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고전소설의 주제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당대에는 충(忠), 효(孝), 인(仁), 의(義) 등을 덕목으로 삼았다. 때문에 소설에서 착한 사람이 억울하게 벌을 받거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주전>은 수많은 덕목들 중에서 효, 정절(貞節), 보은(報恩)의 주제를 담고 있으며 이 중에서도 ‘효’를 으뜸으로 세우고 있다. 윤리를 중심으로 고전소설의 보편적 주제인 권선징악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소설에서 주인공은 항상 착한 사람이지만 <방주전>의 주인공 방주는 작품 초반부에 윤리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방주의 불효에 분개한 염라대왕은 방주를 동물로 변신시키며 고통과 굴욕을 안겨 준다. 이러한 끔찍한 형벌들의 생생한 묘사는 당대 독자들에게 불효를 경계하게 하고 ‘징악’을 강조하는 데에 한몫했을 것이다. 또 형벌 이후 개과천선한 방주가 벼슬을 얻어 순탄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효를 행하면 행복해진다’는 의식을 심어 주기 충분했을 것이다.
<방주전>은 윤리소설 중에서도 차별성을 갖는다. <진대방전>과 같은 대부분의 윤리소설은 윤리 강조를 위해 훈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독자에게 영웅소설과 같은 재미를 주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방주전>은 윤리를 강조하면서도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준다.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극적인 줄거리가 계속되며, 내용을 구성하는 데 여러 설화를 차용해 흥미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주목할 점이 있다면 마대영의 도적 무리가 등장해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방주의 아내인 정씨 부인의 행실이다. 그녀가 기이한 보물들로 힘을 얻고 나라를 구하는 과정에서는 일반적인 영웅소설의 구성을 살펴볼 수 있으며, 여성의 몸으로 대원수가 되어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우는 모습에서 여성영웅소설의 구성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가정에서의 성 역할은 그대로 답습되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남성이 해결하지 못한 과업을 여성이 해결하는 플롯 구성을 취했다는 점에서 볼 때 점차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했음을 엿볼 수 있다.
200자평
국내 첫 현대어 출간. 작자 미상의 윤리소설이다. 방주는 늦둥이로 태어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버릇없어진다. 분개한 염라대왕이 불효자로 자란 그를 무시무시한 형벌로 다스린다. 개과천선한 방주는 귀감이 되는 큰 인물이 된다. 효(孝), 절개(節槪), 보은(報恩) 세 가지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 저본에서 훼손된 부분은 필자가 앞뒤 문맥에 맞게 만들어 넣었다.
옮긴이
박인희는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수료(문학 박사)하고, 안양대학교 교양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재는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고전 시가(향가)로 <처용의 정체와 <처용가>>, <<우적가> 연구>, <<신충괘관>과 <원가>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향가 외에 관심을 갖고 <<도이장가>의 창작 배경 연구>, <<만전춘별사> 4연 연구>, <시조 교육에서 시어의 의미 파악에 대한 연구> 등을 발표했다.
대학원에서 필사본 고전소설 강독을 하면서 고전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김성운전≫과 ≪양소저전≫의 교주본을 내기도 했으며, ≪명사십리≫를 현대어로 옮기기도 했다. 고전소설과 관련해 <<이정난전>의 영웅소설적 성격 연구>, <<민옹전>에 등장하는 벽서의 의미>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지금도 고전소설에 관심을 갖고 희구본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차례
방주전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때 800명 나졸이 일시에 내달아 방주를 잡아들여 계단 아래에 꿇렸다. 방주를 문죄하기 위해 무수한 군졸이 좌우에 갈라서서 형장, 주장이며, 철사, 홍사를 갖추어 준비하는 소리가 천지가 진동하는 듯했다.
염왕이 머리에 통천관을 쓰고, 해와 달의 무늬로 된 곤룡포를 입고, 왼손에는 옥홀(玉笏)을 쥐고, 오른손에는 주필(朱筆)을 잡고, 백옥으로 된 평상에 반듯이 앉아 방주의 죄를 물으셨다.
“무도한 방주야, 네 죄를 모르느냐? 자세히 아뢰어라.”
방주는 좌우에 심부름하는 소리에 정신이 아득하고 귀가 먹먹해 마음이 떨리고 간담이 녹는 듯해 아무 말도 못 했다. 염왕이 방주에게 물었다.
“네 몸은 어디서 났느냐?”
방주가 겁이 나서 얼떨떨한 중에 대답했다.
“소신의 몸이 어찌 저절로 생겼겠습니까. 아비는 낳으시고 어미는 기르시니, 부모의 혈육을 받아 나서 부모의 이슬을 받아먹고 자랐나이다.”
염왕이 크게 소리쳐 말했다.
“네가 그러할진대 부모의 말씀을 거스르며 공양할 줄을 모르느냐? 내가 너를 위해 부모의 소중함을 말할 것이니 들어라. 아비는 하늘 같고 어미는 땅과 같으니라. 천지가 생긴 후에 만물이 생기고, 만물이 생긴 후에 사람이 생겼으니, 만물이 천지가 아니면 어디서 생겼겠으며, 사람이 부모가 아니면 어디서 생겼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의 자식이 되었으면 부모의 은덕을 갚을진대 뼈를 갈고 살을 깎아도 만 분의 1이라도 갚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되고 부모를 몰라보면 금수와 다름없으니 그런 까닭으로 인간의 죄악 중에 불효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8~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