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야간 비행(Vol de nuit)≫은 앙드레 지드의 서문을 붙여 1931년에 출간했으며 페미나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른바 행동주의 작가로 불리는 생텍쥐페리의 대표적인 행동 소설, 혹은 직업 소설로도 평가된다.
항공 산업 초창기, 우편물 수송을 위해 야간에도 비행기를 띄우기 시작했던 때가 배경이다.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 날 새벽 2시 15분에 끝나는 약 8시간 정도의 제한된 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을 다뤘다.
이 소설에서 제시하는 화두는 바로 인간에 대한 성찰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혹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는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탐구되는 철학적·인문학적 명제다. 여러 성자들은 고행·수행이나 명상으로 우주의 진리를 깨달았고, 많은 사상가나 문학가들 또한 나름대로의 명상과 관찰과 기록으로 인간을 탐구해 왔다. 그런데 생텍쥐페리는 교통수단인 비행기를 성찰의 도구로 혹은 명상의 거소로 변용한 점이 특별하다. ≪전시 조종사(Pilote de Guerre)≫에서는 조종사가 입는 비행복에다 여러 부속품을 붙여 놓고 거기에 연결된 산소통의 배선이나, 모든 장치의 배선 등을 마치 어머니의 배와 연결된 탯줄로 비유하면서, “비행기는 나를 양육한다. 이륙하기 전에 비인간적이던 비행기가 지금은 나에게 양분을 먹이고 있으니 나는 이른바 자식으로서 애정을 느낀다”고 묘사한다.
여기서 파일럿 파비앵이 위험을 수반하는 야간에 비행기를 조종하면서도, “명상을 시작했다”고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생텍쥐페리는 하늘과 땅, 별과 달, 폭풍우와 마주하며 우주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비행기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 이 두 개의 우주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실토하던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에서는 더 직설적으로 토로한다.
“우리는 우주적인 척도로서 인간을 판단하며, 마치 연구 기재를 통해 들여다보듯이 비행기 창을 통해 인간을 관찰한다.”
이 우주적인 명상이란 비행 중에 마주치는 죽음의 경계에서 불현듯 깨닫게 되는 인간 성찰이다. 여기서도 작가는 항공사 지배인 리비에르를 통해서 뇌우 속에서도 싸울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위대함이 잠재된 인간성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자신이 취약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바로 그 허물들은 마치 현기증처럼 그 사람을 엄습하기 마련이니, 불행이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내부에서 찾아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빗발치는 적군의 포탄 속에서 전투기를 조종하면서도 계속되는 작가의 인간 탐구는 ≪전시 조종사≫에서 죽음의 성찰로 이어진다. “죽음이란 세상을 새롭게 다시 배열한다”, “육체가 무너질 순간에 인간의 본질이 드러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우선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일련의 사유는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여, 생과 사를 초월한 인간의 영원의 세계를 지향한다.
200자평
≪어린 왕자≫로 유명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작품으로, 파일럿이 본업이었던 작가의 경험이 투영된 직업 소설이다. 비행 중 직면한 죽음의 위기에서 불현듯 마주하게 되는 인간 성찰을 담고 있다. 앙드레 지드가 서문을 써 줬으며 페미나 문학상을 받았다.
지은이
앙투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Roger de Saint-Exupéry)는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사는 곳 인근의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처음 타 본다. 21세에 군에 입대, 스트라스부르 공군기지에서 근무하던 중 군사비행 조종사 면허를 취득한다.
23세에 첫 비행 사고로 예비역 중위로 제대하고, 자동차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하지만 영업 수완이 없자 글쓰기에 전념한다. 25세에 ≪은선≫지 편집장인 장 프레보와, 앙드레 지드를 만나면서 생텍쥐페리의 문학 인생이 시작된다. 26세에 ≪은선≫지 4월호에 ≪남방 우편기≫의 초고가 되는 단편소설 <비행사>를 발표한다.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정비사로 채용되면서, 툴루즈 항로 개척 책임자인 디디에 도라와 함께 정기 항공로 개발에 참여한다.
