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보한집≫은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을 보충하면서 이규보의 문학관을 수용한 비평서다. 우선 그 이름에서부터 ≪파한집≫의 속편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고려사≫에는 ≪속(續)파한집≫으로 기록되어 있다. ≪파한집≫의 간행으로 자칫하면 소멸되기 쉬운 작품을 모아 놓은 것은 다행이지만, 수록된 범위가 넓지 않으니 보완하라는 당시의 집권자 최이의 명을 받고 책을 짓는다고 했다. 과연 ≪보한집≫은 ≪파한집≫에 없는 자료를 적지 않게 수록하고, 이인로 이후 최자 시대에 이르기까지 새로 나온 시도 다수 포괄해 취급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보한집≫은 단순 자료집이라기보다 일정한 문학관을 반영하고 있는데, 최자는 이인로와 이규보의 논쟁을 의식하면서 이규보의 노선을 자기 나름대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보한집≫은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上卷)에는 고려 태조의 문장을 비롯한 역대 이름 있는 학자들의 언행과 누각·정자·역사(驛舍) 등을 소재로 한 시 등 52화(話), 중권(中卷)에는 이인로·이규보 등의 선배 문인들의 일화와 시문 평론 46화, 하권(下卷)에는 21품(品)에 걸친 모범적 시구와 함께 자신의 문학론과 승려·기생의 작품 등 49화가 수록되어 있다.
≪보한집≫은 다른 어느 시화보다 문학론이 풍부하다. 당시 고려의 시단은 소식(蘇軾)을 배우려는 풍조가 지배적이었고, 작시법에 있어서는 적절한 고사 사용 등 언어의 묘미를 강조한 이인로 계열과 새로운 뜻[新意]의 창출을 역설한 이규보 계열의 주장이 있었다. 상반되는 주장은 아니지만 ≪보한집≫에서는 언어적 표현미를 강조한 이인로 쪽보다는 참신한 의미를 내세우는 이규보 쪽의 입장을 옹호하고 그의 이론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문학 원론, 문학사, 문학의 갈래, 문체론, 품격론 등 문학의 여러 문제를 다양하게 고찰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품격론이다. 최자의 우상이기도 했던 이규보는 단지 어느 한 가지에 쏠리지 않고 여러 품격을 두루 갖추는 것이 좋다는 정도에 머물렀는데, 최자는 나아가 21종의 품격을 들어 예가 되는 시를 열거하고, 등급을 나누었다. 우리 비평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
고려 명종(明宗) 18년(1188)에 태어나서 원종 1년(1260)에 세상을 떠난 학자이자 관료요 시인이다. 최자의 첫 이름은 종유(宗裕) 또는 안(安)이고, 자는 수덕(樹德), 호는 동산수(東山叟)다. 본관은 해주(海州)로서 문헌공(文憲公) 최충(崔冲)의 후손이며, 시호(諡號)는 문청(文淸)이다. 최자는 대내적으로는 고려 왕조가 혼미를 거듭하고 무신 정권이 전횡을 부리던 시기, 대외적으로는 몽골의 7차 침입(1231∼1258)이 있었던 격동의 시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문인이다. 명문 집안 출신으로 이규보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출세의 길에 접어들었으며, 이런 인연으로 최자의 문학은 이규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특히 최자는 이규보의 ‘창출신의(創出新意)’의 창조적 문학론에 뜻을 같이했던바, ≪보한집≫에서 자주 이규보를 극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렇듯 이규보의 문학관을 잇고 있는 최자는 한국 문학사상 이인로와 함께 문학비평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별히 그는 시인이자 평론가로서 무엇보다 한시 비평에 해당하는 시화류 ≪보한집≫을 남긴 인물로 오늘날까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저명한 대학자인 최충의 후손으로서 관직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아 ≪고려사≫에 입전(立傳)이 되기도 했다. 최자의 가문은 최충 이후로 세 명의 장원(壯元)과 세 명의 상국(相國), 네 명의 공신을 배출한 명문 귀족으로, 최자 또한 ≪보한집≫에 증조부 최약(崔瀹)이 유배를 가면서 남겨 놓은 시 <출수춘주화인증별(出守春州和人贈別)>을 실은 것으로 보아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고려 시대에 배출된 수많은 문인·학자들의 문집을 두루 섭렵하지 않고서는 ≪보한집≫에 나타나고 있는 그 시대의 사회 상황과 문학적 성격을 바르게 진단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최자는 독서량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풍부한 독서량과 깊이 있는 시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최자는 ≪보한집≫을 통해 문학의 본질이 무엇이고, 문인들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하며, 창조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가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 분석했다.
옮긴이
현재 경희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이며 중국 중앙민족대학 초빙교수를 지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이덕무의 문학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학문의 폭을 넓혀 한국 문화 전반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이덕무의 문학 연구≫≪고전문학 연구의 새로움≫≪아정 이덕무 시집≫≪이제 다시 생각하고 좋은 글을 써야 할 때≫≪한국 문화의 이해≫≪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청장, 키 큰 소나무에게 길을 묻다-이목구심서 번역≫≪한국문화의 힘, 휴머니즘≫≪나아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하늘에다 베틀 놓고 별을 잡아 무늬 놓고≫≪베이징 일기≫≪한국 여성 문화 탐구≫≪뜻은 하늘에 몸은 땅에-세상에 맞서 살았던 멋진 여성들≫≪보한집 완역-수필ㆍ비평≫ 등이, 주요 공저로는 ≪국어국문학 연구의 새로운 모색≫≪고전 작가 작품의 이해≫≪국어국문학 연구의 오늘≫≪여성 문화의 새로운 시각≫≪한국 문학사의 전개 과정과 문학 담당층≫≪한국 근대 여성의 일상문화≫(전9권)≪창의적 사고와 효과적 표현≫≪고려조 한문학론≫≪한국 현대 여성의 일상문화≫(전8권)≪교양 필독서 100선≫≪한국 문화를 말하다≫ 등이 있다.
차례
서문 3
상권 7
중권 117
하권 261
해설 359
지은이에 대해 366
옮긴이에 대해 370
책속으로
글이란 도를 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바른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층 기운을 돋우어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고자 할 때는 더러 괴이한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더구나 시를 짓는 것은 비유, 흥취, 풍자를 근본으로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기괴함에 의탁해야 한다. 그래야 그 기상이 웅대하고 그 의미가 심오하며 말이 뚜렷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미묘한 뜻을 드러내어 마침내 올바른 데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