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작품과 관여되지 않은 이론은 공소하다.” 신동욱의 비평 세계를 관통하는 명제다. 그는 한국 문단과 평단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던 1960년대 평단에 등장해 독보적 활동을 펼쳤다.
1960∼1970년대는 한국문학사에서 순수/참여 논쟁, 신세대문학론, 전통 단절/계승론 등 세대 간, 이념 간 논쟁과 담론이 왕성해지면서 비평 행위에 내재되어 있던 권력적 성격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때다. 이 시기 활발하게 활동한 신동욱은 문학의 기능이나 논쟁적 담론에 대해 소리 높이지 않고, 당대 비평 담론의 중심적 이슈 속에서도 꼿꼿하게 자신만의 비평 영역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의미 깊게 걸었다. 이 같은 태도는 그의 문학관과 일치한다. 그에게 문학이란 이념과 주장으로 무리를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언어예술의 미의식을 담아내는 창조물이어야 하는 것이다.
신동욱 비평의 특징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문학작품의 문학적 ‘형상화’의 깊이, 문학의 이념을 넘어서는 심미적 미학, 상징성과 서정성의 가치를 찾는 그야말로 문학 텍스트의 문학적 가치를 묻는 태도다. 김소월과 김영랑의 시를 탐색하며 서정적 개인이 내면화하며 자신의 세계를 미학적으로 구축해 가는 미학의 과정을 주목하는 데서도 그의 태도가 보인다. 둘째, 전통과 민족문화, 역사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다. 그의 태도는 당시 한국문학의 낙후성을 운운하던 1960년대의 문단 분위기, 즉 한국 근대문학이 이전의 전통과 철저하게 단절되었다는 주장, 근대문학 이식론을 운운하던 분위기(이어령, 유종호)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 전통 계승론의 입장에 가깝다. 그에게는 고전의 권선징악이 문제가 아니라 작품 안에 그 주제 의식이 얼마만큼 심도를 가지면서 형상화에 필연성을 가지느냐가 관건이었다. 셋째, 평민문학에 대한 관심이다. 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문학에 중요한 흐름이 된 리얼리즘문학, 1970년대 민족문학, 1980년대 민중문학의 흐름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빙허, 서해, 포석, 심훈, 민촌, 무영, 김유정, 채만식, 김정한 등 기저층을 대상으로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들의 흐름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특히 이문구의 ≪장한몽≫에서 잡다한 삶의 군상은 당대적 진실뿐만 아니라 작중인물의 한이 ‘파괴적 정열’로 강렬한 새로운 리얼리즘을 성취하고 있다고 보며, 이문구의 야생적 사실주의는 판소리 계열의 평민문학적 골계미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1970년대의 걸작이라고 평가한다.
200자평
1960년대 한국문학사에서 논쟁의 시대에 등단해 독보적 활동을 펼친 신동욱 평론가의 대표 평론 열두 편을 선별해 실었다. 그는 1960∼1970년대 사회적 논쟁 비평, 권력적 분파를 위한 담론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독자적인 길을 걸었으며, 당대 작품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전통문학의 계승 논의를 위해 노력했다.
지은이
신동욱(申東旭)은 1932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1952년 홍성고등학교,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5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강사를 거쳐 계명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구마모토학원대 교수, 하버드대학교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1960년 3월에 <마법과 미의 영역>이, 5월에 <현대의 음성>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이후 <포오론>(1961), <현대의 서민>(1961), <미토스의 지평>(1965), <긍정하는 히로>(1965), <자유의 신화>(1965), <조지훈론>(1965), <염상섭고>(1969), <풍자소설고>(1971), <신소설과 서구 문화 수용>(1972), <근대시의 서구적 근원 연구>(1972) 등을 발표했다.
그가 추구한 비평 정신은 문학을 통해 가장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인간다움을 실현하려는 휴머니즘이다. 인간주의의 문맥에서 바라볼 때 휴머니즘이 완성된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휴머니즘을 완성하려는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이야말로 인간다운 행위이며, 그러한 행위가 곧 문학의 사명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틀에서 민족의 지도적 언어 기능으로서 문학이 이바지해야 하는 민족주의의 입장과 시대를 공동으로 체험하는 참여의 자세에서 문학의 가치를 찾는다.
