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경제학도가 인생을 시로 노래하다
학창 시절 책 읽기를 즐겼지만 시에 대한 흥미는 상대론이나 민약론에 훨씬 미치지 못했던 쉬즈모에게 시가 운명처럼 다가온 것은 미국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영국으로 건너가면서부터다. 케임브리지에 머물면서 서구 문학에 매료되었고, 낭만파 시인 키츠, 셸리, 워즈워스, 하디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인간의 개성 해방과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 바이런, 타고르, 톨스토이, 로맹 롤랑의 사상에도 많은 감동을 받았고, 근대화로 인해 인간이 타락해 가고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비판했던 타고르를 존경해 그의 작품을 중국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데올로기와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노래한 시인
쉬즈모는 생전에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후 지인들이 그의 유고 시집을 발표했다. 1925년 중화서국에서 출판된 그의 첫 번째 시집 ≪즈모의 시≫는 1922∼1924년에 창작한 시들로 구성되었으며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해 주었다. 두 번째 시집 ≪피렌체의 하룻밤≫은 자신의 두 번째 결혼 1주년을 기념해 1927년 상해서점에서 출판되었다. 이 시집에는 번역 시 7편과 1925∼1926년 사이에 창작한 시가 수록되었는데 그의 삶과 사상에 큰 전환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1931년 신월서점에서 출간된 세 번째 시집 ≪맹호집≫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호랑이>에서 제목을 따온 것으로, 가정불화로 인한 고통 가운데 이상과 희망이 좌절되어 버린 시인의 아픔을 발견할 수 있다.
1931년 쉬즈모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이듬해 7월 후배 문인 사오쉰메이와 천멍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맹호집≫ 이후 창작된 시편들과 번역 작품을 모아 유고 시집 ≪운유(雲游)≫를 출판했다. 이 시집에는 번역 시 2편을 포함해 총 13편의 시와 루샤오만이 쓴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작품 속에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추구와 실연의 아픔에 대한 토로가 주로 표현되어 있다.
쉬즈모의 시 세계는 1926년 루샤오만과의 결혼을 기준으로 두 가지 특징으로 나뉜다. 그의 초기 작품들에 이상 추구에 대한 열정과 낙관적인 희망이 넘치고 있다면, 후기 작품에는 삶에 대한 비관과 회의, 사랑에 대한 절망이 주조를 이루었다.
그는 ‘단순 신앙’, 즉 ‘사랑’, ‘자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의 이상은 순수했지만 현실 세계는 너무 참혹했기에 그의 이상주의는 실패로 귀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문학이 삶과 유리될 수 없다고 여기며, ‘삶’과 ‘예술’ 사이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스스로 “아마도 나는 천성적으로 감성적인 사람일 것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쉬즈모는 풍부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도시 문명의 폐해를 표현한 시인이었다.
200자평
풍부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도시 문명의 폐해를 표현한 쉬즈모의 시 40편을 실었다. 1931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쉬즈모는 신월시파의 핵심 인물로 중국 시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엘리트 시인이다. 순수한 이상에 반해 참혹했던 현실을 삶과 유리되지 않은 순수 문학으로 구현했다.
지은이
쉬즈모는 1897년 저장성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1915년 항저우제일중학을 졸업하고 그해 장유이와 결혼했다. 1917년 톈진 베이양대학 법학과에 진학한 후 량치차오를 알게 되어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1918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쉬즈모는 클라크대학 역사학과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명예 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1920년 석사 학위를 받는다. 러셀(Bertrand Russell)에 대한 존경심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정경대학에서 반년을 보내는데 이때 량치차오의 친구인 린창민과 그의 딸 린후이인을 알게 되고 린후이인에게 운명적 사랑을 느낀다. 장유이와 1922년 정식 이혼을 한 후 유럽,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지에 머물면서 자신의 열정을 시 창작에 쏟아부었고, 독자들은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그의 작품에 뜨거운 호응을 보였다.
