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세기 초 프랑스 연극계에서 활약한 앙토냉 아르토는 ≪연극과 그 이중≫에서 ‘잔혹연극’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연극이론을 확립한다. 대사뿐 아니라 몸짓과 조명, 음향 등의 종합적 효과를 통해 관객을 집단 흥분 상태에 빠트리고 관객과 무대 사이에 신비적 일체감을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근친상간, 존속살인의 무대는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했다. 당대에는 외면당했던 잔혹연극이 현대연극에 미친 영향은 결정적이다. 세계적 연출가 그로토프스키, 민중연극의 창시자 아우구스토 보알 등 현대의 많은 연출가와 배우들이 잔혹연극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전위극의 출현도 아르토의 잔혹연극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아르토와 ‘잔혹연극’이 현대연극에 미친 영향을 생각했을 때 그의 광기 어린 삶은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을 연상시킨다. 숨을 거둘 때 아르토의 모습은 미라 같았다. 고함치듯 열린 입, 뼈만 앙상한 손, 살결은 죽은 나무껍질이었다. 병원 침상 다리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곧 일어나 어디론가 떠나려는 자세로.
저자인 한무 박사는 30년 넘게 아르토를 연구해 온 자타공인 국내 1호 아르토 전공자다. 노년에 그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아르토의 방식으로 아르토의 연극관과 인간관을 이 책에 모두 풀어 놓았다. 저자는 30년 넘게 연구해 온 아르토의 연극과 인간관을 이 책에 풀어 놓았다. 아르토가 산 평생에 스무 해를 더 살아 낸 저자는 이제 서 있는 그를 앉히고 그의 격정과 분노를 달랜다. 그가 자르려 파고드는 칼자루를 붙잡는다. 칼끝에 솜뭉치를 감아 단검을 북채로 만든다.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서 찌르는 날카로움보다 울리는 진동을 읽어 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부한다. 어느 날, 누군가가 이 서툰 솜뭉치를 풀고, 이 글들을 불쏘시개로 쓴다면 좋겠다고. 벼락 치듯 고함치며 분노하는 칼끝을 제대로 휘두를 사람이 있다면, 이 무모함에 대한 분노의 보상일 수도 있다고 여겨 퍽이나 고마울 것이라고.
200자평
앙토냉 아르토는 20세기 초 프랑스 연극계에서 연출가로, 배우로, 극작가로 활약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연극 세계를 구축하고 이를 ‘잔혹연극’이라 명명했다. 국내 1호 아르토 전공자인 한무 박사가 생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아르토의 연극관, 인간관을 이 책에 모두 풀어 놓았다.
지은이
한무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바람 구두를 신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경기도 이천, 대전, 청주, 제주, 공주, 양구, 다시 서울 등 곳곳을 떠돌다가 지금은 칠장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젊은 날에 저지른 주책(술과 책)과 늙어서도 못 벗는 서툰 삶 탓에, 평생 동안 속앓이를 하고 만 부인과 개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산다. 몸은 ‘제석천(帝釋天) 그물’에 걸리나, 마음은 그 그물망을 벗었으면 하고, 초여름 저녁의 푸르름과, 기이하나 싱그러운 사람들을 좋아한다.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다. 두 학위논문 주제는 모두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연극’에 대해서다. <앙또넹 아르또의 이중의 추구>가 석사이고, <앙또넹 아르또에 있어서 ‘잔혹연극’과 형이상학>이 박사 때다. 현재는 배재대학교 명예교수다. 대학에 재직하면서 교무처장, 문과대학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고, 전국대학원장 이사, 프랑스문화예술학회 회장 등을 지내다. 어느 해는 몽펠리에3대학 초청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공연 예술 현황을 살피면서, 특별히 프로방스 지방이 좋아 홀로 여러 달을 떠돌다. 그동안 쓴 논문들은 거의 다 앙토냉 아르토에 관계된다. <앙또넹 아르또의 광기의 형상>, <앙또넹 아르또의 신비 추구>, <공을 위한 충만의 변증법>, <앙또넹 아르또의 언어의 변형과 팽창>, <앙또넹 아르또의 ‘잔혹연극’의 구조와 성격> 등 스무 편 정도이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세계≫, ≪트리포의 400번의 구타≫, ≪아르또와 잔혹연극론≫ 등이 있고, 혼자 쓴 책으로는 썩지 않는 세상과 곪지 않는 사람을 그리는(希), ≪세상 물고 나는 작은 새≫가 있다.
