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 버린 가련한 영혼, 한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엄격한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한스는 돌봄과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음에도 재능 있고 공부 잘하는 착한 소년으로 자라난다. 온 마을의 자랑거리인 한스는 아버지는 물론 학교 선생님, 목사, 마을 어른들 모두로부터 신학교 장학생이 되어 마을을 빛낼 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한스는 좋아하는 낚시질이나 수영, 토끼 기르기를 모두 포기한다. 마울브론 신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고서 얻은 짧은 자유 시간마저 마을 목사와의 선행 학습으로 빼앗긴 한스는 신학교에 입학하고서 처음에는 학교 제도에 잘 적응하는 듯 보이나 공부에만 전념했던 탓에 이내 동급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처지가 된다. 공부로 인한 지나친 긴장감과 압박감을 어디에서도 풀지 못하고 녹초가 되어 가던 한스는 갖은 노력 끝에 친구 하일너와 사귀게 되지만 그와의 교제마저 학교 명령에 의해 금지된다. 반항아적 기질이 풍부하던 하일너가 끝내 퇴교 조치를 당하자 친구를 잃어버린 가련한 한스는 더 이상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예술 작품으로 승화한 헤르만 헤세의 젊은 시절 고뇌
이 소설은 대개의 헤세 작품이 그러하듯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헤세는 열세 살 때 라틴어학교를 다니며 주정부장학생 시험 준비를 시작해 1891년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기에” 학교에서 뛰쳐나온 그는 이후 만성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입학한 지 7개월 만에 자퇴하고 만다. 학교를 나온 이후 자살 기도로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하기도 하고, 칸슈타트 김나지움에 입학했다가 또다시 자퇴하고 만 헤세는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1894년 페로 탑시계 공장에서 견습공 생활을 시작해 15개월간 일하다, 튀빙겐의 헤켄하우어 서점에서 판매원 및 서적 분류 조수로 일하던 중 시를 쓰기 시작한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1898년 첫 시집 ≪낭만의 노래(Romantische Lieder)≫를 발표하면서, 헤르만 헤세는 시인으로 또 작가로서의 인생길을 가게 된다. 이 시기 헤세가 겪은 모든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 바로 이 《수레바퀴 아래서》다. 이 책은 특히 이 모든 고초를 겪고 났을 무렵인 18세의 헤세의 사진을 함께 실어 소설에의 몰입감을 배가한다.
시대를 초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학생 비극
헤세는 이 작품에서 학교 제도를 비롯한 온갖 부조리한 사회 제도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다. 작가는 훗날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학교란 내가 진지하게 여기는, 또 때로는 나를 흥분시키는 단 하나의 현대적 문화 문제다. 학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를 망가뜨렸다. 거기에서 배운 것은 라틴어와 거짓말뿐이다. 이 점은 한스가 증명해 주고 있다. 정직했기 때문에 칼브 사람들이 그를 거의 죽여 놓은 것이다. 그는 항상 수레바퀴 밑에 깔려 있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이 장편소설은 섬세하고 천부적 재능이 있는 소년이 학교라는 수레바퀴 아래서 어떻게 부서져 버리는지, 무정한 선생님들이 감수성이 강한 소년에게서 어떻게 행복이라는 감각을 말살해 버리는지, 또 섬세한 영혼을 지닌 소년에게 어른들은 어떤 식으로 자기 자신의 명예욕을 주입하고 있는지 철저히 고발한다.
200자평
헤르만 헤세의 어린 시절 경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로서 “학생 비극”으로 불린다. 주인공 한스는 홀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라지만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인재로서 기대에 부응하려 항상 최선을 다한다. 온갖 노력 끝에 마울브론 신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한스는 그러나, 엄격한 학교 제도라는 현실 앞에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 깔려 버린 주인공 한스의 운명을 통해 자신이 직접 겪은 실제 사건과 거리를 유지하며 젊은 시절의 고뇌를 예술로 승화한다. 이 책에는 특히 이 소설의 토대가 된 실제 사건을 경험하고 났을 당시 18세의 헤세 사진을 실어 소설에의 몰입감을 배가한다.
