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영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바로 이 사람, 송길한. 한국영화사의 획을 그은 굵직굵직한 작품들은 모두 그의 펜에서 시작되어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의 손을 통하여 완성되었다.
이 세 사람이 한국영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갔던 80년대의 작품들을 모은 그의 첫 시나리오 작품집이 탄생했다. 그의 90여 편의 중에서 한국사의 격변기에 완성된 9편의 작품은 <짝코> <길소뜸> <반란> <만다라> <비구니> <티켓> <안개마을> <씨받이> <아메리카 아메리카>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분단에 얽힌 상흔과 기억들, 불교적인 색채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깨달음과 집착, 구도의 길, 몸과 욕망이 불러오는 여러 상황들을 조명한다. 주옥같은 9편의 시나리오의 장면들과 함께 당대의 평론가들의 평론들을 보며 우리 영화의 발자취를 생생히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의 작품은 수많은 현업 감독들과 작가들이 가슴 두근거리며 영화를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고, 한국영화가 천만 관객의 사랑을 받는 오늘날이 오기까지 충분한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이 시나리오들로부터 만들어진 영화들은 내게는 한국영화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고, 한국영화에도 미래가 있으리라는 ‘희망’이었으며, 그럼으로써 나를 한국영화 ‘판’으로 끌어 들인 ‘유혹’이었다. – 김홍준(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감독)
책의 맨 뒤에 수록되어 있는 인터뷰에서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 세계, 작가로서의 열정 등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임권택 감독과 밤낮없이 영화에 매달려 미쳐 살았던 일화나 하루 열 갑이 넘는 담배를 피워대며 시나리오에 몰두했던 일 등을 보며 뼛속까지 작가인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마구잡이로 잘려나가야 했던 대본, 끝내 빛을 보지 못했던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영화자료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엄혹한 시대에서도 역사의 해원되지 않은 부분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야 할 의무를 지켜내려 애써온 노장의 열정은 감동을 넘어 비장함마저 풍긴다.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는 작가 이전에 격변기를 살아낸, 인생의 선배로서 건네는 진솔한 마음이 담겨 있다.
거장의 작품을 오롯이 담아내기까지 많은 이의 도움이 있었다. 저자가 오랜 세월 소중히 보관해 왔던 심의 대본과 신문 자료들, 영화 현장의 사진들은 세심한 손길로 매만져져 책의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변재란 순천향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의 도움으로 작가의 열정적인 목소리를 고스란히 실을 수 있었고, 한국영상자료원의 협조로 동시대의 귀중한 평가 자료와 사진자료들을 수록할 수 있었다. 송성재 호서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의 표지 또한 작가 송길한과 인간 송길한을 보여주는 데 더함도 덜함도 없다.
200자평
한국 영화의 대표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의 첫 번째 시나리오 작품집. <짝코> <길소뜸> <반란> <만다라> <비구니> <티켓> <안개마을> <씨받이> <아메리카 아메리카> 등 대표작 9편을 실었고, 말미에 영화평론가 변재란이 진행한 송길한 집중 인터뷰를 수록했다.
이 작품들을 통해 분단에 얽힌 상흔과 기억들, 불교적인 색채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깨달음과 집착, 구도의 길, 몸과 욕망이 불러오는 여러 상황들을 조명한다. 주옥같은 9편의 시나리오의 장면들과 함께 당대의 평론가들의 평론들을 보며 우리 영화의 발자취를 생생히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지은이
송길한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 <흑조(黑潮)>가 당선된 이후 전업 작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언약>, <마루치 아라치>, <둘도 없는 너>, <낯선 곳에서 하룻밤>, <짝코>, <만다라>, <우상의 눈물>, <나비 품에서 울었다>, <삐에로와 국화>, <불의 딸>, <안개마을>, <비구니>, <길소뜸>, <티켓>, <씨받이>, <아메리카 아메리카>, <불의 나라>, <명자 아키코 소냐>, <동행>(MBC특집드라마 1, 2부), <아낌 없이 주련다>(종군위안부 노부코), <서울 만신> 등 90여 편의 작품을 집필했다. <짝코>, <만다라>, <불의 딱>, <티켓>으로는 대종상 각본상을, <만다라>, <길소뜸>으로 한국연극영화상(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길소뜸>으로 영화평론가협회 영평상 시나리오상, <씨받이>로 작가협회 시나리오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권과 영상작가전문교육원에서 시나리오 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전주국제영화제 고문과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시나리오 선집 『비구니』와 장편소설 『명자 아키코 소냐』 등의 저서가 있다.