차례
책머리에
I부 내면의 얼굴
I. 광기 서린 늪가에서
1. 착란과 성찰
2. 광기의 뿌리
3. 광기의 줄기
4. 광기의 열매
5. 광기와 작품
II. 지상의 천국을 찾아
1. 혼재된 사유
2. 자연과 문화
3. 언어와 사유
4. 기존 가치 거부
5. 외부로의 발길
6. 내면의 지리
기이한 신비
공과 만남
공 만들기
III. 사유의 칼날 위에 푯대를 세우고
1. 사유의 토양
1-1. 사유의 축
1-2. 샤먼적인 개인
1-3. 비기독교적 요인
신비 전통
연금술
2. 동·서양 사유의 틈
2-1. 신과 인간
서양
동양
2-2. 사유의 갈래와 아르토
2-3. 시공간과 마음의 틀
2-4. 말의 순류와 역류
2-5. 육체를 보는 눈
원초적 사고
서양의 인식
동양의 인식
연금술의 차이
3. 동양을 보는 눈과 사유가 멈춘 자리
3-1. 시각과 관심
3-2. 인도와 중국
3-3. 도가와 유가
3-4. 공의 인식
3-5. 사유 걸치기
3-6. 사유의 틈과 균열
II부 ‘잔혹연극’의 세계
I. 주제와 형이상학
1. 폭력
2. 근친상간
3. 육체의 연금술
II. 연극 언어의 변증법
1. 언어와의 싸움
2. 언어와 존재, 언어와 인지
3. 발성 언어, 시각 언어, 공간 언어
4. 불협화음, 부조화와 검은 유머
5. 언어 뒤 언어
III. 연출의 연금술
1. 텍스트의 거부와 수용
2. 연출자의 연금술과 배우의 진동
3. 무대의 화염과 관객의 제련
4. 무대의 압축과 엄격성
IV. 이중과 무대의 실제
1. 주제 위 주제
2. 이중의 의미
3. 무대의 실제−<첸치 가족>을 중심으로
3-1. 주제
3-2. 인물
3-3. 무대와 무대 장식
3-4. 조명
3-5. 음악, 음향효과
3-6. 몸짓과 원운동
V. 무대 뒤 무대
1. 신화 공간의 충만, 진동
2. 침묵과 공, 적멸
부록(현대연극의 두 기둥: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연극’ 비교)
1. 연극관과 추구점을 중심으로
오락과 잔혹
정화와 교육
강화된 자아와 소멸된 자아
2. 연출 기법을 중심으로
상반된 연출
변증법과 연금술
최면과 소외
두 개의 길
앙토냉 아르토 연보
참고 문헌
찾아보기
지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숨을 거둘 때 아르토의 모습은 미라와 같았다. 고함치듯 열린 입, 관절이 굳어진 뼈만 앙상한 손, 살결은 죽은 나무껍질이었다. 병원 침상 다리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곧 일어나 어디론가 떠나려는 자세로. 그는 절반은 미치광이, 절반은 현자로서 비난과 찬사를 함께 받는다. (…) 실로 곪지 않는 육체와 썩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광분한 사람이다. 세상과 인간의 악의와 치부를 발견하고, 광기로 뿜어낸 기이한 자유를 통해 새로운 인간의 왕국을 실현시키려 했다. 죽은 후에 빛으로 어디론가 날아 올라가려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땅에 남아 욕질하고, 주먹질하고, 고함을 치고 있을지 모르는 사람이다.
-<서문>
2.
아르토는 무형의 실제가 쏟아져 들어오는 얀트라의 별을 갈망한다. 얀트라의 별빛이야말로 아르토에게는 ‘잔혹연극’의 목적이다. 그 목적을 인간 세상의 무대에서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자신의 연극이 떠오르지 않는 연금술사들의 별처럼 가능하지 않음을 느낀다. 그는 연금술과 연극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잔혹연극’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 아르토가 ‘잔혹연극’의 방법으로서 보여 주는 것은 충만과 진동이다. 그 가득함과 울림이 침묵의 땅 속을 뚫고 줄기로 올라가 잔혹과 공포의 열매를 만들고 부조화와 불협화음, 검은 유머의 잎들을 무대 가득 출렁이게 하는 것이다. 아르토는 아픔으로 이 한계를 인식한다. 그가 바라는 얀트라의 별은 무대 위에서는 떠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별은 표현의 영역 안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연극적 행위는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 결국 연극은 없고 연극 행위만 남을 뿐이고, 마침내는 그 행위조차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