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파스테르나크의 <스펙토르스키>(1924∼1930)와 <이야기>(1929)는 각각 서사시, 좀 더 정확히 말해 운문 소설과 산문이다. 두 작품은 형식상 다른 장르이지만, 저자가 직접 <이야기> 서두에서 규정했듯이 “하나의 작품”이다. 두 작품은 하나의 단일한 주인공 세르게이 ‘스펙토르스키’의 두 ‘이야기’인 셈이다. 바로 여기에 두 작품을 함께 묶은 이유가 있으며 서로의 연관성, 곧 시와 산문의 연관성을 추적해 볼 때 각각의 작품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펙토르스키>와 <이야기>는 파스테르나크의 산문 창작사에서 하나의 큰 획을 그은 중요한 작품이다. 두 작품이 영국에서 국영방송 BBC의 요청에 따라 오페라로 공연되기도 했듯이 서구에서는 저자 생존 시에 ≪닥터 지바고≫와 나란히 일찍 번역 소개되어 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두 작품은 혁명과 함께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파스테르나크의 창작에는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창조된 대표적인 두 소설이 존재한다고 지적된다. 바로 운문 소설 <스펙토르스키>(그 보충인 <이야기>를 포함해)와 산문 소설 ≪닥터 지바고≫가 그것이다. 특히 <스펙토르스키>와 <이야기>는 시 이외에 큰 산문을 쓰고자 한 작가의 10여 년 동안의 갈망이 층층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창작 전기의 경험을 종합한 작품이며 1920년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두 작품을 끝으로 1910∼1920년대의 창작 전기는 마무리되고 이른바 “제2의 탄생” 과정을 거친 새로운 창작기인 후기가 1930년대 초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큰 산문을 쓰고자 하는 강한 열망은 후기에도 이어진다. 하지만 스탈린 정권의 암흑기인 1930년대는 작가의 창작 활동이 거의 중단된 시기로 산문 창작도 몇몇 미완의 산문 습작(<지불트의 수기>, <1936년의 산문> 등)이 있을 뿐 공백기로 남는다. 본격적인 산문 작업이 시작된 것은 작가 자신이 성숙기라 칭한 1940년대에 들어와서다. ≪닥터 지바고≫의 창작 작업(1945∼1955)이 바로 그것인데, 이때 1930년대에 중단된 산문 습작 경험이 그 결실을 보는 셈이기도 하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닥터 지바고≫가 오랜 습작 경험을 종합해 1920년대 말경에 완성된 단일한 하나의 작품 <스펙토르스키>와 <이야기> 작업의 연장이라는 점이다. 1930년대 산문 습작 역시 위의 1920년대 소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우리는 1920년대와 1940∼1950년대 양 시기에 쓰인 운문 소설과 산문 소설의 연관성, 나아가 전 생애 동안 큰 산문을 쓰고자 했던 바람의 최종 성취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강조컨대 <스펙토르스키>와 <이야기>, 그리고 ≪닥터 지바고≫는 각각 전, 후기를 종합하는 대표적인 두 소설이며 동시에 전 창작 시기에 걸쳐 창조된 하나의 ‘큰 산문’을 이룬다.
200자평
“<스펙토르스키>란 제목의 운문 소설과 현재 이야기되는 이 산문 간에 모순은 없을 것이다. 곧 이 두 작품은 하나의 작품이다.”
운문 소설 <스펙토르스키>와 산문 소설 <이야기>. 형식은 다르지만 “하나의 작품”이다. 파스테르나크는 혁명, 역사,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다루기 위해 고심했다. 그 해답이 바로 장르를 뛰어넘은 이 작품이다. 영국에서는 오페라로 공연되기도 했다. ≪닥터 지바고≫의 모태가 된 <스펙토르스키>와 <이야기>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지은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Пастернак, 1890∼1960)는 1890년 2월 10일(구력으로 1월 29일, 19세기 시인 푸시킨의 사망일) 모스크바에서, 톨스토이의 ≪부활≫ 삽화를 그린 화가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와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로잘리야 카우프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예술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회화를 접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음악과 철학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은 음악과 철학 공부를 중단하고 1912년부터 문학에 전념한다. 대학 시절 여러 문학 동아리−‘상징주의’, ‘미래주의’−에 참여했던 그는 1913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창작 전기의 주요 특징은 1930년대 초 이전에 이미 파스테르나크의 고유한 창작적 경향이 확립됐다는 데 있다. ≪삶은 나의 누이≫에서 그의 “자연 철학”이 결정적으로 형성됐다면, 세 서사시 <1905년>, <시미트 중위>, <스펙토르스키>에서는 “역사 철학” 역시 결정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삶과 미학적 신조’의 제시와 함께 ≪삶은 나의 누이≫에서 형성된 근본적인 창작 경향은 다소 변형되고 진화됐을 뿐 이후의 창작 전체를 관통한다. 위 세 서사시 또한 이 시집의 시학이 역사 테마 차원에서 전개된 예다.
