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변강쇠가》는 신재효가 실전(失傳) 판소리 〈변강쇠가〉를 사설로 정리한 것이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판소리로 전승되고 있었던 듯하나 20세기 들어서는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고, 고소설 형태로도 전환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유일하게 신재효의 사설만이 전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창극이나 마당극으로는 종종 상연되며 만화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여타의 판소리계 소설과는 차별화된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괴상망측한 이야기에 담긴 조선 후기의 모습
《변강쇠가》는 괴상망측하고 음란하기로 둘째가면 서러운 작품이다.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주인공인 ‘변강쇠’와 ‘옹녀’는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이 정력가와 색골의 캐릭터로 널리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양반이나 부녀자가 감상하기에는 부적절하게 여겨져 판소리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도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다시 재창조되는 것은 단지 노골적인 주인공 캐릭터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은 조선 후기 사회에서 발생한 유랑민이 유랑에도 실패하고 정착에도 실패해 패배하고 죽어 갔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변강쇠의 무지와 심술 이전에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회적 현실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성(性)’과 ‘죽음’을 노골적으로 다루는 작품
또 《변강쇠가》에서 주목되는 점은 예술 작품에서 금기로 여기는 ‘성(性)’과 ‘죽음’을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시작부터 옹녀의 남편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동네에서 쫓겨난 옹녀가 유랑하다 만난 강쇠와는 관계 장면이 노골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강쇠가 장승에게 징벌을 받을 때, 온갖 징그러운 병이 나열되고,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송장의 모습도 계속 묘사된다. 《변강쇠가》는 매우 괴이하고 끔찍해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작품이라 자칫 작품의 본질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당시 사회상과 인물의 처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표면적인 내용 아래 감춰진 깊은 의미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200자평
천하의 잡놈 ‘변강쇠’와 평안도의 음녀 ‘옹녀’의 우연한 만남과 처절한 이별을 그리는 《변강쇠가》에는 송장이 즐비하고 병이 쏟아지며 욕정이 흘러넘친다. 해괴망측한 사건이 이어지는 그들의 삶은 비단 이야기 속 삶일 뿐일까? 시대를 뛰어넘어 종종 등장하는 현대판 변강쇠의 원형을 따라가 보자.
지은이
신재효[申在孝, 1812(순조 12년)∼1884(고종 21년)]는 조선 후기 판소리 연구가다.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동리(桐里)이고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출생했다. 오위장(五衛將) 벼슬을 지냈다.
동리 신재효 선생은 중인(中人)에 천석꾼의 재산을 이룬 사람으로 음악에 조예가 깊어, 전부터 전해오던 판소리 《춘향가(春香歌)》 남창(男唱)·동창(童唱), 《심청가(沈淸歌)》, 《박타령》, 《토별가(兎鼈歌)》, 《적벽가(赤壁歌)》, 《변강쇠가》의 여섯 작품을 새롭게 개작(改作)했다. 그 전에 광대들이 만든 거칠고 발랄한 판소리 사설(辭說)을 중인의 시각에서 좀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재구성했다. 이로써 판소리가 상민(常民) 예술에서 벗어나 중인 이상 양반도 즐길 수 있는 민족 문학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동리 신재효 선생은 또 판소리의 이론적 체계도 모색하여 《광대가(廣大歌)》를 지어 인물·사설·득음(得音)·너름새라는 4대 법례를 마련했다. 그는 판소리 사설 외에도 30여 편의 단가(短歌) 또는 허두가(虛頭歌)라고 하는 짧은 노래도 지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경복궁(景福宮)을 중수하고 낙성연(落成宴)을 할 때, <경복궁타령>, <방아타령> 등을 지어 제자 진채선(陳彩仙)에게 부르게 하여, 여자도 판소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기도 했다.
이처럼 동리 신재효 선생은 오늘날 판소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위대한 분이다. 그래서 ‘한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기도 한다.
