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상군서≫는 그 논리 구조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별할 수 있다. 하나는 왜 현재의 역사 단계에서 법치가 요구되고 정당한 대안인지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역사와 인간에 대한 성찰을 소개하고, 다른 하나는 법치의 법과 군주를 중심으로 한 내용과 실질의 법가적 개념화를 제시하며, 마지막으로 법치 실행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역자의 생각으로 상앙 법치론을 구성하는 내용과 실질이 웅변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상군서≫의 첫 편 <경법(更法)>은 ≪사기≫ <상군열전>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이고 효공(孝公)이라는 시호(諡號)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후대의 위작으로 볼 수 있지만, 그 내용으로부터 상앙이 변법(變法)이라는 개혁의 역사적 필연성과 정당성을 제기하면서 법치를 출발시켰다는 사실을 선언적으로 보여 준다. 상앙은 현재 시점에서 역사를 조명하고 상세−중세−현세의 단계적 발전론을 제기함으로써 법에 의한 지배로의 진입이 역사 발전의 필연적 단계임을 논리적으로 추출하는 인시적(因時的) 역사관을 시사한다. 그것은 과거−현재−미래로 진행되는 단선적 진보관을 담고 있는 동시에 현재를 언제나 변화해야 하는 단계로 규정하는 변환적 역사관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사 주체로서 인간 역시 유동적 존재이며, 인간 본성 그 자체가 선악의 절대적 기준에 의해 판명될 수 없다는 관점을 취한다.
상앙은 이상적인 인간형을 상정하지 않고 현실의 인간에 대한 관찰과 경험을 통해 법치 실행을 위한 인간형을 구축한다. 그것은 극단적인 이기성을 가진 신뢰할 수 없는 자리적(自利的) 인간관으로 전개되는 반면, 바로 극단적 이기성이 역설적으로 법치에 순응할 수 있는 신뢰성을 보장하는 동기라고 파악한다. 왜냐하면 법치로의 진입이라는 역사 발전을 위해서는 현재의 이기적 인간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 결과는 인간의 삶을 종결시키는 것이며 정치의 종언을 가져올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상앙은 역사 발전의 추동력을 인간의 극단적 이기성에서 찾아서 이를 합리적 선택의 동기로 전환하려고 한다. 바로 법(法)이라는 외부의 규준에 의해 합리적 선택을 습속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상앙의 역사관과 인간관은 법치의 필연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론적 전제로 설정된 셈이다.
그렇다면 상앙은 법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일까? 변화를 역사와 인간에 내재한 법칙성으로 전제하는 상앙의 인식을 고려할 때, 법은 변화에 따른 마땅한 질서의 원리로 규정한다. 즉, ‘법은 나라의 저울(法者, 國之權衡)’로 정의한 상앙의 법 개념은 현실 인간의 자기 이익 보전을 위한 이기성을 역사 발전의 추동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의 기제로 법을 규정한다. 이로 인해 상앙은 법의 본질과 개념의 상세한 설명 대신 법의 ‘공정한 판단과 측정’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법을 설명한다. 그것은 법이 지닌 제일성(齊一性)이다. 즉, 법은 ‘천하의 저울(法者, 天下之度量)’이며 표준으로서 특정 주체와 목적에 의해 자의적으로 변형되거나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삶의 과정에서 시의 적절하게 응변(應變)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상앙에 이르러 법은 율(律)로 전환되어 법의 제일성에 기초한 공개성·보편성·공정 무사함을 확보하게 된다. 상앙 법치론의 확고함은 바로 법의 공정 무사함에서 비롯한다.
상앙 법치론은 제일성에 기초한 율을 적용함으로써 이기적 인간으로부터 합리적 행위를 항상적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인간의 자기 이익을 충족하고 금지하는 법의 엄격한 행사에 의해 합리적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치의 내용은 일상(壹賞)·일형(壹刑)·일교(壹敎)로 구체화되며, 모두에게 동일한 보상·형벌·교화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이기성을 충족하고 금지할 수 있는 동기 부여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그 결과 신상필벌(信賞必罰)에 의해 습속화한 인간의 합리성은 교화의 일률성으로 인해 자발적인 합리적 행위자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상앙 법치론의 정점은 존군(尊君)에 있다. 군주는 저울추로서 측정 수단인 법을 일률적으로 공정하게 적용할 주체다. 사실상 법에 의한 지배에 순응할 것인지의 여부는 그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현실의 주체인 군주에 의한 지배에 순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역사와 인간에 대한 전제로부터 법치로의 진입이 역사적 필연이라면, 군주의 존재는 역사관과 인간관에 대한 일관된 결론인 셈이다. 이 점에서 상앙의 법치론은 ‘누가 통치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기에 법 실증주의 또는 법 만능주의로 해석될 수 없으며, 정치 교의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특히 현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 법가의 문제의식을 고려하자면, 현실 정치에서 질서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군주일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존법은 존군과 동일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법가로서 상앙의 개성은 법치의 실행 그 순간부터 군주 역시 법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는 데서 부각된다. 즉, 법치의 주체로서 ‘밝은 군주(明主)’는 법치의 객체로 변환되며, 군주의 권위는 법의 제일성과 공정 무사함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일 뿐, 법을 초월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바로 여기에서 법가의 개혁성과 진보성을 엿볼 수 있다.
200자평
법가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정치가 상앙(商鞅)의 사상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상앙은 당시의 역사적 단계에서 왜 법치가 필요한지, 실질적인 법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이 법치 실행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춘추 전국 시대,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저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 책을 통해 읽어 낼 수 있다.