창작 후기는 1932년에 시집 ≪제2의 탄생≫을 발행함으로써 시작된다. 이 시집에서 파스테르나크는 창작 전기의 난해성을 버리고 의미의 명료성을 추구했다. 1933년에는 작가동맹 대표단과 우랄 지방을 여행한다. 가혹한 비평적 공격을 받게 되는 1930년대 후반기에 그는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35∼1941년 번역에 몰두해 셰익스피어의 희곡, 그루지야 시인들, 바이런 및 기타 유럽 시인들의 시를 번역한다. 세계대전 발발로 치스토폴에 피난했다가 모스크바로 돌아온 후 1943년에 시집 ≪새벽 열차를 타고≫를 발행한다.
1945년에는 ≪닥터 지바고≫의 집필을 시작한다. 1946년에는 1955년까지 이어지는 소비에트문학의 즈다노비즘 시기가 시작되어 같은 해 작가동맹 제1서기 파데예프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1948년부터는 창작의 발표 기회가 막혀 번역으로 생활을 연명하게 되고 그 이후 셰익스피어와 괴테의 작품을 번역·출판한다. 1954년에는 잡지 ≪즈나먀≫에 <닥터 지바고에 실릴 시> 10편이 수록된다. 1955년에 ≪닥터 지바고≫ 집필을 완료한다. ≪닥터 지바고≫는 1956년에는 잡지 ≪노비미르≫를 비롯해 국내에서 출판이 거부되고, 1957년에 밀라노에서 이탈리아어로 출판된다. 1958년에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출판되고 같은 해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된다.
1959년에는 파스테르나크의 마지막 시집이자, <유리 지바고의 시>와 시기적으로도 특성에서도 밀접하게 관련된 시집 ≪날이 맑아질 때≫가 파리에서 출간되고, 이어 1960년에 그는 페레델키노에서 사망한다. 1988년에는 잡지 ≪노비미르≫에 ≪닥터 지바고≫가 게재되고 파스테르나크의 복권이 이루어진다.
옮긴이
임혜영은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 노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 작가의 일반 철학적 관념에 비추어 본 시와 산문>이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최근의 <파스테르나크의 “삶은 나의 누이” 에 나타난 레르몬토프 전통>, <러시아 문학과 여성신화: 파스테르나크의 “페테르부르크”, “변주 있는 한 테마”, ‘파우스트 연작시’를 중심으로>, <파스테르나크와 신비주의: “닥터 지바고”에 나타난 신비체험을 중심으로> 이외 다수가 있다. 역서로는 ≪시간과 공간의 기호학≫(공역)과 ≪삶은 나의 누이≫가 있다. 파스테르나크를 비롯해 러시아 모더니즘에 관한 연구 논문 발표를 지속하고 있다.
차례
스펙토르스키
이야기
부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세상엔 실제로 일어난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법,
더군다나 뛰어난 점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이야기가.
그러한 이야기에 관한 기사들이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나도 이 이야기에 파고들지 않았을 터.
그 기사들은 모두 과거에 관한 것이었고
과거의 일부분을 놀랍게 비추었다.
나는 현미경의 대물렌즈를 통해 바라보듯, 있는 그대로
<스펙토르스키>를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을 위해 특별한 것을 제시하지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즉시 시작하지도 않을 터.
하지만 나는 산더미처럼 많은 빛에 대해 썼다.
그는 멀리, 바로 그 빛 가운데서 내 앞에 보였던 것이다.
음식 창고의 작은 등잔만이 깜박이는 어스름에 대해 썼다.
이 어스름은, 우리 머리칼이 우리가 모르는
걸작(傑作)에 대한 소식에 놀라 꼿꼿이 설 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상처럼 여겨진다.
밤에 모스크바의 기울어진 가로등 갓이
어떻게 가로등 초점에 떨어진, 애수에 찬 비와 더불어
전율하며 먼 곳, 굴에서 굴로
이끌리는지에 대해 썼다.
어떻게 빗방울이 여행 소식을 전하는지에 대해,
모든 마차가 못 하나에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내는 편자로
밤새 내내 또각또각 말발굽 소릴 내며 때론 여기, 때론 저기,
때론 저 현관으로, 때론 이 현관으로 가는지에 대해 썼다.
날이 밝는다. 가을, 잿빛, 노쇠함, 흐림.
화분들과 면도기들, 솔들, 지진 머리 마는 컬용 종이들.
삶은, 닳아빠진 4륜 무개 마차가 덜커덕거리며 갈 때쯤의
밤처럼 지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납빛 천장. 새벽. 물에 잠긴 마당들.
아주 많은 양철 지붕들.
하지만 대체 어디에 있는가? 어느 날 꿈에 세계가 나타나
뚫고 나왔던 때의 그 집, 그 문, 그 어린 시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