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신기질은 금나라가 지배하던 지역에서 태어난 뒤, 남쪽으로 내려와 남송에서 살며 출사(出仕)와 퇴은(退隱)을 거듭하면서, 시국을 바로잡고자 하는 염원과 그 좌절이 점철된 개인적인 생활사와 감정 세계를 모두 사에 드러내었다. 그의 사의 특색은 구체적으로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사의 내용과 제재에서 이전과 다른 특색을 나타냈다. 그의 사는 애국사(愛國詞), 또는 영웅사(英雄詞)로 불린다. 신기질은 남송과 이민족 금나라가 서로 대치하던 시대를 살며 잃어버린 중원 땅을 되찾고자 했으나 그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사에서 북쪽 땅이 이민족에게 함락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남북으로 나누어진 현실을 슬퍼하며, 무사안일을 꾀하는 조정의 주화파를 비판하고, 비록 중원 수복의 열망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나 종시 기회가 찾아오지 않음을 비탄했다. 이러한 내용은 이전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물론 신기질의 사는 다양한 내용과 제재를 담고 있어, 이상과 같은 내용 외에도 산수 경치를 묘사하고 농촌 생활과 풍경을 노래하며, 사의 전통적인 주제인 남녀 간의 정을 읊은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작품에 창화(唱和)하고 다른 사람에게 수증(酬贈)한 것도 있으며, 꽃과 달, 바위 등 여러 사물을 노래한 작품도 있다. 또 신기질의 사는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유머러스한 해학(諧謔)적인 내용도 있다. 하지만 신기질의 사를 대표하는 것은 역시 위에서 언급했던 우국(憂國)의 정(情)과 불우(不遇)한 처지를 노래한 사라 하겠다.
둘째, 표현 방면에서도 신기질 사는 이전의 작가와 구별되는 자기 나름의 성취를 거두었다. 우선 신기질은 사를 짓는 데 시(詩), 사부(辭賦), 산문을 짓는 방법을 동원했다. 이것은 북송(北宋)의 소식(蘇軾, 1037∼1101)이 시를 짓는 방법을 사에 운용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특히 산문화의 작법이 뛰어난데, 이것은 보통 산문으로 많이 나타내는 내용을 사로 표현하고, 산문의 장법(章法), 구식(句式), 어휘 및 표현 수법 등을 사에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표현을 통해 표현 수법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내용과 제재의 확장을 불러왔다. 또 이와 더불어 신기질은 다양한 표현 형식과 체제를 시험했다. 문답체(問答體)를 사용하기도 하고, 경서(經書)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인용해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기도 하며, 굴원(屈原)의 <천문(天問)>체를 본뜨기도 했다.
셋째, 풍격 방면에서 사는 일반적으로 완약파(婉約派)와 호방파(豪放派)로 나뉘는데, 신기질의 사는 소식과 더불어 호방파의 사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비록 같은 호방파라 할지라도 사풍(詞風)을 좀 더 세분하면 신기질의 사는 소식과 성격을 달리한다. 즉 소식의 사가 청광(淸曠)하다면 신기질의 사는 비장(悲壯)한 면이 두드러진다. 물론 신기질의 사에는 전통적인 완약(婉約)한 작품도 있으며, 그 외에도 평담(平淡), 청신(淸新) 등 다양한 풍격이 존재한다.
200자평
소동파와 함께 송나라 호방사(豪放詞)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신기질. 빼앗긴 조국 땅을 찾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싸웠던 만큼 작품에도 뜨거운 우국충정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소박하고 담담한 표현으로 엮어 내는 비장하고도 시원스러운 기개는 인위적인 수식이 따라갈 수 없는 놀라운 경지다.
지은이
신기질(辛棄疾, 1140∼1207)은 북송(北宋)의 황제와 황궁 사람들이 북쪽 금(金)나라로 끌려가는 정강의 난이 일어난 뒤, 금나라의 통치 아래 놓인 산동성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23세에 남송으로 내려와서 6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쪽에서 살았다. 신기질은 문무(文武)를 겸비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문인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그는 일생토록 금나라를 몰아내고 잃어버린 중원 땅을 수복하자는 주장을 폈으나 당시 조정 내부에 주화파와 주전파 간의 갈등이 심각하고 주화파가 상당 기간 정권을 잡으면서 뜻을 펴지 못했다.