또한 한국문학의 기본 흐름을 양반문학과 평민문학의 2대 주류로 분석하면서 전자의 성격을 숭고미·우아미로, 후자의 성격을 골계미로 특징지었다. 특히 평민문학은 소박하고 기교가 없지만, 일정한 형식과 내용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미의 영역을 확대했으며, 시대를 반영하며 공동 체험을 나타낸 점에서 가치가 높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학사의 사실주의적 부분을 강조하고 염상섭·현진건·채만식·김유정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주요 저작으로 ≪한국 현대문학론≫(박영사, 1972), ≪한국 현대 비평사≫(한국일보사, 1975), ≪문학의 해석≫(고려대출판부, 1976), ≪우리 시대의 작가와 모순의 미학≫(개문사, 1982), ≪우리의 삶과 문학≫(고려원, 1985), ≪삶의 투시로서의 문학≫(문학과지성사, 1988), ≪시상과 목소리≫(민음사, 1991), ≪한국 현대문학사≫(공저, 방송통신대출판부, 1991), ≪1930년대 한국 소설 연구≫(한샘출판사, 1994), ≪한국문학과 시대의식≫(푸른사상, 2014), ≪한국 현대문학사≫(공저, 집문당, 2014) 등이 있다.
1982년 연세대학술상과 조연현문학상, 1989년 월탄문학상, 1994년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해설자
김용희는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평택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있다.
1992년 ≪문학과 사회≫에 <생명을 기다리는 공격성의 언어: 김기택론>을 발표하며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2006년 ≪불교신문≫에 시 <눈발 날리는 마당>, 2009년 ≪작가세계≫에 소설 <꽃을 던져라>를 발표한 뒤 시인이자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구서로 ≪정지용 시의 미학성≫, ≪현대시의 어법과 이미지 연구≫, 문학평론집으로 ≪천국에 가다≫, ≪페넬로페의 옷감 짜기≫, ≪순결과 숨결≫, 장편소설로 ≪란제리 소녀 시대≫, ≪화요일의 키스≫, ≪해랑≫ 등을 내놓았다. 첫 장편소설 ≪란제리 소녀 시대≫는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추천되었다. 2004년 김달진문학상, 2009년 김환태평론문학상을 수상했다.
차례
근대시와 시대정신
抒情詩에 있어서 時間의 問題
崇高美와 滑稽美
韓國에 있어서의 톨스토이 理解와 適用-1910년대를 중심하여
靑山別曲
<招魂>과 응답 없는 님
삶의 밑바닥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의지-이문구의 ≪長恨夢≫
삶의 투시로서의 이야기 문학-趙善作의 작품 세계
崔南善의 散文과 民族觀
김유정 소설 연구
김영랑의 시
고향의 말에 담긴 정신−김남곤 시인의 詩心
해설
신동욱은
해설자 김용희는
책속으로
抒情詩는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 출발하여 時代를 證言하고 民族을 대변하고 있다는 공동 의식을 독자들에게 일깨운다.
―<抒情詩에 있어서 時間의 問題>
(≪九雲夢≫, ≪흥부전≫) 두 작품의 비교에서 나타난 대립적인 요소들은 우리 문학의 전반에 걸쳐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身分的 의미에서 崇高美로 대표되고 다른 하나는 사물의 客觀化를 중심으로 실제 생활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滑稽美로 대표된다. 이 두 美學의 대립은 한국문학의 主流的인 전통에서 확인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짐작된다.
―<崇高美와 滑稽美>
김남곤 시인의 시적 음성에는 강인한 의지와 향토적인 소박한 어조가 고유한 미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김소월 님의 절규하는 목소리는 짙은 애상미가 우러나고, 한용운 님의 시상에는 집요하고 강인한 저항적 엄숙미가 우세하다. 정지용 님의 시 세계는 사물의 인식에 순리와 어긋남을 지적으로 펼치는 감성미가 보인다. 이에 비하여 이상 님의 시 세계는 시대의 어긋남을 추상적으로 압축하여 지적인 엄정성을 표현한다. 그러나 김영랑 님의 어조에는 남도의 서정적 음색이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독자로 하여금 그의 시어에 흡수당하게 하는 서정적 특성이 있어, 우아미와 비극미가 융합된 미의 세계를 확립하였다. 그런 뜻에서는 아마도 한국 최고의 상징성을 심화시킨 유일한 시인이라 보인다.
그러나 향토색을 가장 짙게 작품으로 성공시킨 예는 함경도의 산촌이나 농촌 생활상을 짙게 반영한 백석 시인의 향토적 풍미가 으뜸일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시적 천분이 매우 뛰어난 시인들의 시적 특성은 다양하고, 그만큼 한국 근대시들에는 놀라운 예술성이 나타나 있다. 윤동주 시인은 기독교의 신앙생활과 시적 천분이 융합되어, 놀라운 섬세성을 나타내고 자의식의 내면세계를 시화하여 시대의 왜곡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어, 독자들의 크고 넓은 공감을 자아내었다.
―<고향의 말에 담긴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