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영웅》은 본명을 밝히지 않고 백운산인(白雲山人)이라는 호를 사용한 사람이, 1906년 4월 5일부터 같은 해 8월 29일까지 《대한일보》에 연재하다가 116회를 끝으로 중단한, 국문현토본 한문 소설이다. 여성 주인공 이형경이 영웅의 업적을 이루는 여성 영웅 소설이다.
여성이 장수로 출전해 영웅의 업적을 이루는 과정을 조명한 소설은 개화기 이전 시대의 고전소설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다. 특출난 능력을 지닌 여성 주인공이 남장을 한 채 과거에 응시해 장원으로 급제하고, 높은 벼슬을 지내며 나라 안에서 일어난 난을 평정하는 등 큰 공을 세우지만, ‘여성’이라는 정체가 탄로난 이후에는 결국 남성 인물과 혼인해 가정으로 회귀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여영웅》의 저본이 된 《이형경전》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여영웅》의 이형경은 ‘남성’이라는 기호를 걸침으로써만 비로소 허용될 수 있는 존재인 이전의 여성 영웅들과는 결이 다르다. 이형경은 ‘여성’이라는 정체가 탄로된 이후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혼인이라는 운명을 끝까지 거부한다. 황제의 회유도 옥황상제의 위엄도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이형경의 고집을 꺾지 못하는 것이다.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나아가서는 남성 인물을 월등히 능가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이형경의 이야기는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담고 있다. 이형경의 능력 발휘는 소설의 배경인 중국 내에서의 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해외로까지 이어진다. 해외에 나가 ‘미개의 땅’을 개척해, 불과 10여 년 만에 교육입국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룩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강대한 나라를 건설한다. 부국강병이라는 이루는 첩경이 교육이라는 ‘개화’의 정신을 깨어 있는 ‘여성 지도자’가 단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낡은 가치와 새로운 가치, 무지와 개명이 혼재하던 개화기에 백운산인은 이전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고전소설 《이형경전》을 개작해 자신의 인식 수준 안에서 여성의 교육과 사회 진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비록 그가 그린 ‘개화’는 설익은 것이었지만 《여영웅》은 분명히 꿈틀거리고 있던 새 시대의 정신을 담고 있다.
200자평
백운산인(白雲山人)이라는 호를 사용한 사람이 1906년 《대한일보》에 연재한 국문현토본 한문 소설이다. 낡은 가치와 새로운 가치, 무지와 개명이 혼재하던 개화기에 백운산인은 고전소설 《이형경전》을 개작해 여성의 교육과 사회 진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여성’이라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이형경의 이야기는 아직은 설익었지만 분명하게 꿈틀거리고 있던 ‘개화’라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지은이
백운산인(白雲山人). 개화기에 신문 매체를 통해 작품 활동을 한 인사 중에는 본명 대신 별호를 사용한 사람이 적지 않다. 《여영웅》의 작자인 백운산인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현재 우리에게는 그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정보가 아무 것도 없다.
옮긴이
조용호는 1963년에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출생 신고도 1년 가까이 늦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용인군 강원도라 불릴 정도로 깡촌에서 태어난 관계로, 한국 나이로 아홉 살이 되어서야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태어난 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으며, 1983년에 서강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낯선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1985년에 SK 산하 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한학연수장학생 8기로 선발되어, 3년간 사서삼경을 위주로 한문 공부를 했다. 이 일은 이후의 삶의 향방을 크게 결정하게 된다.
고전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처음에는 고전 시가를 공부해 향가를 해독해 보겠다는 야망(?)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2학년 때 이재선 선생님께서 강의하시던 ‘현대소설론’ 시간에 ‘학교 도서관 고서실에 《조씨삼대록》이라는 40권짜리 소설이 있는데 국내 유일본이고 가치가 크지만 아무도 읽으려는 사람이 없다’는 요지의 말씀을 듣고, ‘그렇다면 나밖에 없겠구나’라는 약간의 의무감과 건방진(?) 생각으로 그 소설 읽기에 도전했다. 약 1년간 고서실에서 책을 빌려서 읽고 정리해 학부 졸업 논문으로 제출했는데, 그것으로 끝내 버리기는 너무나 아까워 좀 더 깊이 분석하고 체계화시켜 석사 학위 논문으로 냈다.
