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출간 200주년을 맞는 정치철학의 고전, 헤겔의 ≪법철학≫
이 책의 제목은 ≪법철학(베를린, 1821년)≫이다. 원전의 표지에는 연도가 1821년으로 인쇄되어 있지만, 실제 ≪법철학≫은 1820년 베를린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2020년이면 이 책이 처음 나온 지 200주년이다. 200년이나 된 이 책을 오늘날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철학≫의 성립과 헤겔의 문제의식
헤겔 당대의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보자면, ≪법철학≫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독일이 취할 정치적 태도에 관한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 간의 갈등을 배경으로 한다. 헤겔은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독일이 어떤 헌법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 법률을 성문화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을 고려하며 자신의 사고를 지속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 학문적 결과가 바로 ≪법철학≫이다.
헤겔이 여기서 ‘인륜적 삶’을 통해 정초하고자 한 공동체의 모습에는, 분열된 삶을 극복하고 조화롭고 통일된 삶을 지향하던 초기 헤겔의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헤겔의 실천적 문제의식을 총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저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면, 헤겔이 품고 있었던 실천철학적 문제의식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규명할 수 있다.
“선의 최대 적, 그것은 최선이다.”
왜 선의 최대 적은 악이 아니고 ‘최선’일까? 이 말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한편으로 인간의 구체적 현실에는 ‘최선’이 있지 않고 ‘상대적 선악’이 있을 뿐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최선’만을 목표로 하는 행위가 오히려 악일 수도 있다는 헤겔식의 경고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 속에서 철학을 했던 헤겔은 혁명적 목표가 현실 속에 초래한 부정적 폐해들도 간과하지 않았다. 이상적인 최선만을 지향하는 태도는 현실의 복잡한 관계들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상대적 선악들을 자신의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비인간적인 폭력까지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소위 진보 쪽에서 조국 전 장관의 도덕성을 문제 삼은 것 역시 ‘최선’을 지향하는 이러한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헤겔은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구체적 맥락을 무시하는 입장을 ‘추상적’ 태도라고 비판한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은 유효하다
헤겔의 ≪법철학≫이 출간된 지 200년이 되었고 법이라는 딱딱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지금 현실에 어울릴 만한 내용이 이 책에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짐작하기가 쉽다. 그러나 실제로 ≪법철학≫을 읽어 보면, 아직도 이 책이 제시하는 적지 않은 원론적 논의들이 우리 현실에서도 유의미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성적인 것, 이것이 참으로 현실적이며, 참으로 현실적인 것, 이것이 이성적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갯짓을 시작한다” 등의 구절로 유명한 ≪법철학≫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법철학≫을 정독해 보면 헤겔 당시의 시대적 문제에만 제한되지 않는 그의 철학적 깊이를 접하게 된다. 책 전반에 걸쳐 헤겔은 고대와 근대의 정치철학 및 도덕철학과 지속적으로 대결하면서도 그것을 아우르고 뛰어넘는 관점을 보여 준다. 그러한 시도가 과연 성공적이었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고대의 실체적 세계관과 근대의 주체적 세계관을 변증법적으로 매개하려는 헤겔의 문제의식으로 인해, ≪법철학≫은 철학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나아가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그리고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등과 더불어 정치철학 및 도덕철학의 고전으로 평가받아 왔다.
출간 200년을 맞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법철학(베를린, 1821년)≫은 2008년에 처음 출간한 ≪법철학 강요 천줄읽기≫의 완역본이다. 옮긴이 서정혁은 독일어와 영어 판 ≪법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국내외에서 발표된 각종 연구를 참고해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200자평
대한민국의 입법과 사법과 행정은 왜 늘 법 때문에 아웅다웅할까?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법’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법철학의 원조, 게오르크 헤겔은 이 책 ≪법철학≫에서 헌법의 바람직한 모습을 논하고 통일된 공동체를 지향하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무미건조해 보이는 법을 논하면서도 논리학에 기초해 인간 권리의 서사를 생동감 있게 펼쳐 보인다.
지은이
게오르크 헤겔(Georg W. F. Hegel, 1770∼1831)
헤겔은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으며, 1778년부터 1792년까지 튀빙겐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 후 1793년부터 1800년까지 스위스의 베른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했는데, 이때 청년기 헤겔의 사상을 보여 주는 종교와 정치에 관한 여러 미출간 단편들을 남겼다. 첫 저술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가 발표된 1801년부터 주저 ≪정신 현상학≫이 발표된 1807년 직전까지 예나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 그 뒤 잠시 동안 밤베르크 시에서 신문 편집 일을 했으며, 1808년부터 1816년까지 뉘른베르크의 한 김나지움에서 교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2년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은 후, 1818년 베를린 대학의 정교수로 취임했다. 주요 저서로 ≪정신 현상학≫, ≪논리학≫, ≪엔치클로페디≫, ≪법철학≫, ≪미학 강의≫, ≪역사철학 강의≫ 등이 있다. 1831년 콜레라로 사망했으며, 자신의 희망대로 피히테 옆에 안장되었다.
옮긴이
서정혁은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칸트 철학으로 석사학위를, 헤겔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교수로 철학, 글쓰기, 토론 등의 과목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헤겔의 역사 철학과 세계 문학≫, ≪듀이와 헤겔의 정신철학≫, ≪철학의 벼리≫, ≪논증≫, ≪논증과 글쓰기≫(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헤겔의 ≪예나 체계기획III≫, ≪미학 강의(베를린, 1820/21)≫, ≪세계사의 철학≫, ≪법철학 강요≫, ≪교수 취임 연설문≫, 피히테의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학자의 본질에 관한 열 차례의 강의≫, K. 뒤징의 ≪헤겔과 철학사≫가 있다. 그 외 독일 관념론 및 교양 교육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해설
서문
서론
제1부. 추상법
제1장. 소유
A. 점유 취득
B. 물건 사용
C. 소유의 양도
제2장. 계약
제3장. 불법
A. 범의 없는 불법
B. 사기
C. 강제와 범죄
제2부. 도덕
제1장. 기도와 책임
제2장. 의도와 안녕
제3장. 선과 양심
제3부. 인륜
제1장. 가정
A. 혼인
B. 가정의 재산
C. 자녀 교육과 가정의 해체
제2장. 시민 사회
A. 욕구의 체계
B. 사법
C. 공공행정과 직능조합
제3장. 국가
A. 내적 국가법
B. 외적 국가법
C. 세계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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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철학이 자신의 회색을 회색으로 덧칠할 때, 이미 생의 형태는 늙어 버린 후이며, 회색으로 덧칠한다고 생의 모습이 다시 젊어지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인식될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갯짓을 시작한다.
-38쪽
법의 내용인 객관 정신은 그 자체로 또다시 단지 정신의 주관적 개념 내에서만 규정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즉자대자적으로 노예 상태로 규정되면 안 된다는 것이 단순한 당위(Sollen)로만 재차 파악되지 말아야 한다는 이러한 사실은, 자유의 이념이 진실로 국가(Staat)로만 존재한다는 인식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