지은이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헤세는 1877년 7월 2일 남부 독일 칼브에서 선교사인 아버지 요하네스와 선교사의 딸로 인도에서 성장한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고향 칼브와 스위스 바젤에서 유년기를 지내고, 라틴어 학교를 거쳐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시인이 되거나 아니면 전혀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7개월 만에 도망친다. 서점에서 일하며 1898년 첫 시집 ≪낭만의 노래≫를 발표한다. ≪페터 카멘친트≫(1904)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신문 잡지에 기고하며,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 포로 후생 사업소에 근무하지만, 1916년 아버지 사망, 부인의 정신 분열증, 막내아들 발병으로 충격을 받고, 카를 구스타프 융과 B. 랑 박사에게 정신 치료를 받는다. 1919년 가족을 떠나 스위스 남부의 몬타뇰라로 이주해 수채화를 그리고,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데미안≫을 발표한다.
1924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고, 루트 벵거와 재혼한다. 히피들의 성서가 된 ≪황야의 이리≫(1927)로 절정을 이루지만, 1939∼1945년 헤세 작품은 독일에서 “원치 않는 문학”이 되고, 나치 관청은 책 출판을 허락하지 않는다. 예술사가 니논 돌빈과 세 번째 결혼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만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로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베른대학 명예박사, 괴테 문학상, 독일 서적 협회 평화상 수상 등 세계적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1962년 8월 9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옮긴이
이인웅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청주중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독일 정부 초청(DAAD) 장학생으로 뮌헨대학교와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1972년 헤르만 헤세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실장, 교무처장, 통역대학원장, 부총장 등의 보직을 수행하고, 문교부 국어심의회 외래어표기분과위원, 교육부 국비유학자문위원,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분과위원(장), 각종 고등고시위원, 한독협회지 초대 편집인, 한국헤세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독일동문네트워크(ADeKo) 이사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Ostasiatische Anschauungen im Werk Hermann Hesses≫(독일), ≪작가론 헤르만 헤세≫(편저), ≪현대 독일 문학 비평≫, ≪헤르만 헤세와 동양의 지혜≫, ≪파우스트. 그는 누구인가≫(공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비롯해 ≪선(禪). 나의 신앙≫, ≪수레바퀴 아래서≫, ≪이별을 하고 건강하여라≫, ≪인도 여행≫, ≪헤세 시선≫, ≪싯다르타 / 인도의 이력서≫와 산문선 ≪최초의 모험≫,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헤르만과 도로테아≫, ≪파우스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방송극집 ≪고장≫과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밀레나에게≫ 등 60여 권이 있다. 그리고 학술 논문으로 <Hermann Hesse und die taoistische Philosophie>(스위스), <헤르만 헤세와 불교>, <I Ging, das Buch der Wandlungen, im Glasperlenspiel von H. Hesse>(독일), <헤세의 도가 사상>, <괴테의 ‘초고 파우스트’ 연구>, <그라베의 대립적 세계관>, <파우스트와 역사 세계>, <정신 분석과 헤세의 문학 창조>, <파우스트의 구원과 그 문제성> 등 50여 편이 있다. 그 외에도 문학과 삶에 관해 각종 신문 잡지 등에 250여 편의 글을 쓰고, 여러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국내외에서 많은 초청 강연을 했다.
차례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한스는 약간 여윈 잘생긴 남자가 배에서 내리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그의 두 눈은 고요하고 거룩했으며, 두 손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한스는 그에게로 달려갔다. 모든 것은 다시 사라져 버렸다. 한스는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마침내 복음서의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다시 떠올랐다. “사람들이 곧 예수인 줄을 알고, 그곳으로 달려갔느니라.” 이제 한스는 “달려갔느니라”가 무슨 변화형인가, 그리고 이 동사의 현재형과 부정형, 완료형과 미래형이 무엇인지 생각해 내야만 했다. 또 단수와 양수(兩數)와 복수일 때 동사 변화를 떠올려야 했는데, 생각이 서로 뒤엉켜 막히면 갑자기 두려워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머릿속이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얼굴이 체념과 죄의식에 사로잡혀 졸린 듯한 미소로 일그러지면, 당장에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그 멍청한 웃음은 무슨 뜻인가? 바로 이런 때 웃음이 나온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