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 1891∼1965) 선생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가, 사학자, 사상가이며, 여러 편의 수필 작품을 발표한 근대 문인이기도 하다. ≪현대 조선 문학 전집(수필) 1권≫(조광사, 1946)을 보면 수필가로서의 안재홍 선생의 위상을 잘 살펴볼 수 있는데, 이 책은 안재홍을 비롯하여 김동인, 이태준, 박태원 등 모두 일곱 분의 수필을 인물별로 엮은 결실이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소개된 인물이 안재홍이며 그의 <춘풍 천 리>(1927)와 <목련화 그늘에서>(1926) 등 두 편의 수필이 그 안에 실려 있다. 이 수필들을 발표한 시기는 안재홍 선생이 조선일보 주필로서 발행인을 겸할 때다. <춘풍 천 리>는 봄철을 맞아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선을 타고 내려가면서 창밖에 보이는 풍경과 각 지역의 자연, 역사, 문화 등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일종의 기행 수필이고, <목련화 그늘에서> 역시 하동 쌍계사 풍경을 경험하면서 느낀 감정과 사색을 담고 있는 기행 수필이다. 이 두 편의 수필은 해방 후 국정 교과서에도 실렸으며 이후 수필집의 표제가 되어 추후에 ≪춘풍 천 리≫(2011), ≪목련화 그늘에서≫(2009)로 재발간되는 등 당대 최고의 수필로 평가받고 있다. ≪고원의 밤≫(2007)으로 안재홍 선생의 작품을 편집하고 해설한 구중서 교수는 “민세의 수필은 낭만적 감수성과 함께 민족의 수난에 대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다. 올곧고 아프고 아름다운 인격의 민세 수필 자산이 한국 근대 문학사 안에 마땅히 자리를 잡아야 한다”라고 안재홍 선생의 수필 세계를 높이 평가했다. 이 밖에도 안재홍 선생의 수필 작품으로는 기행문인 <백두산 등척기>가 대표작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이는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와 함께 백두산 관련 기행문의 탁월한 성취로 꼽히고 있다.
민세 안재홍은 시종일관 일제에 대한 비타협 독립운동의 노선을 걸었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 사람, 인간의 가치, 사색의 심화, 정열과 긴장, 사심의 초월 등을 주제로 한 다수의 수필을 남겼다. 이것은 정치적 논설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곧 건조하고 기계적인 논리를 담은 논설이 아닌, 대체로 그의 정신세계의 총화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의 수필은 낭만적 감수성과 함께 민족 수난에 대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민세는 나아가 민족의 상고사를 연구하기도 했고, 위당 정인보 선생과 함께 다산 정약용의 사상을 정리했을 정도로 이름난 문화사 학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제 새로이 올곧고 아름다운 민세 수필이 재조명받아 한국 근대 문학사 안에 마땅히 제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200자평
<춘풍 천 리>로 유명한 수필가 안재홍은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수필은 낭만적 감수성과 함께 민족 수난에 대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다. 자기 자신의 신변잡사(雜事)에 대한 술회보다는 민족의 위기와 그 나아갈 길에 대한 스케일 큰 포부와 다짐을 줄곧 표명했고, 나아가 한 시대에 가장 준열하게 살아갈 태도에 대해 탐구하는 일관성을 보여 준다.
지은이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은, 1891년 12월 30일 경기도 진위(지금의 평택)에서 지주 출신인 아버지 안윤섭과 어머니 남양 홍씨 사이에 8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안윤섭은 대한제국 때인 1902년 혜민원 주사를 지냈지만,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고향 진위로 내려왔다. 아버지 안윤섭의 재산은 형 안재봉과 조카 안우용에게로 상속되었다. 어린 시절 안재홍은 근왕(勤王) 의식이 강했던 할아버지 안상규와 아버지 안윤섭의 영향을 받아 특별히 민족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민세는 열일곱 살 때 진위에 있는 사립 진흥의숙에 입학했고, 이어 수원의 미션계 학교로 진학한 후, 서울 경성 기독교 청년회(YMCA) 중학부에 입학했다. 기독교 청년회 중학부에 다니면서 그는 남궁억, 이상재, 윤치호 등에게서 많은 종교적, 사상적 영향을 입었다. 1910년 8월 여름 방학 때 진위에 내려와 있다가 한일 강제 병합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민세는 생의 중요한 목표로 민족을 생각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시대일보 이사, 조선일보 사장, 신간회 주역으로 활동했으며, 조선 어학회, 흥업 구락부 등에서도 커다란 활동을 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사회단체와 독립운동, 칼럼 기고 활동을 벌였고, 그 외에도 사학자로서 고적지 답사, 어문 연구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민세는 수필가로서도 폭넓게 활동했다.
