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야코비가 주변 인물들과 교환한 서신을 종합해 보면 그는 애당초 스피노자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스피노자 철학은 하나의 체계로서 큰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존재를 하나의 틀 속에서 수미일관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철학 일반의 전범(典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개념의 필연적 연관성에만 집중하는 철학은 숙명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범신론이며 범신론은 곧 숙명론이라는 생각이다. 이에 반해 그는 인과적으로 결합한 개념으로 포착할 수 없는 존재가 분명히 있으며 진정한 자유는 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비판하려고 한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야코비와 레싱의 대화는 스피노자 논쟁의 구체적인 모습을 잘 보여 준다. 두 사람의 대화는 아주 짧지만 스피노자에 대한 각자의 분명한 입장을 보여 주고 있다. 레싱은 스피노자주의자로 자처하지만 야코비는 스피노자주의를 반대한다. 양자는 스피노자 이해에서도 상반된 견해를 드러낸다. 레싱은 정통적인 신성(神性) 개념을 부정하고 이를 전일성(全一性)으로 대치한다. 모든 존재가 하나의 존재와 통일되어 있다는 저 유명한 헨카이판(hen kai pan) 사상이다. 레싱의 이 언명은 곧이어 전개되는 독일 관념론의 중심 문제로 떠오르며 소위 스피노자주의의 역사를 출발시킨다. 이 말은 그때까지 특별히 주목받지 못한 스피노자를 철학적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야코비와 멘델스존, 야코비와 레싱의 논쟁을 통해 18세기 말 철학이 계몽주의에서 초기 낭만주의 및 독일 관념론으로 이행하는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스피노자 논쟁을 촉발한 것은 결국 새로운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200자평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은 계몽주의자 레싱을 중심으로 야코비와 모제스 멘델스존의 관계가 펼쳐진다. 세 사상가의 중심 문제는 그때까지 학계에서 주목을 끌지 못한 스피노자였다. 이 책은 야코비가 멘델스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밝힌 스피노자론이다.
지은이
프리드리히 야코비는 1743년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프랑크푸르트와 제네바에서 공부한 다음, 21세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설탕공장을 물려받아 경영인이자 무역상이 되었다. 이 무렵 프리메이슨에 가입해 뒤셀도르프 지부의 재정을 담당했으며 나중에는 윌리히(Jülich)-베르크(Berg) 공국의 재무 담당 관리로 활동하기도 했다. 제네바에서는 보네(Charles Bonnet)의 계몽주의 저술을 탐독했으며, 루소와 볼테르의 정치 사상에 심취했다.
서른에 접어들면서 오로지 철학과 문학에 집중하기 위해 공장 운영과 무역업을 그만둔다. 6년 뒤인 1779년에는 뮌헨의 각료가 되어 정치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통상과 세무 행정의 개혁이 벽에 부딪치면서 공직을 접고 낙향했다. 그의 개혁 프로그램은 자유주의에 입각한 것이었지만 바이에른 정권의 권위를 이겨 낼 수 없었다. 이러한 경험을 나중에 애덤 스미스의 정치경제 이론을 지지하는 논문으로 출판했다.
1794년 프랑스 혁명군이 펨펠포르트를 점령한 후 고향을 떠나 홀슈타인과 함부르크에 거주했다. 라인홀트(Karl Leonhard Reinhold)를 알게 된 것은 이 시점이다. 1804년에는 셸링과 함께 뮌헨대학 철학 교수가 되었으며 3년 뒤 바이에른학술원 원장을 지냈다. 말년에는 자신의 저술을 편집하는 일에 몰두했으나 완성하지 못했고, 1819년 뮌헨에서 영면한다. 전집 출간은 1825년 그의 친구 프리드리히 코펜(Friedrich Koppen)이 완성했다.
옮긴이
최신한은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독일 튀빙겐대학 철학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남대 철학과 교수이자 국제헤겔연맹, 국제슐라이어마허학회 정회원이다. 한국해석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헤겔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Vermitteltes und unmittelbares Selbstbewußtsein≫(Peter Lang, 1991), ≪헤겔철학과 종교적 이념≫(한들, 1997), ≪독백의 철학에서 대화의 철학으로≫(문예출판사, 2001), ≪슐라이어마허-감동과 대화의 사상가≫(살림출판사, 2003), ≪정신현상학-자기 내적 거리유지의 오디세이아≫(살림출판사, 2007), ≪지평 확대의 철학≫(한길사, 2009)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기독교서회, 2002), ≪해석학과 비평≫(철학과현실사, 2000), ≪기독교신앙≫(한길사, 2006), 헤겔의 ≪종교철학≫(지식산업사, 1999), 셸링의 ≪인간적 자유의 본질 외≫(한길사, 2000), 큄멜의 ≪자연은 말하는가?≫(탑출판사, 1995), 프랑크의 ≪현대의 조건≫(책세상, 2002), 크래머의 ≪해석학 비판≫(서광사, 2012)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스피노자 학설
인간의 자유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모든 개별 개념은 다른 개별 개념에서 나오며 실제로 현존하는 대상에 직접적으로 관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한한 속성을 지닌 최초의 원인에는 개별 사상도 없고 의지의 개별 규정도 없으며 오로지 최초의 보편적이며 내적인 원질료(原質料)만 있습니다.
-31~32쪽
기쁨은 현존재의 모든 만족이다. 이것은 현존재를 괴롭히는 모든 것, 고통과 슬픔을 일어나게 하는 모든 것과 같다. 이 기쁨의 근원은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활동성의 근원이다. 그러나 기쁨의 정념이 오로지 덧없는 현존재에만 관계한다면 이 정념 자체는 덧없는 것이다. 이것은 곧 동물의 영혼이다. 정념의 대상이 소멸하지 않는 것과 영원한 것이라면 그것은 신성 자체의 힘이며, 그 전리품은 불멸성이다.
-131~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