린후이인에 대한 마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량치차오의 장남 량쓰청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쉬즈모는 다시 한번 실연의 고통을 겪는다. 1924년 우연히 선배인 왕겅의 아내 루샤오만을 알게 된 그는 다시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그녀에게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고 자신과 결혼해 달라 청혼하지만 주위의 반대로 무산되고 이후 5개월간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을 순례하고 돌아와 ≪신보부간≫ 편집을 맡는다.
쉬즈모를 중심으로 한 신월시파는 신격률시 창작과 이와 관련한 연구와 토론을 하며 순수시 운동을 전개했다. 신월시파는 고전시와 구별되는 현대적 의미의 격률을 추구하며 질서와 균형을 내포하는 형식이 시적 표현에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류샤오만과 결혼했지만 결혼 후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부친은 아들이 가족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이혼과 재혼을 감행하자 경제적 지원을 끊었고 그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대학을 다니며 강의하고 원고를 쓰며 바쁘게 지내는 동안 류샤오만은 무료함을 견디다 못해 마작과 아편에 손을 대면서 관계가 소원해진다.
이후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바삐 지내던 쉬즈모는 린후이인의 부탁으로 베이징에 강의를 하러 가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데, 불행히도 이 비행기가 지난 부근에서 짙은 안개로 인해 추락한다. 이 사고로 쉬즈모를 포함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늘 자유를 꿈꾸었기에, ‘날고 싶다’는 표현이 유난히 많이 등장했던 그의 시구들, 그러나 자유와 광명에 대한 이상을 가슴에 품고만 살았지, 빈곤하고 낙후한 사회 현실에 대항해 투쟁할 용기는 없었기에, 그는 자신이 쌓아 올린 상상의 세계에서만 비상할 수 있었다. 자신이 선택해 짊어진 십자가가 너무 무겁고 힘겹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그 십자가를 저버릴 만큼 모질지는 못했던 시인 쉬즈모는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의 급습에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학에 반대한 ‘부르주아 시인’으로 낙인찍혀 그의 작품은 형편없는 것으로 취급되었고, 이러한 그의 작품에 대한 족쇄는 1978년 개혁 개방 이후에야 풀리게 되었다.
옮긴이
이경하(李庚夏)는 덕성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베이징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학 동양언어학부 한국어 강사를 지냈으며, 현재 덕성여자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중국어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학위 논문 <北島詩硏究>(석사), <1930年代上海文學期刊與現代派詩潮>(박사)를 비롯해, 역서 ≪대망서 시선≫, ≪린후이인 시집≫, ≪떨리듯 와서 뜨겁게 타다 재가 된 사랑 노래 : 중국 현대 애정시 선집≫(공역), ≪매의 노래 : 바진 타계 일주년 추모 수상록 선집≫(공역) 및 학술 논문 <린훼인(林徽因)의 삶과 문학 속의 ‘동반자’>, <陸小曼 ‘미간행 친필 일기’ 속에 나타난 ‘林徽因’>, <린후이인(林徽因)의 여성관과 빙신(冰心)의 풍자>, <쉬즈모의 사랑과 시−케임브리지·베이징·상하이를 중심으로>, <1980년대 상하이 청년 시인들의 도시 서사(抒寫)>, <1976년 광장의 기록−≪텐안먼시초(天安門詩抄)≫(1978)의 탄생 과정 연구> 등이 있다.
차례
사랑하다 죽으리(情死)
기도(一個祈禱)
스후후퉁 7호(石虎胡同七號)
뇌봉탑(雷峰塔)
선생님! 선생님!(先生! 先生!)
