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자는 왜 멍청하고 유혹에 약하고 욕심이 많을까? 인어공주의 목소리, 백설공주의 사과,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때문이다. 이야기의 소재를 심층심리학으로 분석해 그 상징적 의미를 밝혀낸다. 인어공주는 왜 목소리를 팔았을까? 백설공주는 왜 사과의 유혹에 넘어갔을까? 신데렐라는 왜 유리구두를 남겨 두었을까? 색다른 관점으로 풀어낸 여자의 진짜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왜 동화인가?
동화는 어른이 되어도 마음속에 남아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마법을 쓰는 여자는 나쁜 여자라든가 못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인식을 만든다. 뿐만 아니다. 동화는 가장 간결한 구성, 반복적 전개,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이루어진 최상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동화를 그저 재미있고 환상적인 이야기로 보지 않고, 그 속에 숨겨진 상징과 은유를 해석하는 ‘삐딱하게 보기’는, 세상의 많은 이치가 동화 속에 녹아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찾아내 보려는 것이다. 상징과 은유의 보물지도인 동화를 통해 지적인 탐험을 떠나보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왜 심리학인가?
심리학은 인간 행동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심리학을 동화 분석에 활용하는 것은 인물의 행동에 담긴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읽어내는 데 심리학적 이론과 기법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심층심리학은 무의식의 심리학으로, 마음 깊숙한 곳에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동화의 일부분보다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를 먼저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부분을 해석하는 방식을 구사한다. 이 책에서는 동화의 소재에 초점을 맞춰 ‘왜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선택되었을까?’를 파헤친다.
왜 여자인가?
많은 사람들이 남자보다는 여자가 주인공인 동화를 쉽게 떠올린다. 이는 동화가 아동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과 속성적으로, 또는 관계적으로 가까운 여성이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많은 편수가 존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이유는 그런 동화가 어떤 작용에 의해 더 깊게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동화의 소재들은 모두 여주인공과 관련된 것이다. 어떤 소재는 여주인공의 성격을 나타내고, 어떤 소재는 그녀의 미래를 암시한다. 그리고 동화가 형성될 당시의 여성에 대한 통념이나 여성의 무의식을 상징하는 도구로서의 역할도 한다. 그러므로 이들 소재가 어떤 의미로 선택되었고,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와 여성의 무의식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탐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책의 내용
인어공주의 목소리-분별과 언어와 지식
마녀는 인어공주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그녀의 혀를 자른다. 이것은 여성의 부정적인 측면, 즉 수다스러움, 변덕스러움, 지나친 가벼움 등에 대한 응징을 의미한다.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잃게 되고, 언어 능력과 지식(앎) 또한 잃어버린다. 『인어공주』의 작가 안데르센은 인간의 분별력을 경계했다. 무언(無言)만이 순수한 영혼으로 회귀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아름답되, 쓸데없이 수다를 떨지 않고 지식이나 권력, 돈 따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여성이야말로 안데르센이 그리려고 했던 순수한 여성상이 아니었을까?
백설공주의 사과-유혹과 죽음과 재생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백설공주. 난쟁이들은 절대로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백설공주는 탐스러운 빨간 사과에 다시 혹하고 만다. 예부터 사과는 인간을 고난과 파멸로 이끄는 유혹의 도구였다. 특히 빨간색은 강력한 유혹의 힘이자 죽음과 재생을 상징한다. 사과를 베어 물기 전까지 백설공주는 유혹에 약한 어리석은 소녀에 불과했다. 하지만 독이 묻은 사과를 먹고, 또 뱉어냄으로써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마침내 진정한 여성으로 성장한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녀성과 신분 상승과 정체성
신발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편 숨기고 싶은 신체기관인 발을 감싸준다. 이 때문에 발과 신발은 오래전부터 성적인 결합을 뜻했고 흔히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물로 쓰였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고 무도회에 간다. 깨지기 쉽고 반짝이며 투명한 유리구두. 이것이야말로 신데렐라의 처녀성, 신분 상승의 욕구,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의지를 나타내기에 더없이 딱 맞는 소재였다. 신데렐라는 유리구두에 모든 것을 걸었다. 자신을 보여줬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
지은이
박규상
감성적 논리를 지닌 오타쿠. 콘텐츠를 사랑하는 심리학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학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東京)대학에서 사회정보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삼성생명, 삼성금융연구소, 시니어커뮤니케이션에서 근무했으며, 홍익대학교와 가천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과 마케팅, 조사방법론 등을 가르쳤다. 저서로는 『15분 발표 심리』, 『여자가 모르는 여자의 마음』, 『행복한 사람은 쇼핑을 하지 않는다』, 『디지털 사회의 편성원리-일본어』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노인이 말하지 않는 것들』, 『시니어 마케팅』, 『치매와 마주하기』 등이 있다. 현재 가천대학교 초빙교수와 LVI교육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스토리가 살아있는 유쾌한 인문학, 창의와 감성, 비주얼 씽킹에 대한 강의와 함께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차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어공주는 왜 목소리를 팔았을까?
백설공주는 왜 사과의 유혹에 넘어갔을까?
신데렐라는 왜 유리구두를 남겨 두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고문헌
책속으로
동화의 세계에서도 여성은 될 수 있으면 말을 하지 않을수록 좋다는 이미지가 보편적입니다. 안데르센 동화뿐만 아니라 잘 알려진 그림 형제나 페로의 동화를 보면 직접적인 대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여성은 대부분 마녀나 악녀들입니다. 그녀들은 말도 많고 거친 단어를 써가며 주인공을 괴롭힙니다. 가련한 여주인공들이 직접 말을 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_ “인어공주는 왜 목소리를 팔았을까?” 중에서
왕비와 백설공주는 둘 다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완성시키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유혹의 도구로 무엇이 좋을지를 왕비는 잘 알고 있었고, 백설공주는 쉽게 유혹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세 번째 살인 도구로 사과가 등장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레이스 끈과 머리빗의 미용과 관련된 기능은 쉽게 이해가 되는데, 갑자기 먹을거리인 사과라니!
_ “백설공주는 왜 사과의 유혹에 넘어갔을까?” 중에서
페로는 구두가 여성을 의미하고 결혼의 매개물이라는 상징성이 있다면, 이는 아주 잘 다루어야 하는 것, 조심해야 하는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당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렇지만, 페로가 다른 동화 끝에 붙인 교훈만 보아도 여성은 조신하게 처신하고 자신의 여성성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페로가 유리구두가 아니라 그냥 털신으로 이야기를 썼다면, 이런 의도가 잘 전달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_ “신데렐라는 왜 유리구두를 남겨 두었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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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0년 5월 8일 출판 새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