옮긴이
김창진(金昌辰)은 서울교대와 국제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이 〈‘흥부전’의 이본과 구성 연구〉이며, 그 뒤에도 《흥부전》 관련 논문을 20여 편 써서 우리나라에서 《흥부전》 관련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학자가 되었다. 그밖에도 판소리계 소설과 관념적 시공, 한국어문 정상화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초당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와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 이사와 《남악신문》 논설위원이다. 수필가로서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2006년에 종문화사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흥부전》 풀이본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2008년에 《박타령》과 《배비장전》 교주본을, 2009년에는 《변강쇠가》와 《두껍전》 교주본을 내놓았다. 그밖에도 《작문의 정석》, 《수필 이론 바로 세우기》 등을 내놓았다. 제1회 청다 이유식 문학상을 받았다.
차례
옹녀가 뭇 사내들을 죽여 쫓겨나다
옹녀와 변강쇠가 길에서 만나 부부가 되다
변강쇠 부부가 지리산에 정착하다
변강쇠가 장승을 뽑아 불 때다
팔도 장승들이 변강쇠를 죽이다
중이 강쇠 치상하려다가 죽다
초라니가 강쇠 치상하려다가 죽다
풍각쟁이들이 강쇠 치상하려다가 죽다
뎁득이가 강쇠 송장을 넘어뜨리다
송장 여덟과 짐꾼 넷이 땅에 달라붙다
움 생원이 땅에 달라붙다
사당패가 땅에 달라붙다
옹 좌수가 땅에 달라붙다
계대네가 굿을 해서 사람들을 땅에서 떼어 내다
뎁득이가 변강쇠에게 빌어 짐꾼들을 땅에서 떼어 내다
뎁득이가 송장을 다 떼어 내고 돌아가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중년에 맹랑한 일이 있던 것이었다. 평안도 월경촌에 계집 하나 있으되, 얼굴로 볼작시면 춘이월(春二月) 반개도화 옥빈에 어리었고 초승에 지는 달빛 아미간에 비치었다. 앵도순 고운 입은 빛난 당채 주홍필로 떡 들입다 꼭 찍은 듯, 세류같이 가는 허리 봄바람에 흐늘흐늘, 찡그리며 웃는 것과 말하며 걷는 태도 서시와 포사라도 따를 수가 없건마는 사주(四柱)에 청상살이 겹겹이 쌓인 고로 상부를 하여도 징글징글하고 지긋지긋하게 단 콩 주워 먹듯 하것다.
열다섯에 얻은 서방 첫날밤 잠자리에 급상한에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 당창병에 튀고, 열일곱에 얻은 서방 용천병에 펴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 벼락 맞아 식고, 열아홉에 얻은 서방 천하에 대적(大賊)으로 포청에 떨어지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 비상 먹고 돌아가니, 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 치기 신물 난다.
이삼 년씩 건너가며 상부를 할지라도 소문이 흉악할 텐데 한 해에 하나씩을 전례로 처치하되, 이것은 남이 아는 기둥서방, 그 나머지 간부, 애부, 거드모리, 새호루기, 입 한 번 맞춘 놈, 젖 한 번 쥔 놈, 눈흘레한 놈, 손 만져 본 놈, 심지어 치맛귀에 상촉자락 얼른 한 놈까지 대고 결딴을 내는데, 한 달에 뭇을 넘겨 일 년에 동반 한 동 일곱 뭇, 윤삭 든 해면 두 동 뭇 수 대고 설그질 제, 어떻게 쓸었던지 삼십 리 안팎에 상투 올린 사나이는 고사하고 열다섯 넘은 총각도 없어 계집이 밭을 갈고 집을 이니.
황·평 양도(兩道) 공론하되,
“이년을 두었다는 우리 두 도내에 좆 단 놈 다시 없고 여인국(女人國)이 될 터이니 쫓을밖에 수가 없다.”
양도가 합세하여 훼가하여 쫓아내니, 이년이 하릴없어 쫓기어 나올 적에, 파랑 봇짐 옆에 끼고 동백(冬柏)기름 많이 발라 낭자를 곱게 하고 산호(珊瑚) 비녀 질렀으며, 출유(出遊) 장옷 엇매이고, 행똥행똥 나오면서 혼자 악을 쓰는구나.
“어허, 인심(人心) 흉악하다! 황·평 양서 아니면 살 데가 없겠느냐. 삼남 좆은 더 좋다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