라파를 따라서 라파 방으로 갔다. 방은 내가 상상했던 대로다. 라파가 삼각법 문제를 풀도록 해 놓고 난 코카콜라를 찾는다는 핑계로 그 집을 둘러봤다. 이 안에 있는 내 모습을 그렇게 많이 상상해 왔는데, 마침내 내가 이 집에 들어와 있다.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다. 우리 집 네 배는 될 거 같다. 모든 게 아주 깔끔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다. “좋아, 오늘은 이 정도면 됐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라파에게 돌아가려고 할 때 어떤 향기가 내 주의를 끌었다.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자의 향기다. 그 향기에 이끌려 난 거실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소파에 앉아 인테리어 잡지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이 집 여주인을 발견했다. 그녀가 책에서 눈을 들 때까지 난 그녀를 바라봤다, 눈이 소파랑 같은 색이다. “안녕. 카를로스구나.” 목소리가 어쩌면…. 이런 여자들은 말하는 것을 어디에서 배우는 걸까? “클라우디오예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화장실 찾니?” “부엌요.” 그녀가 데려다 주었다. “얼음 줄까?” 난 얼음을 꺼내는 그녀의 손에 주목했다. 오른손에는 결혼반지, 왼손에는 보석이 달린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녀는 마티니를 마셨다. “마시고 싶은 거 집어.” 그녀가 말했다. “너네 집이라고 생각해.” 그녀는 소파로, 난 라파 방으로 돌아갔다. 라파에게 삼각법 문제를 풀어 줬다. 이번 학기에 수학을 낙제하지 않으려면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계속)”
≪맨 끝줄 소년≫ 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