지은이
상앙(商鞅, BC 390?∼BC 338)은 위(衛)나라 왕의 공자(公子)로 알려져 있으며, 성은 공손씨(公孫氏)로 공손앙 또는 위앙으로 불린다. 젊어서 형명지학(刑名之學)을 좋아했고 위나라의 재상인 공숙좌(公叔座)의 문객으로 집사에 해당하는 중서자(中庶子)에 있었다. 공숙좌가 죽은 뒤, 당시 구현령(求賢令)을 내려 천하의 인재를 불러 모았던 진 효공(秦孝公)에게 유세해서 등용되었다.
효공 3년(BC 359) 변법수형(變法修刑)에 기초한 상앙의 1차 변법이 실시되었고 성공을 거둠으로써 좌서장(左庶長)에 임명되었다. 1차 변법의 내용은 가족분이(家族分異), 십오연좌(什伍連坐), 군공작위(軍功爵位), 불고간요참(不告姦腰斬), 존비·작위·등급의 규정(明尊卑爵秩等級) 등으로 국가의 내부 정비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법령에 대한 백성의 불신을 제거하기 위해 3장(丈)의 나무를 옮기는 자에게 금을 주었다는 이목지신(移木之信)의 일화는 유명하다.
1차 변법의 실행 이후 태자인 혜문공(惠文公)이 위법을 범하자 그의 사부인 공자 건(公子虔)과 공손가(公孫賈)를 처벌함으로써 위로부터의 존법과 준법의 태도를 바로 세웠다. 효공 10년 (BC 352) 상앙은 대량조(大良造)에 임명되어 위(魏)나라 수도인 안읍(安邑)을 항복시켰고, 그다음 해도 위나라의 고양(固陽)을 항복시켰다. 효공 12년(BC 350) 진나라가 함양(咸陽)으로 천도하면서 상앙은 2차 변법을 실시했는데, 그 내용은 현의 설치(鄕邑聚縣), 토지 제도의 정비(開阡陌), 도량형의 통일(平斗桶權衡丈尺)로 귀족 중심의 씨족 공동체를 해체하고 중앙 집권적 향촌 지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4년 뒤 공자 건이 법령을 위반해서 의형(劓刑)에 처하고 다시 5년이 지나자 진나라가 부강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효공 22년(BC 340) 위나라가 제나라에 패배하자 상앙은 효공에게 위나라를 정벌하게 되면 동쪽으로 옮겨 가게 됨으로써 동쪽의 제후들을 압박할 수 있는 대업을 이룰 것이라 조언하고 출격해서 위나라의 공자 앙(公子仰)을 사로잡는 성과를 얻어 오(於)와 상(商) 땅을 봉읍 받아 상군(商君)으로 불리게 되었다. 효공 24년(BC 338) 진 효공이 죽고 태자인 혜문공이 즉위하면서 공자 건의 무리가 상군이 모반한다고 밀고함으로써 위나라로 망명을 떠나게 되었지만, 개인적인 원한과 함께 진나라와의 충돌을 두려워했던 위나라의 거부로 결국 상읍으로 가서 무리를 모아 정(鄭)나라를 쳐서 반란을 도모했다. 결국 정나라의 면지(黽池 또는 彤地로 표기되었음)에서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고 자신과 일족 모두 죽음을 당했다.
옮긴이
윤대식(尹大植)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대 중국의 유·법가, 조선 후기 실학, 한국 정치사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고대 법가 철학과 조선 왕조의 리더십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충북대학교 우암연구소 전임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교양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관중(管仲)의 국가 책무 기획 : 온정과 통제의 경계 짓기>(2017), <경세가 관중(管仲)과 텍스트 ≪관자≫(管子) 사이>(2016), <≪전국책(戰國策)≫에 내재한 전쟁과 도덕의 정합성>(2014),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내재한 도덕과 전쟁의 정합성>(2013) 등이 있으며 저역서로는 ≪건국을 위한 변명≫(신서원, 2018), ≪민의와 의론≫(이학사, 2012, 공저), ≪안재홍과 신간회의 민족 운동≫(선인, 2012, 공저), ≪일지록≫(지만지, 2009, 역서), ≪동아시아의 정치적 의무관에 대한 모색≫(한국학술정보, 2008) 등이 있다.
차례
1. 경법(更法)
2. 간령(墾令)
3. 농전(農戰)
4. 거강(去彊)
5. 설민(說民)
6. 산지(算地)
7. 개색(開塞)
8. 일언(壹言)
9. 조법(錯法)
10. 전법(戰法)
11. 입본(立本)
12. 병수(兵守)
13. 근령(靳令)
14. 수권(修權)
15. 내민(徠民)
16. 형약(刑約)
17. 상형(賞刑)
18. 획책(畫策)
19. 경내(境內)
20. 약민(弱民)
21. 어도(御盜)
22. 외내(外內)
23. 군신(君臣)
24. 금사(禁使)
25. 신법(愼法)
26. 정분(定分)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모든 고을의 다스림을 하나의 형태로 하면 사특하게 왜곡하는 관리는 꾸미지 못하고 (이 업무를) 계승하는 관리도 감히 그 제도를 바꾸지 못하며 잘못을 해서 파면된 관리도 그 했던 일을 숨길 수 없다. 잘못했던 일을 숨기지 못하면 관리들도 사특한 사람이 없게 된다. 사특하게 왜곡하는 관리가 꾸미지 못하고 계승하는 관리도 고치지 못하면 관리는 줄어들고 백성은 고생하지 않는다. 관리가 사특함이 없으면 백성은 오만해지지 않는다. 백성이 오만해지지 않으면 농업은 실패하지 않는다. 관리가 줄어들면 징수가 번잡해지지 않는다. 백성이 고생스럽지 않으면 농사짓는 날들이 많아진다. 농사짓는 날이 많아지고 징수가 번잡하지 않으며 농업이 실패하지 않으면 황무지는 반드시 개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