빌어먹어도 싸지(叫化活該)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戀愛到底是什麽一回事)
떠나요(去吧)
독약(毒藥)
갓난아이(嬰兒)
밝은 별을 찾아서(爲要尋一個明星)
눈꽃의 즐거움(雪花的快樂)
남겨진 시(殘詩)
겁 많은 이 세상(這是一個懦怯的世界)
어두운 빛의 한 이정표(一塊晦色的路碑)
쑤쑤(蘇蘇)
내겐 하나의 사랑이 있을 뿐(我有一個戀愛)
낙엽의 노래(落葉小唱)
담장을 쌓아 올리며(起造一座墻)
신음 소리(呻吟語)
여행 중(客中)
한밤 깊은 골목 안의 비파 소리(半夜深巷琵琶)
우연(偶然)
마지막 그날(最後的那一天)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我不知道風是在哪一個方向吹)
생활(生活)
원망(怨得)
깊은 밤(深夜)
그의 눈에 당신이 있네요(他眼裏有你)
다시 케임브리지와 이별하며(再別康橋)
모두 바치리라(拜獻)
젠장(活該)
꾀꼬리(黃鸝)
계절(季候)
낡아 빠진(殘破)
왜냐하면(爲的是)
미약함(渺小)
꼬집지 말아요, 아파요(別擰我, 疼)
산속에서(山中)
운유(雲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빌어먹어도 싸지
“자비로운 아주머님, 인자하신 어르신”
날카로운 칼처럼 그의 얼굴을 매섭게 할퀴는 북서풍,
“먹다 남기신 기름 찌꺼기라도 조금만 주세요!”
대문가에 바짝 붙은 흐릿한 검은 그림자 한 뭉치.
“부자 나리, 배고파 죽겠으니 제게 자비 베풀어 주세요!”
대문 안의 웃음소리, 따뜻한 난로, 옥으로 만든 술잔
“복 많은 나리, 얼어 죽겠으니 제게 자비 베풀어 주세요!”
대문 밖의 북서풍이 비웃는 말, “빌어먹어도 싸지!”
나 역시 덜덜 떠는 한 덩이 검은 그림자,
인도 앞길에서 굼틀거리며,
약간의 따스한 동정을 원할 뿐이다,
뼈에 살을 바른 듯한 내 몸을 가릴 수 있도록 −
하지만 굳게 닫혀 있는 이 대문, 누가 거들떠나 볼까나,
거리엔 “빌어먹어도 싸지”라는 차가운 바람의 조롱만 있을 뿐!
叫化活該
“行善的大姑, 修好的爺,”
西北風尖刀似的猛刺著他的臉,
“賞給我一點你們吃剩的油水吧!”
一團模糊的黑影, 捱緊在大門邊.
“可憐我快餓死了, 發財的爺!”
大門內有歡笑, 有紅爐, 有玉杯;
“可憐我快凍死了, 有福的爺!”
大門外西北風笑說 : “叫化活該!”
我也是戰慄的黑影一堆,
蠕伏在人道的前街,
我也只要一些同情的溫暖,
遮掩我的剮殘的余骸 −
但這沈沈的緊閉的大門 : 誰來理睬;
街道上只冷風的嘲諷“叫化活該!”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
꿈속에서,
꿈의 찰랑이는 물결 속에 휘돌아 흐릅니다.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
꿈속에서,
그녀의 부드러움에, 도취했습니다.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
꿈속에서,
달콤함은 꿈속의 찬란한 빛입니다.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
꿈속에서,
그녀의 배신에, 나는 슬퍼했습니다.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
꿈속에서,
꿈속에서의 슬픔에 마음이 부서졌습니다!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
꿈속에서,
어둠은 꿈속의 찬란한 빛입니다.
我不知道風是在哪一個方向吹
我不知道風
是在哪一個方向吹 −
我是在夢中,
在夢的輕波裏依洄.
我不知道風
是在哪一個方向吹 −
我是在夢中,
她的溫存, 我的迷醉.
我不知道風
是在哪一個方向吹 −
我是在夢中,
甜美是夢裏的光輝.
我不知道風
是在哪一個方向吹 −
我是在夢中,
她的負心, 我的傷悲.
我不知道風
是在哪一個方向吹 −
我是在夢中,
在夢的悲哀裏心碎!
我不知道風
是在哪一個方向吹 −
我是在夢中,
黯淡是夢裏的光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