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박세당의 여러 저작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변록≫[일명 ≪통설(通說)≫]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의 학문적인 특징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날 뿐 아니라, 그 유명한 사문난적(斯文亂賊)의 풍파를 일으킨 대표 저서가 바로 ≪사변록≫이기 때문이다. ‘사변(思辨)’이란 두 글자는 ≪중용≫의 “신사지(愼思之) 명변지(明辨之)”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변별한다”는 뜻이다.
≪사변록≫의 내용은 바로 사서(四書)와 ≪상서(尙書)≫, ≪시경(詩經)≫을 박세당 나름으로 주해(註解)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해가 매우 독특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사실 ≪사변록≫에 나타난 박세당의 경전 해석을 현대적 시각으로 볼 때는 별달리 문제 삼을 바 없지만, 당시로 보아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과감한 시도였다. 박세당은 경전에 대한 종래의 어떠한 기존 해석에도 구애받지 않으려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특히 ≪대학≫과 ≪중용≫의 경우에 두드러진다. 그는 대부분의 고경(古經)들이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화(禍)를 겪고, 결국 다시 복원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으로 인해 정자(程子)와 주자(朱子) 이전부터 의미와 맥락이 통하지 않는 착간처(錯間處)들이 존재했으며, 정·주(程·朱) 이후에도 그러한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음을 직시했다. 그래서 박세당은 나름대로 의미와 문맥을 비롯해 장절(章節)의 편차(編次)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전통적인 시각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심지어 당시 학계로부터 거의 절대시되던 정·주의 견해까지도 비판을 가하도록 한 것이다. ≪주역≫은 착수도 못했고, ≪시경≫은 미완성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생각도 들지만, 이미 완성된 것만으로도 한국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사변록≫의 지위는 공고하다 할 것이다.
200자평
사서(四書)와 ≪상서≫, ≪시경≫을 박세당 나름으로 주해한 것으로, 이 책에서는 <대학> 편과 <중용> 편을 집중적으로 발췌했다. “주자가 존양(存養)과 성찰(省察)을 나누어 두 단(段)의 공부로 삼은 것은 그 근본을 이미 잃은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박세당은 기존에 널리 통용되던 학설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거의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주자와 정자의 견해까지 과감하게 비판하고 있다.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를 펼쳐나간 용기 있는 학자의 당당한 해석을 만나볼 수 있다.
지은이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계긍(季肯), 호는 서계(西溪), 서계초수(西溪樵叟), 잠수(潛叟)다. 그는 백호(白湖) 윤휴(尹鐫)와 함께 17세기 후반 반주자성리학적(反朱子性理學的) 입장에서 활동한 진보적 철학자이자 농학자다. 이조판서(吏曹判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의 벼슬까지 임명받았으나, 말년에는 주로 학문 연구에만 몰두했다.
학문적 태도는 귀납적 방법론[下學而上達]과 실용적 경향성이 특징이다. 귀납적 방법론은 그의 저작인 ≪사변록(思辨錄)≫과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남화경주해산보(南華經註解刪補)≫ 등에 잘 나타나 있으며, 실용적 경향성은 농사 방법에 대해 논한 ≪색경(穡經)≫에서 잘 드러난다. 주자성리학 밖의 일체 학문에 대해 이단시하던 당시 상황에서 ≪도덕경≫이나 ≪남화경≫을 주석한 것에서부터 벌써 그의 학문의 독자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사변록≫에서 사서(四書)에 대한 주자의 주석을 고쳐 쓰며 특히 ≪대학≫과 ≪중용≫에 이르러서는 그 장구(章句)의 편차마저 뜯어 고치는 과감성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고루하고 진부한 전통에 대항한 비판적 지식인이자 올곧은 선비였으며, 또한 당대 최고의 반열에 오를 만한 뛰어난 학자였다.
옮긴이
경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윤리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송대(宋代) 유학, 영남 성리학, 동양 교육 사상 등이다. 저서에 ≪정주철학원론≫ 등이 있고, 역서에 ≪정몽(正蒙)≫ 등 다수가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장재 기철학의 이론적 구조>, <退溪的敬論與朱熹的主敬思想>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 사변록 제1책에 실려 있는 편집자의 글
2. 사변록 서문
3. 대학 편(大學篇)
4. 사변록 제2책에 실려 있는 편집자의 글
5. 중용 편(中庸篇)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오늘날 육경(六經)을 연구하는 이들은 모두가 얕고 가까운 것을 뛰어넘어 깊고 먼 것으로 달려가며, 거칠고 소략한 것은 소홀히 하고서 정세(精細)하고 완전한 것만을 엿보고 있으니, 저들이 미혹에 빠져서 아무런 소득도 없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저들은 다만 그 깊고 멀고 정세하고 완전한 것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얕고 가깝고 거칠고 소략한 것마저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아! 슬프다. 이러한 일들이 심히 미혹된 것이 아니겠는가?
-26쪽
정자(程子)는, “변치 않음을 용(庸)이라 하니, 용은 천하의 정(定)한 이치다”라고 했으며, 주자(朱子)는, “용은 평상(平常)이다. 이것은 괴이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두 선생은 용(庸)의 해석을 달리했다.
그렇지만 ‘중용’의 뜻은 반드시 일정한 뜻이 있어서 두 가지 의미를 겸할 수 없는 것이니, 독자 또한 두 가지 학설을 다 취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