차례
추천사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었을까
문자 그대로 인간적으로
어느 늦깎이 연출부의 고백
작가의 몸을 통과하는 글쓰기
상흔과 기억
짝코
인간의 실체를 규명한 <짝코>
우수반공영화상의 아이러니, <짝코>
길소뜸
냉정히 본 육이오의 상처
반란
깨달음과 집착, 그리고 구도의 길
만다라
비구니
어떤 ‘시나리오’의 전말-다같이 성찰할 과제들
표현의 자유와 피해의식
몸과 욕망
티켓
형벌같은 삶을 사는 슬픈 몸짓
안개마을
영화계의 양신과 작가정신을 지켜보려는 의지의 소산
씨받이
체포된 삶-고통의 연대기
아메리카 아메리카
송길한에게 듣는다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들
책속으로
그동안 나와바리를 떠난 것도 아닌데 영화를 멀리한 것도 아닌데 내가 건달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이젠 침묵을 깨야 한다. 막장에서 노가다 뛰듯 절박하게 땀 흘리지 않는 작가는 사이비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90세에 베드로 대성당의 벽화를 그리지 않았는가. 베르디는 85세에 아베마리아를 작곡했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60세에 시작해서 85세에 완성했다. 부디 이 책이 내 영화 인생의 시답잖은 결산이나 정리 차원의 회고가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자 뚝심 있는 시동이길 다진다.
이 책은 단순히 ‘시나리오로 영화 읽기’의 재미만이 아니라 제작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통해 동시대사를 읽는 자료적 흥미를 독자들에게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군부 파쇼정권의 ‘묻지 마 검열’이나 특정 종교집단의 힘의 논리가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고 훼손했으며, 창작 의욕을 얼마나 저해했는지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_ “머리말” 중에서
추천글
송 작가가 쓴 시나리오의 바탕에는 우리의 삶이 있다. 단순히 거짓말 같은 거짓말, 그러한 허구가 아니다. 허구이되 우리 삶 안에, 생활 안에 늘 있는 내용이다. 그는 허구를 꾸미는 작가가 아니고 삶 안에서 있을 법한 것을 발견하여 발효해 내는 작가다. 어떤 소재를 영화화하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체험의 세계를 잘 발효시켜서 영화가 가고자하는 방향으로 소화해 낸 작가다.
_ 임권택 영화감독
‘인간적’이라는 매우 상투적이고 진부한 단어가 그와의 만남을 설명하는 데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것이 나는 전혀 부끄럽지가 않다. 인간성이라든가 인본주의라는 개념이 낡고 시대에 뒤진 것처럼 인식될 수밖에 없고 그런 말을 쓰는 것조차 어딘가 쑥스럽게 된 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인간적’이라는 단어를 가장 좋은 의미에서 아무런 유보조항 없이 거침없이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의 작품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인간에 대한 자상한 관심, 각별한 애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_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시인
형님이 늘 말씀하시는 것은, 영화 속의 인물들에겐 사람의 땀 냄새가 나야 하며, 그들의 발은 땅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란 결국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또, 시나리오는 머리가 아니라 발로 써야 한다는 말씀도 자주 하신다. 그래서, 이산가족을 인터뷰하고, 티켓 다방 종업원들을 만나고, 스님들을 만나기 위해 사찰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그네들의 삶이 ‘작가의 몸을 통과한 뒤에야’ 글쓰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시나리오들은, 그렇게 발로 쓰고, 몸을 통과한 결과물들이다.
_ 송능한 영화감독
이 책에 실린 시나리오들을 나는 객관적으로, ‘책 읽듯’ 읽어 내려가지 못한다. 내가 영화인이 되기 전, 이 시나리오들로부터 만들어진 영화들은 내게는 한국영화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고, 한국영화에도 미래가 있으리라는 ‘희망’이었으며, 그럼으로써 나를 한국영화 ‘판’으로 끌어 들인 ‘유혹’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역시 이 시나리오들은 1980년대의 한국영화가 역사와 대면하기를 피하지 않았다는, 시장이라는 정글의 법칙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다는, 모방과 답습을 거부하고 새로운 영화의 틀을 탐구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_ 김홍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