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평
문화기억은 한 사회에서 소통되는 다양한 기억 형태를 포괄하는 것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 내 정치 문화 사회적 영역에서 드러나는 기억에 대한 관심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개념이다. 이 책에서는 문화기억이 미디어와 관계하는 방식, 개별 매체들이 다른 방식으로 구축해 내는 문화기억의 양상들, 그리고 문화기억의 주요 이슈로서 체험과 아카이브, 증언의 문제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 한국 사회의 사례에 초점을 맞추어 미디어 문화기억이 정치 문화와 관계하는 방식과 한국 사회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하는 방식들도 탐구한다. 이를 통해 한국 대중 담론 속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 온 문화기억 현상을 살펴보고 미디어-기억이 갖는 문화적 함의를 이해할 수 있다.
지은이
강경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조교수다. 고려대학교와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영상문화학과에서 수학했다.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한 문화기억과 매체이론, 문화 번역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들을 발표했다. 주요 저술로 “Talking Hospitality and Televising Ethnoᐨnational Boundaries in Contemporary Korea”(Television & New Media, 2018), “Embracing Postcolonial Potentiality; New Faces of Japanese Collaborators in Contemporary Korea”(Spaces of Possibility: In, Between, and Beyond Korea and Japan, 2016), “KyungᐨSung: the Cinematic Memories of the Colonial Past”(Camera Obscura: Feminism, Culture, and Media Studies, 2015), “Narrating in the Sonorous Envelope”(Journal of Popular Film & Television, 2013) 등이 있다.
차례
01 미디어, 그리고 문화기억
02 기억과 시각성 그리고 은폐기억
03 기억, 망각, 반복의 순환 논리
04 대중 매체 시대의 기억: 보완기억
05 문화기억과 장치들: 사진
06 문화기억과 장치들: 영화
07 문화기억과 장치들: 텔레비전
08 문화기억과 장치들 뉴미디어
09 체험으로서의 기억과 미디어
10 재현의 아카이브와 증언의 불가능성
책속으로
가령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이나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유년 시절이나 흐릿해져 버린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들을 마치 눈앞에 다시 불러오듯 풍부히 기술하고 이러한 잊혀진 과거의 재생을 20세기 중반 암울한 현실을 극복할 유토피아적 시간으로 그려냈다. 나아가 20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 사회 이론들은 근대 합리성이나 실증주의 역사관에 도전했으며, 이를 통해 공식 역사가 하나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가치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미시 기억들이 공존하는 과거 기술 방식 또한 수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미디어, 그리고 문화기억’ 중에서
미국의 영상문화학자 마리타 스터큰(Marita Sturken)은 프로이트의 은폐기억 개념을 차용해 미국 사회 내 미디어나 전쟁 기념관이 베트남전쟁의 장기화로 미국 사회가 겪었던 혼란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 대해 논의했다. 스터큰은 워싱턴전쟁기념관이나 영화들은 전쟁을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재현함으로써, 베트남전으로 인해 미국 사회 내 팽배했던 우울과 패배감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은폐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스터큰은 은폐기억의 의미를 확장하는데, 즉 은폐기억 개념에 포함된 영어 단어 스크린(screen)을 은폐하고 싶은 기억을 감추는 보호막(shield) 혹은 은신처로 이해하는 동시에 그 표면 위로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투사(project)되고 교섭되는 장이라는 이중적 의미로 파악한다.
‘기억과 시각성 그리고 은폐기억’ 중에서
하지만 이러한 망각된 기억은 그대로 소멸되지 않으며, 발생 시점에서 망각된 기억은 이후 파편화된 형태로 되돌아온다. 실제 나치수용소 사진이나 르완다전쟁 사진을 보고 충격에 빠진 사람들은 이후 그 형언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들이 문득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들 이미지들은 예기치 못한 순간 문득 떠올라서 이미 익숙한 과거 사실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한다. 여기서 잊혀진 과거 사실로 되돌아가 그 역사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단지 존재했던 과거의 순간을 되찾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과정은 기존의 의식적 기억이 담아내지 못했던 사실, 그 잠재성의 형태로 남아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되돌아와 현 사회 내 의미망을 흔들어 놓는다.
‘기억, 망각, 반복의 순환 논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