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평
말은 사람의 감정과 욕망을 담아내고 생각과 행동의 배경이 되는 세상을 편광렌즈처럼 투영한다. 말은 반드시 듣는 이를 상정하고, 그러한 사회적 특성이 타자를 발견하고 관계 짓기를 도와준다. 여기에 청중이 가세하면서 마침내 세상이라는 백드롭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사비평이란 인간의 상징, 말 혹은 글을 풀어헤쳐 인간이 어떻게 타자와 대화하고 세상과 소통하는지 읽어 내는 방법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고 그가 속한 사회를 분석한다. 텍스트의 아름다움보다 효과에 주목하고, 인간을 둘러싼 상징체계와 사회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문학평론과 구분된다.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해체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수사비평가는 창조적 해체를 하는 사람이다.
지은이
박성희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퍼듀대학교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학교 방문교수,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 교육방송 경영평가위원, 최은희여기자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조선일보 기자,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을 지냈으며, ‘동아광장’, ‘아침논단’, ‘조선일보 더 칼럼’ 등의 칼럼을 집필했다.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국제교류재단, 한국영상자료원, 독립기념관 이사와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논문으로 “대통령 취임 연설의 제의적(Epideictic) 특성 수사 분석: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연설문을 중심으로”(2009), “버크의 드라마티즘에 기초한 1960년대 <대한뉴스>의 집단 동기분석”(2007), “언론의 개방담론 논증구조 분석: 스크린쿼터제 관련 의견보도에 대한 Toulmin의 논증모델과 Stock Issues의 적용”(2006) 등이 있고, 저서는 『레토릭』(2016), 『아규멘테이션: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사회의 논쟁법』(2014), 『현대 미디어 인터뷰』(2013)가 있다.
차례
01 네오아리스토텔리언 비평
02 상황 분석
03 장르 비평
04 메타포 비평
05 클러스터 비평
06 논증 비평
07 역할 비평
08 드라마 비평
09 이데올로기 비평
10 판타지 테마 비평
책속으로
대체 왜 그렇게까지 분석해야 하는 것일까. 사랑한다는 말 속에서 사랑의 불확실성을 읽고, 도와준다는 말에서 권력 관계와 타자화를 찾아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기에 오해와 억측을 무릅쓰고 말을 해체해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말이 갖고 있는 인식론적(epistemological)가치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말 속에 진실과 진심이 감춰져 있고, 그걸 파헤쳐 알아내려는 게 인간 인식의 본능이기 때문이리라.
“말 속에 담긴 진실의 조각 찾기” 중에서
개별적인 수사적 상황이 반복되면 일정한 흐름과 규칙과 버릇이 형성된다. 세상의 모든 취임사들은 비슷하게 들리고, 세상의 모든 사과문도 유사한 형식을 띤다. 대체로 모든 추도사는 일정량의 슬픔을 담고 있다. 특별한 개인이 특별한 상황에 입을 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오래전부터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경우에 해 오던 말들인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문화와 현실을 읽는 방법이 장르 비평이다.
“장르 비평” 중에서
로더릭 하트(Roderick Hart)는 메시지의 ‘페르소나’를 찾는 것이 역할 분석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받는 메시지의 효과는 종종 ‘저 사람이 무슨 자격(역할)으로 이 말을 나에게 하는 걸까’를 이해하면서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간의 페르소나는 대개 가면 속에 감춰져 있어서 말만 듣고는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집에서 형이 동생을 야단친다고 할 때, 아마 그 형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서 동생을 야단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동생을 아버지처럼(아버지의 말로) 꾸짖을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나무라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등한 부부라면 평등한 언어가 오가겠지만, 권위적인 남편이라면 권위적인 언어를 사용해 아랫사람 다루듯 나무랄 것이다. 여기서 ‘형’이나 ‘남편’은 가면이고, ‘아버지’와 ‘보스’가 진짜 ‘페르소나’다.
“역할 비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