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22년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몰리에르 탄생 4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영국 사람들이 자국의 언어를 셰익스피어의 언어라고 말하듯이 프랑스 사람들도 자국의 언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 칭한다. 몰리에르는 프랑스 문학사에서뿐만 아니라 서양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작가다. 셰익스피어가 근대 비극의 탄생을 주도하고 세르반테스가 근대 소설의 기반을 다졌다면 몰리에르는 근대 희극의 시작을 알린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문학사적 비중과 오랜 연극계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말로 출간된 몰리에르에 대한 정보는 작가 소개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학술 연구 차원에서는 200여 편의 학술논문과 학위논문이 출간되었고(RISS 기준), 몰리에르 작품 34편 중 14편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으니 표면적으로는 적지 않은 문헌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문 학술지의 논문에서 몰리에르 생애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얻기는 힘들다. 또한 번역서의 서문이나 후기에서 몰리에르의 삶과 그의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기술한 내용은 대부분 개괄적이거나 혹은 극도로 전문적이어서 몰리에르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원하는 독자의 갈증을 풀어 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몰리에르 전공자’인 저자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몰리에르에 대한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일종의 직업적 강박으로 몰리에르 탄생 400주년을 맞아 그동안 미루어 왔던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그리마레의 <몰리에르의 삶>을 번역했다. 몰리에르의 개인적 삶에 대해 그리마레가 남겨 놓은 내용 이상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본문에서 상세히 다뤘다. 다음으로 몰리에르 작품 세계에 대한 분석적 이해를 위해 지난 20년간 저자가 작성한 논문들을 정리했다. 끝으로 17세기 근대의 여명기에 프랑스 사회에서 몰리에르 희극과 그 웃음이 지니는 문학사적, 정신사적 중요성을 살펴봤다.
세계 문학사에서 몰리에르의 위상은 단테나 세르반테스 그리고 셰익스피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현대 희극을 창출해 낸 그의 업적은 문학사적 의의뿐만 아니라 사회사적, 정치사적 의미로도 확장될 수 있다. 몰리에르 희극의 출현은 유럽의 근대 정신사에서 탈봉건적, 탈종교적 움직임에 결정적 동력을 제공한 웃음 수사학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몰리에르가 현대 희극의 탄생을 주도한 대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근대 정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행동하는 지성이었음이 인식되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200자평
몰리에르의 생애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708년 전기 작가 그리마레가 쓴 몰리에르의 전기가 몰리에르의 삶을 다룬 거의 유일한 텍스트다. 이후 집필된 몰리에르 전기, 평전은 모두 이 텍스트를 기초로 살을 조금씩 붙인 것이다. 몰리에르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익진 교수가 이 전기에 그간의 연구 자료를 덧붙이고 몰리에르의 삶과 작품 세계 분석했다. 몰리에르의 생애와 연극을 총체적으로 다룬 국내 유일 몰리에르 연극 이론서다.
지은이
김익진
고려대학교와 파리 10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몰리에르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고려대학교와 강원대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강원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몰리에르의 웃음에 관한 연구 및 문학을 활용한 마음 치유 실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적정인문학으로서의 인문치료≫, ≪프랑스 뮤지컬의 이해≫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아내들의 학교≫, ≪몰리에르 3부작≫, ≪예술치료의 모든 것≫ 등이 있다.
차례
서문
1부 몰리에르의 삶
<몰리에르의 삶>
그리마레가 쓴 <몰리에르의 삶>에 대해
2부 몰리에르 연극과 리베르티나주
몰리에르 연극과 17세기 프랑스 리베르티나주앙시앵 레짐의 사회 계급과 사상
루이 13세 시대의 정치 이념과 리베르티나주몰리에르 연극과 음악
몰리에르 연극과 욕망
몰리에르 연극과 명예
몰리에르 연극과 의학
몰리에르 연극과 절대 왕정
3부 몰리에르 연극과 웃음
프랑스 고전 문학에서 웃음과 몰리에르
패러디적 웃음 : 라신의 비극 ≪소송광들≫
도전적 웃음 : 몰리에르의 희극 ≪아내 교육≫
부록
몰리에르 연보
몰리에르 작품 목록
몰리에르 작품의 국내 번역 현황
참고 문헌
지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몰리에르 선생의 삶에 대해 아무도 연구하지 않아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자기 분야에서 그토록 뛰어났던 분의 유덕(遺德)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희극이 그분에게 빚지지 않은 것이 있는가? 몰리에르 선생이 경력을 시작할 무렵 희극에는 법칙도, 풍속도, 취향도, 성격도 없었다. 희극 속 모든 것이 천박했다. 이 천재 작가가 없었더라면 희극은 그 끔찍한 혼돈 속에 머물러 있었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몰리에르 선생은 자신이 가진 상상의 힘으로 희극을 그 혼돈으로부터 끌어냈다. 그 상상은 깊이 있는 독서와 사색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상상은 언제나 창작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수도 없이 공연되었던 그분의 작품들이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 오르는 한, 그분에 대한 찬탄도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대한 분을 잘 모른다. 그분에 대해 전해지고 있는 어설픈 정보들은 모든 면에서 불완전하다. [그의 삶은] 제대로 연구되지 않아 몰리에르 선생의 본모습을 알려 주기에 충분치 않다. 대중에게는 몰리에르 선생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만 끊임없이 축적되고 있다. 이제 몰리에르 선생과 동시대를 살며 그와 어울려 영광스러운 공연을 하거나 같이 작품을 만들던 분들은 거의 생존해 있지 않다. 여기에 적은 진실은 내가 추론한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기록들을 근거로 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드는 이야기는 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온갖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몰리에르의] 가정사 중 많은 부분을 배제했다. 하지만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내용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난 독자들이 내 노고를 알아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독자들에게 한 위인의 삶을 전달한다. 모방할 수 없는 작가였고, 독자들을 그토록 사로잡았던 그분에 대한 기억은, 그분의 작품을 읽거나 관람할 때, 그 작품에 펼쳐진 모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식견을 지닌 모든 분들에게 울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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