이때쯤 전북대에 계시던 선배인 이종주 선생께 ‘네가 교수가 되고 싶으면 고전 시가로 논문을 쓰는 것이 좋다. 고전 소설을 전공하는 교수들의 연배는 이미 한창때지만, 고전 시가 전공 교수들은 조만간 줄줄이 퇴임을 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이미 기차역을 떠난 기차와 같은 상태이고 온전히 정리하지 못한 아쉬움도 남아서 어쩔 수 없이 삼대록 소설 읽기를 계속했다. 그 결과로 《유씨삼대록》·《임씨삼대록》·《조씨삼대록》을 분석해, 〈삼대록 소설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과정을 수료한 1993년부터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게 되었으며, 한남대·청주대·서강대·중문의대(현 차의과학대)에서 도합 9년 반 동안 강의를 했다. 시간강사를 하는 동안에는 주로 글쓰기와 읽기 과목을 담당했었는데, 이 경험을 통해 읽기와 쓰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아직도 대학교수는 개인적인 연구보다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며, 개인의 내면적 성장과 온전한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전공보다 교양을 더 중시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다.
2002년 9월에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전임으로 임용되어 처음으로 붙박이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국문과에는 고전 문학 전공자가 혼자만 있어서(구비문학 및 민속학 전공자는 따로 있음), 고전 산문·고전 운문·한문학 과목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부담이 되거나 거북하지 않고 성향에 더 맞으며 자유스럽다고 느낀다. 이는 한곳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고전 시가에 관심이 많았고, 한문을 공부했으며, 고전 산문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성싶다. 말하자면 목포대학교는 옮긴이에게 ‘득기소재(得其所哉, 딱 알맞은 자리를 얻었구나!)’의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곳인 셈이다.
대학에서는 교양과정부장과 기초교양교육원장을 역임하면서 교양 교육을 위한 교육 과정의 개발에 노력했으며, 교양과정부에 교양 교육을 전담하는 교수를 둘 수 있도록 관심을 환기해 철학과 심리학 전공 교수를 뽑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교수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대외적으로는 국립 대학의 위상 제고와 교수들의 권익 향상에 노력했고, 대내적으로는 평교수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학교의 행정이 원활하고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견제의 기능을 했으며, 총장추천위원장으로서 총장 선거를 중립적이고도 엄정하게 관리했다.
그동안 《삼대록 소설 연구》 외에 단독 및 공저서를 여러 권 냈고, 《19세기 선비의 의주·금강산 기행》·《남가록》 등의 번역서를 출간했으며, 소설·시가·한문학 등 고전 문학 영역 전반에 관한 수십 편의 논문을 썼다.
차례
첫마디 말(緖言)
제1회 음양이 변하여 으뜸으로 용이 되어 오르고, 거짓 희롱한 것이 진실이 되니 호랑이를 탄 형세와 같다
제2회 무정한 느낌은 뜻을 둘수록 더해 가고, 이치에 맞는 간언은 도에 어긋나기에 거부하다
제3회 이름난 기생이 교태를 보이나 거짓 남자는 무심하고, 적괴의 목이 떨어지니 진실로 여아에게 용맹이 많도다
제4회 안비산에서 귀명부인이 큰 성공을 거두고, 사자동에서 순무어사가 기분 좋은 승전보를 전하다
제5회 개선하는 날에 오운정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고, 시부를 읊던 밤에 백화지로 사은이 내리다
제6회 이 상서는 서번과의 전쟁에 출전하고, 장 각로는 대궐에서 혼사를 의논하다
제7회 청주후는 용문산에서 노닐고, 옥공주는 호선사에게 글을 보내다
원문
緖言
제1회 變陰幻陽魁捷登龍 弄假成眞勢似騎虎
제2회 無情之感有意而漸 合理之諫背道而拒
제3회 名妓獻態假男子無心 賊酋隕首眞女兒多勇
제4회 雁飛山歸命夫人大成功 獅子洞巡撫御史好奏捷
제5회 凱旋日大宴五雲亭 詩賦夜賜落百花池
제6회 李尙書出戰西蕃 張閣老議婚北闕
제7회 靑州候雲遊龍門山 玉公主書送虎禪師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대개 사람의 품성이라는 것은 남녀 사이에 전혀 차별이 없다. 그런데 어찌 영웅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남자에게만 있고 여자에게는 없는 것인가? 여자라도 품성과 기운이 남자보다 더욱 뛰어난 경우가 있으면, 여자 중에도 반드시 영웅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으리라. 여기 이형경(李炯卿)의 일대 사적을 보면, 여자 중의 영웅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풍속에는 오직 남자만을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 여기고 여자는 깊숙한 곳에 감춰진 존재로 여겨, 하늘이 내신 무한한 영웅성을 버려두게 하니 그 한탄스러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썩은 풍속이 한국에까지 흘러들어 와 여자를 사회적으로 버려진 존재라고 여겨, 나라가 진보되고 개명한 데로 나아갈 수 없으니 또한 한탄스러운 일이다. 이에 봄에 피어난 한 줄기 꽃무릇 같은 이형경의 고사를 들어 여자 중에도 영웅이 있음을 드러내 밝히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