안재홍은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대한 청년 외교단을 조직해 상해 임시 정부와 연락하다가 체포되어 3년간 영어 생활을 했다. 1923년 시대일보 이사 겸 논설위원, 조선일보 사장 겸 주필로 활동하면서 송진우, 조만식, 이규완 등과 함께 물산 장려회에도 참여했다. 1925년에는 신간회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다가 8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1936년 다시 임시 정부와 연락을 취하다가 2년간 투옥당했고, 1942년에는 조선 어학회 사건으로 또 1년간 투옥되었다. 이러한 투옥의 연쇄 속에서, 우리는 그가 민족 회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활동을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해방이 되자 민세는 건국 준비 위원회 부위원장과 한성일보사 사장 등을 맡았으며, 1946년에는 여운형, 김규식 등과 함께 좌우 합작 운동 활동 등을 전개했다. 1947년 2월 5일에는 미군정의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 민정장관으로 임명되어 1948년 8월 15일까지 근무했다. 남북 협상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지만 남북 협상 실패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인정, 대한민국 국기 시정 위원회 위원 등으로 참여했다. 1950년 5월 제2대 국회 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국회 의원으로 활동했으나, 6월 25일 한국 전쟁 때 조선 인민군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북되었다. 북한에서 요청한 협조를 그는 거절했고,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납북 이후 안재홍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재북 평통 최고위원으로 활동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 외에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는 1965년 3월 1일 별세했다. 향년 75세였다.
엮은이
유성호(柳成浩)는 1964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해 서울에서 자랐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했고, 지금은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 평론 부문에 당선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동안 대산창작기금,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편운문학상, 시와시학상, 팔봉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내일을 여는 작가≫, ≪문학인≫, ≪작가연구≫, ≪문학수첩≫, ≪대산문화≫ 등의 편집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시작≫, ≪서정시학≫, ≪문학의 오늘≫ 등의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현대시의 형상과 논리≫(1997),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1999), ≪침묵의 파문≫(2002), ≪한국 시의 과잉과 결핍≫(2005), ≪현대시 교육론≫(2006), ≪문학 이야기≫(2007), ≪근대시의 모더니티와 종교적 상상력≫(2008),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2008), ≪정격과 역진의 정형 미학≫(2014), ≪다형 김현승 시 연구≫(2015) 등을, 편저로는 ≪강은교의 시 세계≫(2005), ≪박영준 작품집≫(2008), ≪나의 침실로(외)−이상화≫(2009), ≪박팔양 시선집≫(2009), ≪한하운 전집≫(2010, 공편), ≪김상용 시선≫(2014), ≪김광균 문학전집≫(2014, 공편) 등을 펴냈다.
차례
苦心慘憺한 一平生
民族性과 그의 反映
沙漠으로 向하여 가는 朝鮮人
危險한 속에 살다
戰鼓를 울리면서
아아, 그러나 그대는 朝鮮 사람이다
深化·純化·淨化
人間 價値의 騰落
磨劍乎 讀書乎
凡人과 國士
溫突嘆
過去의 先驅者와 將來의 先驅者
상투 우환
讀書 開進論
나의 警句
나의 人生觀
民族의 恩人·讐人
悲痛! 祖國의 覆沒
髑髏 哲學의 使徒로 되었다
牢獄深深人不到
담배와 亡國恨
春風 千 里
大蓮花 그늘에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吾人은 먼저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왔겠지마는, 와서 보니 어찌할 수 없는 朝鮮 사람이었다. 그는 檀君의 자손을 말할 것까지도 없고, 言語와 風俗을 끌어낼 필요도 없이, 넓은 세계 十六億의 人叢 중에 누구나 저희의 生存과 幸福과 名譽보다 조선 사람의 그것을 존중할, 또 代行할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고로 吾人은 동일한 大宇宙의 아이들로서, 萬民 平和의 高遠한 人類愛를 동경하고 추구하여야 하겠지마는, 결국은 남의 일은 남에게 맡기고 당장에 利害 休戚을 같이하는 조선 사람의 生存을 위하여 일생을 희생할밖에 없는 것이다.
<아아, 그러나 그대는 朝鮮 사람이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