29세에 ≪남방 우편기≫를 출간하고, 남미 항공로 개척을 위해 아르헨티나 우편 항공사의 지배인이 된다. 30세에 민간항공 봉사 공로로 국가에서 주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39세 나이에 공군 대위로 참전, 알제리 2/33정찰비행대에 합류한다. 40세 때 아라스 상공에서 정찰비행을 하던 중 비행기가 피격되고, 프랑스와 독일의 휴전으로 7월 31일에 제대한다. 비시 정부에서 제안한 관료직을 거절하고, 뉴욕으로 건너간다. 42세 때 ≪전시 조종사≫가 ≪아라스 비행(Flight to Arras)≫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먼저 출간되고 나서 파리에서 출판되지만 독일 점령 당국에 의해 판매 금지된다.
1943년 5월에 연령 제한에 굴하지 않고 알제리 우지다 기지에서 미군 사령관 휘하 2/33정찰비행대에 복귀하고, 정찰비행 중 사고를 두 번 당한 후 예비역에 편입됐다. 1944년, 44세라는 나이에도 상관없이 다시 복직을 간청하여 5회 이상 비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2/33비행대에 복직하였으나 6∼7월 사이에 프랑스 상공 정찰비행을 8회나 나간다. 7월 31일에 마지막으로 허락을 받고 그르노블−이네시 간 정찰비행 임무 수행을 위해 오전 8시 30분 코르시카섬의 보르고 기지를 이륙하지만, 그 후 행방불명됐다. 사망증명서에는 ‘1945년 9월의 법원 판결에 따라 프랑스를 위해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다. 1950년에 프랑스는 생텍쥐페리에게 1939∼1945년 전쟁의 십자무공훈장을 추서한다.
옮긴이
어순아는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생떽쥐뻬리의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프랑스 르아브르 대학에 교환교수로 파견된 바 있다.
주요 논문으로, <생떽쥐뻬리의 작품에 나타난 동심세계>, <생떽쥐빼리 작품에서의 주제 변화에 대한 고찰>, <≪Vol de Nuit≫ 연구>, <≪어린 왕자≫에 나타난 상징성>, <≪인간의 대지≫에 나타난 공간의 이미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 <≪어린 왕자≫에 대한 한국인과 프랑스인의 이해 비교>, <로브그리예의 ≪엿보는 사람≫에 나타난 오브제의 이미지>, <고다르의 <미녀갱 카르멘>에서 현실성과 추상성의 대립 양상> 등이 있다.
저서로는 ≪Lecture facile du français≫, ≪장 뤽 고다르의 영화세계≫(공저), ≪알자스 문화 예술≫(공저), ≪400번의 구타≫(공저), 역서로 ≪모파상의 시칠리아≫, ≪여인들의 학교≫ 등이 있다.
차례
야간 비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제는 기계마저도 반항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행기가 하강할 때마다 엔진이 어찌나 심하게 진동하는지 기체 전체가 성난 듯이 요동쳤다. 파비앵은 조종석에서 자이로스코프를 바라보며 머리를 틀어박고 비행기를 제어하려고 전력을 쏟았다. 천지개벽 때의 암흑처럼 모든 게 뒤섞인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에게 바깥은 더 이상 하늘과 땅덩어리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치를 가리키는 계기판의 바늘이 점점 더 빨리 흔들려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벌써 조종사는 그 계기판에 속아서 악전고투하다가 고도를 잃어버리고 차츰차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고도계를 읽었다. ‘500미터’. 어지간한 야산과 같은 높이였다. 야산들은 현기증이 날 지경으로 파도치며 그를 향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덩어리 하나만 있어도 그를 산산조각 낼 수 있을 지상의 모든 산이, 볼트가 빠져 지반에서 떨어져 나간 듯이 활개 치며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격렬한 춤을 추며 점점 더 죄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비앵은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충돌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아무 데나 착륙하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적어도 야산하고 부딪치는 일만이라도 피하기 위해서 하나 남은 조명탄을 던졌다. 조명탄은 불꽃을 터뜨리고 빙빙 돌다가 어느 평지를 비추고는 꺼졌다. 그곳은 바다였다.
그 순간 생각했다. ‘망했다. 40도나 오차를 잡아 놓았는데도 편류하고 말았으니. 이건 태풍이다. 육지는 어디지?’ 정서(正西)로 방향을 잡고 나서 그는 생각했다. ‘조명탄도 없으니 이제 죽는구나.’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다. 그런데 저 뒤에 있는 동료는… ‘그는 틀림없이 안테나를 접었으리라.’ 하지만 조종사는 더 이상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