그는 비록 조국 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했으나 사인(詞人)으로서는 송대의 사(詞)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송의 소식(蘇軾)과 더불어 호방파의 대표로 꼽히며, 또 중국 문학사에서는 남송에서 살며 우국적 내용을 사에 담은 작가들, 이를테면 육유(陸游, 1125∼1210)와 유과(劉過, 1154∼1206), 그리고 조금 뒤의 유극장(劉克莊, 1187∼1269) 등과 함께 ‘애국사파(愛國詞派)’라 일컬어진다. 실제로 신기질 사의 특색은 이 몇 가지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 이전에 비해 제재와 내용을 더욱 확대하고 표현 수법을 새롭게 확장해 사 문학 발전에 괄목할 만한 성취를 거두었다.
그는 사 작가로 이름이 높지만 시(詩)와 산문도 남기고 있다. 145수에 달하는 시는 다양한 내용을 보이며, 그중에서도 한적한 생활과 심경을 노래하고 다른 사람과 창화(唱和)한 작품이 비교적 많다. 또 산문도 17편이 전하는데, 특히 송과 금의 형세를 분석하고 실지(失地) 수복의 전략을 논한 <미근십론(美芹十論)>과 <구의(九議)>를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옮긴이
이치수(李致洙)는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타이완(臺灣) 국립타이완대학(國立臺灣大學)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와 저서로 ≪진여의 시선(陳與義詩選)≫(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육유 사선(陸游詞選)≫(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조자건집(曹子建集)≫(소명, 2010, 공역), ≪도연명 전집(陶淵明全集)≫(문학과지성사, 2005), ≪송시사(宋詩史)≫(역락, 2004, 공저), ≪중국 시와 시인−송대편(宋代篇)≫(역락, 2004, 공저), ≪육유 시선(陸游詩選)≫(문이재, 2002), ≪중국 유맹사(中國流氓史)≫(역서, 아카넷, 2001), ≪陸游詩硏究≫(臺灣, 文史哲出版社, 1991) 등이 있다. 논문으로 <陳後山詩硏究>, <방옹 시 연구(放翁詩硏究)−광의식(狂意識)을 중심(中心)으로>, <중국 고전 시가(中國古典詩歌)에 나타난 협(俠)>, <중국 고전 시체(中國古典詩體) 중 육언절구(六言絶句)의 생성, 발전과 특색 연구>, <당대(唐代) 시학(詩學)의 전개에 있어서 ‘시법(詩法)’ 문제 연구>, <송대(宋代) 시학(詩學)의 발전과 당송시(唐宋詩) 우열논쟁(優劣論爭) 연구>, <중국(中國) 무협소설(武俠小說)의 번역 현황과 그 영향>, <섭은랑(聶隱娘)>에 관하여>, <중한(中韓) 고전(古典) 시론(詩論)의 상관성(相關性) 연구> 등, 다수가 있다.
차례
염노교 念奴嬌(我來弔古)
청옥안 靑玉案(東風夜放花千樹)
목란화만 木蘭花慢(老來情味減)
태상인 太常引(一輪秋影轉金波)
수룡음 水龍吟(楚天千里淸秋)
보살만 菩薩蠻(鬱孤臺下淸江水)
염노교 念奴嬌(野棠花落)
자고천 鷓鴣天(撲面征塵去路遙)
자고천 鷓鴣天(唱徹陽關淚未乾)
만강홍 滿江紅(過眼溪山)
모어아 摸魚兒(更能消幾番風雨)
완랑귀 阮郞歸(山前燈火欲黃昏)
심원춘 沁園春(三徑初成)
축영대근 祝英臺近(寶釵分)
수조가두 水調歌頭(帶湖吾甚愛)
답사행 踏莎行(進退存亡)
수룡음 水龍吟(渡江天馬南來)
천년조 千年調(巵酒向人時)
추노아 醜奴兒(少年不識愁滋味)
추노아근 醜奴兒近(千峰雲起)
청평악 淸平樂(遶牀飢鼠)
생사자 生査子(溪邊照影行)
자고천 鷓鴣天(春入平原薺菜花)
자고천 鷓鴣天(枕簟溪堂冷欲秋)
청평악 淸平樂(茅簷低小)
청평악 淸平樂(連雲松竹)
자고천 鷓鴣天(陌上柔桑破嫩芽)
하신랑 賀新郞(細把君詩說)
파진자 破陣子(醉裏挑燈看劍)
작교선 鵲橋仙(松岡避暑)
답사행 踏莎行(夜月樓臺)
염노교 念奴嬌(倘來軒冕)
생사자 生査子(靑山招不來)
서강월 西江月(明月別枝驚鵲)
최고루 最高樓(吾衰矣)
심원춘 沁園春(疊嶂西馳)
심원춘 沁園春(杯汝來前)
옥루춘 玉樓春(何人半夜推山去)
목란화만 木蘭花慢(可憐今夕月)
서강월 西江月(醉裏且貪歡笑)
하신랑 賀新郞(路入門前柳)
감황은 感皇恩(案上數編書)
하신랑 賀新郞(聽我三章約)
자고천 鷓鴣天(壯歲旌旗擁萬夫)
복산자 卜算子(千古李將軍)
분접아 粉蝶兒(昨日春如)
하신랑 賀新郞(甚矣吾衰矣)
수룡음 水龍吟(老來曾識淵明)
남향자 南鄕子(何處望神州)
영우락 永遇樂(千古江山)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축영대근
−늦봄
보석 비녀 나누어 갖고 헤어졌네
도엽 나루
안개 낀 버드나무 우거진 강가에서.
