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화이트는 노스럽 프라이(Northrop Frye)가 분류한 서사 양식을 원용해 로맨스·비극·희극·풍자 등을 역사 서술의 근본 양식으로 받아들였다.
로맨스는 근본적으로 자기 확신의 드라마다. 그것은 악에 대한 선의, 악습에 대한 미덕의, 암흑에 대한 광명의 승리를 나타낸 드라마이며, 타락한 세계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마지막 초월성을 드러낸 드라마이기도 하다.
희극과 비극은 분열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희극에는 화해의 기대감이 있으며, 비극에는 주인공의 몰락이라는 결말이 있다. 하지만 비극에는 투쟁의 방관자라는 의식 속에 일종의 보상이 주어져 있으므로, 결말에 나타나는 주인공의 몰락이 살아남은 자에게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한다. 희극의 결말에 나타나는 화해는 인간 상호 간의 화해이며, 세계와 사회에 대한 인간의 화해다.
풍자는 로맨스·희극·비극 속에 그려진 인간 존재의 희망·가능성·진실의 한계를 여러 형태로 표현한다. 철학과 마찬가지로 풍자도 그 자체가 현실의 이미지로서는 불완전하다는 의식을 통해 ‘회색의 현실’을 묘사한다. 그리하여 풍자는 세계에 관한 기묘한 모든 이론 체계를 부정하고, 세계와 그 진행 과정에 대한 신화적 해석으로의 복귀를 기대한다.
헤이든 화이트의 분석과 설명이 도식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험적이며 야심적인 시도에는 흔히 도식적이라는 비판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야심에 찬 이 시도가 역사 텍스트의 해석과 분석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서술의 서사 구조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 땅의 풍토를 생각하면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역사가들의 저작을 분석하면서 화이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역사 서술에 나타난 이미지의 패턴과 사료의 설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역사 서술에서 역사가들의 시각을 반영한 이미지·상징·알레고리를 찾아 분석하는 일이다.
200자평
미슐레, 랑케 등의 역사가들과 헤겔, 마르크스 등의 역사철학자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19세기 유럽의 주된 역사의식의 형태를 파악하고 해석한다. 역사 연구의 토대와 그것을 표현하는 여러 비유 형식들을 해명함으로써, 19세기의 탁월한 사학 사상가들을 이해할 수 있으며 연구의 공통적인 전통과 관계되는 연관성을 밝힐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전체 10장으로 구성된 책으로, 2권에서는 제6장부터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지은이
1928년에 태어나 웨인스테이트(Wayne State) 대학교와 미시간(Michigan) 대학교에서 역사와 철학 등을 전공했다. 그 뒤 UCLA, 웨슬리언(Wesleyan) 대학교, 코넬(Cornell) 대학교 등에서 유럽 근대사, 역사철학, 지성사 강좌를 담당했다. 이 책 외에 주요 저서로는 ≪역사의 선용(The Uses of History)≫(1968), ≪비코(Vico)≫(1969),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시련(The Ordeal of Liberal Humanism)≫(1970), ≪담론의 비유법(Tropics of Discourse)≫(1978) 등이 있다.
옮긴이
전라남도 목포에서 출생해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과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했으며, 군산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역사상 주요한 반항인들의 삶을 그린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정보와 사람, 2009)가 있으며, 역서로는 이 책 외에 고드스블롬의 ≪니힐리즘과 문화≫(문학과지성사, 1988) 등이 있다.
차례
제6장 부르크하르트: 풍자로서의 역사적 사실주의
서론
부르크하르트: 아이러니의 시각
세계관으로서의 염세주의: 쇼펜하우어의 철학
역사의식의 토대로서의 염세주의
풍자 형식
역사 과정의 ‘통사론’
역사의 ‘의미론’
플롯 구성의 ‘사투라’
반은유(Anti-Metaphor)
아이러니로서의 사실주의
역사와 시
결론
제3부 19세기 후반의 역사철학에 나타난 ‘사실주의’의 부정
제7장 역사의식과 역사철학의 부활
제8장 마르크스: 환유 형식의 역사에 대한 철학적 변호
서론
마르크스학의 문제점
역사에 관한 마르크스 사상의 본질
분석의 근본 형식
역사적 존재의 ‘문법’
역사 과정의 ‘통사론’
역사의 ‘의미론’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에 적용된 마르크스의 방법
소극(笑劇)으로서의 역사
결론
제9장 니체: 은유 형식의 역사에 대한 시적 변호
서론
신화와 역사
기억과 역사
도덕과 역사
진리와 역사
결론
제10장 크로체: 아이러니 형식의 역사에 대한 철학적 변호
서론
비평으로서의 역사철학
<예술의 일반적 개념에 내포된 역사>
역사의식의 미학
역사 지식의 본질: 상식의 정당화
역사 지식의 역설적인 성격
크로체의 역사 개념이 지닌 이데올로기적 의미
비평적 응용 방법: 아이러니의 순화
크로체 대 마르크스
크로체 대 헤겔
크로체 대 비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
결론
참고문헌
찾아보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는 한 사람의 선량한 개인이나 따뜻한 친구나 훌륭한 정신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 (…) 그러나 나는 사교와는 아주 인연이 멀다. (…) 우리는 모두 멸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과거의 유럽 문화에 대해서만은 이해하고 싶다.”
-509쪽
19세기 사학의 거장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근본이 되는 인식론적 내지는 미학적 개념을 명백히 규정하지 않는 한, 역사가 엄격한 과학도, 순수한 예술도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대다수는, 역사가 과학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는 전문 용어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
-9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