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안함광은 박영희·김기진·임화·김남천·권환·한효·안막·백철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 프롤레타리아문학 계열을 대표하는 특출한 문예이론가다.
그는 1931년 3월 ≪조선일보≫에 <조선 푸로 예술운동의 현세와 혼란된 논단>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이 글은 그가 쓴 최초의 평문으로, 이후 전개될 그의 비평적 방향성을 예고하는 동시에 1930년대 초반 안함광 비평의 형성 과정과 그의 비평적 자의식을 보여 준다. 우익과 좌익, 중간의 절충파가 노출한 1930년 문단의 문제점을 전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글의 궁극적 목적은 당시 구 카프 계열의 실세 박영희와 공개 논쟁을 벌여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프롤레타리아문학 진영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백철과의 ‘농민문학론’과 한효·김남천·임화·김우철·권환 등과의 ‘동반자작가론’ 및 ‘사회주의 리얼리즘론’, 이어지는 ‘민족문학론’ 및 ‘고상한 리얼리즘론’ 등 다양한 논쟁을 벌여 한국 근대 문예비평사의 한 획을 그었다.
1945년 월북한 후에는, 황해도 예술연맹 위원장, 황해도 임시인민위원회 총무부장, 북조선 문예총 조직사업 제1서기장, 임시인민위원회 교육국 문화부장, 민주조선사 대리주필, 북조선 문학동맹 위원장 등 주요 직책을 지내며 북한의 문예이론을 실질적으로 주도했고, 특히 1950년대부터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간행한 ≪조선 문학사≫(1956)는 북한 최초의 문학사로 알려져 있다.
1967년 김일성 주체사상에 반대하다가 숙청당할 때까지, 카프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문예이론과 북한 문학의 교두보를 그의 문학이 직·간접적으로 마련하고 있었다. 1960년대의 북한 문단에서 그가 발표한 ‘천리마 시대’와 ‘혁명적 대작’ 관련 평문들은 현재까지도 북한 문학의 오래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자평
프롤레타리아문학 계열을 대표하는 평론가이자 북한의 문예이론을 주도한 핵심 인물인 안함광의 대표 평론을 엮었다. 농민문학론, 동반자작가론, 사회주의 리얼리즘론, 민족문학론 등 그가 참여한 다양한 논쟁은 한국 근대 문예비평의 큰 성과로 기록된다.
지은이
안함광(安含光)은 1910년 5월 18일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종언(鐘彦). 어린 시절 해주로 이주, 소학교와 해주고보를 졸업하고 1931년 카프(KAPF)의 해주 지부 연극 동맹 ‘연극공장’ 소속으로 활동했다. 동년 3월 ≪조선일보≫에 <조선 푸로 예술운동의 현세와 혼란된 논단>(1931. 3. 19∼29)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전개한다. 이후 <농민문학 문제에 대한 일 고찰>(≪조선일보≫, 1931. 8. 12∼13)을 필두로, 1935년 카프 해산기를 거쳐 해방 공간에 이르기까지 백철, 임화, 김남천, 안막, 현인, 권환, 한효 등과 함께 농민문학론, 동반자작가론, 사회주의적 리얼리즘론 등 일련의 창작 방법 논쟁을 펼쳤다. 1939년에는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하며 정치, 철학, 문학 이론을 학습하다가, 1941년에 귀국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다시 황해도 해주로 돌아와 황해도 예술연맹 위원장을 지낸다. 또한 1946년에는 북조선문예총 제1서기장으로 피선되었고, 임시인민위원회 교육국 문화부장을 겸임한다. 이 무렵부터 북한 문단에서 안함광의 문예 활동은 매우 두드러진다. 특히 민주조선사 대리주필, 북조선문학동맹 위원장 등을 맡으며 오늘날 북한 문학의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1947년에는 ≪민족과 문학≫(6월), ≪문예론≫(7월)을 발표하고, 1950년에는 단행본 ≪문학과 현실≫을 출판한다. 이 과정에서 안막, 한효 등과 함께 그가 제기한 ‘고상한 리얼리즘론’(1947)은 해방기 북한 문학의 종합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요긴하다.
1950년대 한국전쟁 기간 동안 안함광은 종군작가로 활동한다. 전쟁 이후에는 평양사범대 조선 문학 강좌장 및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장/조선 문학 강좌장 등을 역임하며, 1956년에는 북한 최초의 문학사인 ≪조선 문학사≫(대학의 문학 교육용)를 간행한다. 또한 이 무렵 국가훈장 2급/김일성표창장을 수여한다.
북한에서 천리마 시기로 규정되는 1960년대 들어 안함광의 문예 활동은 보다 본격화한다. 특히 이 시기 그는 전 16권으로 간행된 ≪조선 문학사≫ 중, 근대문학사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9권, 10권, 11권(19세기 말∼1945년까지)의 집필을 맡기도 한다. 1966년에는 평론집 ≪문학의 탐구≫를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에서 발간한다.
한편, 1967년부터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체사상이 전 사회적으로 고양된다. 이 시기 김일성 정권은 한국전쟁 직후에 감행하던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다시금 전개하는데, 1967년 5월 김일성 주체사상에 반대하다가 박금철 등과 함께 숙청된 안함광은 그 대표적인 인물로 전해진다. 이후 북한에서 그의 문학적 행적은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82년 5월 72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엮은이
이성천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 ≪중앙일보≫ 평론 부문에 <알리바바의 서사, 혹은 소설의 알리바이>가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 말의 부도(浮圖)≫, ≪위반의 시대와 글쓰기≫, ≪한국 현대소설의 숨결≫, ≪작품으로 읽는 북한 문학의 변화와 전망≫ 등을 출간했다. 2009년 제10회 젊은 평론가상과 2012년 제17회 시와시학 평론상, 2013년 경희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朝鮮 푸로 藝術運動의 現勢와 混亂된 論壇
農民文學 問題에 對한 一考察
農民文學 問題 再論
農民文學의 規定 問題−白鐵 君의 데마를 一蹴한다
創作 方法 問題 再檢討를 爲하야−韓曉 君의 駁文을 읽고
<諷刺文學論> 批判
푸로레타리아 文化와 同伴者文學-그 一般的 特質을 明究함
쏘시알리스틱 레아리즘 提唱 後의 朝鮮 文壇의 趨向
文學에 잇서서의 個性과 普遍性
時代의 特質과 文學의 態度-‘事實’에 臨하는 ‘事實의 精神’
朝鮮 文學의 進路−文學과 生活
민족문화론
민족문학 재론
혁명적 대작에서의 서사시적 화폭
천리마적 현실의 반영과 전형화의 특성
해설
안함광은
엮은이 이성천은
책속으로
우리 藝術運動의 質的 發達은 뿌르조아 機關紙에서가 아니라 우리 藝術을 農村으로! 工塲으로! 가지고 드러가는 데서만 企圖할 수 잇는 것이 事實이나 그러타고 이 命題가 絶對로 氏 等의 過去에 잇서서의 怠慢을 辯護할 性質의 것이 아니라고 筆者는 確信한다.
―<朝鮮 푸로 藝術運動의 現勢와 混亂된 論壇>
農民이나 푸로레타리아-트이나 다 가치 그 終局的 目標에 對한 見解를 同一히 하지 안으면 아니 될 것이고 따라서 農民과 푸로레타리아-트는 그 決定的 모멘트에 잇서서 一致될 歷史的 運命을 가지고 잇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개 同盟者文學인 農民文學도 그러한 意味에 잇서서 終局에는 푸로레타리아文學과 一致되지 아니할 수 업는 것이다.
―<農民文學의 規定 問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