높은 누각에는 올라가기 두렵구나
10일 중에 9일은 비바람 부네.
애간장 끊는 꽃잎이 한 잎 한 잎 날리건만
도대체 거들떠보는 사람 없는데
또 누가 꾀꼬리 울음소리 멈추도록 말 건넬까.
귀밑머리에 꽂은 꽃 흘깃 보고
꽃 쥐고 돌아올 날 점쳐 보고는
머리에 꽂았다가 금방 다시 세어 보네.
비단 장막 아래 등불은 희미한데
목이 메어 꿈속에서 말하네.
“저 봄이 근심을 가지고 왔는데
봄은 어디론가 돌아가 버리고
근심도 가지고 돌아갈 줄은 모르네.”
추노아
−박산으로 가는 길에 벽에 적다
젊을 때는 아직까지 근심이 뭔지 모르면서
높은 누각 오르기를 즐겼네.
높은 누각 오르기를 즐기며
새로운 사 짓기 위해 억지로 근심을 말했네.
그런데 이제 근심을 다 알게 되니
말하려다 그만두네.
말하려다 그만두고는
도리어 말한다네, “날씨도 서늘하고 좋은 가을이로다”.
청평악
−홀로 박산의 왕씨 초가집에 묵으면서
침상을 맴도는 굶주린 쥐들
박쥐는 날아다니며 등불 앞에서 춤춘다.
지붕 위 소나무 사이로 바람은 급한 빗발 뿌리고
찢어진 창호지는 창문에서 홀로 중얼거린다.
평생토록 북쪽 변방 지역과 강남 땅 돌아다니다가
돌아오니 흰머리 생기고 얼굴엔 노쇠한 빛 가득하네.
베 이불 덮고 가을밤 꿈에서 깨어나니
눈앞에 조국의 만 리 강산 펼쳐져 있네.
심원춘
−술을 끊으려고 해, 술잔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훈계하다
술잔아 너 앞으로 나오너라
이 늙은이 오늘 아침
내 몸을 점검해 보았다.
오랫동안 술 먹고 갈증이 심해
목구멍이 눌어붙은 솥 바닥 같았는데
지금은 잠자는 것 좋아해
코 고는 소리는 우레 치듯 한다.
너 술잔은 말하는구나. “유영이야말로
고금에 달관한 사람으로
술 취해 죽으면 그 자리에 파묻으면 그뿐이라 했습니다.”
네가 뜻밖에도 이런 말을 하다니
한탄스럽다 너는 친구에게
정말 무정하구나.
너는 또 노래와 춤을 매개로 해 우리를 꾀는구나.
생각건대 너는 인간에겐 맹독과 같은 존재.
하물며 원한은 크든 작든
좋아하는 것으로 인해 생겨나고
사물은 좋고 나쁘고 없이
지나치면 재앙이 되는 법이다.
내 너에게 분명히 말하는데
“더 머물지 말고 속히 물러가라
내 힘은 아직 너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술잔이 두 번 절하고
말한다. “가라고 하시면 바로 물러가고
부르시면 반드시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