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척독, 지극히 짧은 편지
이 책은 《연암집》 제5권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 척독(尺牘)〉에 수록된 작품들로, 연암 박지원의 나이 35세 때인 1772년 10월에 엮은 것들이다. 서문에서 친지와 벗들에게 썼던 이전 편지의 부본(副本)을 모아 소집(小集)을 만들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실제 척독의 작성 시기는 1772년 이전으로 보인다.
척독이란, 종래 학계에서 문예성을 가진 극히 짧은 편지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척독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소통을 위한 사적으로 주고받는 편지라는 점에서 실용문이지만 동시에 문학 예술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척독은 서(書)에 비해 비교적 짧으며, 서(書)가 도식적인 틀에 갇혀 있다면 척독은 문예적 미와 예술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다르다.
척독, 보다 문예 취향적인 편지
〈영대정잉묵 척독〉의 서문을 보면, 당대 문사들은 편지글을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삼가 말씀드립니다(右謹陳)’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 때문이라고 했다. 연암은 편지가 상투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붓을 잡은 사람들이 간행한 책을 보면 모두가 맛없는 음식을 가득 펼쳐 놓은 것처럼 장황하게 늘어놓기만 했을 뿐인데, 무엇 때문에 굳이 공문서의 서두에 사용하는 말이나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말에 상심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지적했다. 연암의 척독은 보다 문예 취향적인 편지로, 간찰(簡札)과 서(書)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다. 척독은 의도를 가지고 창작하는 문예적 글쓰기로 온갖 문예적 장치나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중의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일반적인 편지는 문예적인 작품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척독, 가장 솔직한 글
연암은 문학, 예술, 취향 등 다양한 주제로 척독을 썼는데, 이 짧은 편지글에는 상대에 대한 그리움과 정서적인 감동, 충고와 격려, 작문에 대한 견해 등 연암의 솔직한 감정과 사상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연암의 척독은 자서를 제외하면 총 50편으로, 연암의 교유 관계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쾌하고 함축적이면서도 절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연암 특유의 참신한 문체도 맛볼 수 있다.
200자평
연암 박지원이 쓴 척독을 소개한다. “척독”이란 길이가 매우 짧은 편지글의 일종이다. 일반적인 편지에 해당하는 “서(書)”와는 달리, 형식과 예의를 갖추지 않고 친한 이들에게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에, 연암의 가장 내밀한 면모가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우리말에 맞는 창의적 글쓰기에 대한 연암의 생각을 살필 수 있다. 틀에 갇힌 도식에서 벗어나 때로는 신랄하게, 때로는 재치 있게 던지는 연암 특유의 참신하고도 예리한 표현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지은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737년 2월 5일(1세)에 반남(潘南) 박씨 아버지 사유(師愈)와 어머니 함평(咸平) 이씨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한양 서쪽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태어났다. 자는 중미(仲美)ㆍ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ㆍ연상(煙湘)이다. 어려서부터 글 솜씨가 뛰어났으나 17세 무렵부터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학문에 매진했으나 과거에는 뜻을 보이지 않았다.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등과 깊은 교우를 맺었고 박제가, 이서구 등을 제자로 삼아 북학론을 주장했다. 1780년 삼종형인 박명원을 따라 북경에 다녀와서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지었다. 1786년, 50세의 나이에 친구 유언호의 천거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안의현감(安義縣監) 등을 역임했다. 1793년 정조에게 문체반정의 주동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1805년 가회방(嘉會坊) 재동(齋洞) 집의 사랑에서 사망했고 1900년 김택영(金澤榮)이 편찬한 《연암집》이 간행되었으며, 1901년에는 김택영이 편찬한 《연암속집》이 간행되었다.
옮긴이
박상수(朴相水)는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사편찬위원회, 온지서당, 중국 어언문화대학교 등에서 한문과 고문서, 초서와 중국어를 공부했고, 단국대학교 한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 단국대학교 강사, 한국한문학회 출판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전통문화연구회, 고전번역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 구초회에서 한문 번역과 탈초·강의를 하고 있다.
번역서와 탈초 자료로, 《간찰(簡札) 선비의 일상》, 《고시문집(古詩文集)》, 《구소수간(歐蘇手簡)》, 《다천유고(茶泉遺稿)》, 《동국명현유묵(東國名賢遺墨)》, 《동작금석문집(銅雀金石文集)》, 《류성룡, 전란(戰亂)을 헤치며》, 《문장의 법칙》, 《미국 와이즈만 미술관 한국 문화재 도록》, 《방산유고(芳山遺稿)》, 《붓 끝에 담긴 향기(香氣)》, 《사문수간(師門手簡)》, 《사상세고(沙上世稿)》, 《서포일기(西浦日記)》, 《습재집(習齋集)》, 《신식 비문척독(備門尺牘)》, 《심원권 일기》 1∼3, 《아언각비(雅言覺非)》, 《오가보첩(吾家寶帖)》, 《왕양명 집안 편지》, 《율곡 친필 격몽요결》, 《조선 말 사대부 27인의 편지, 우경 안정구 선생 간찰집》, 《주자, 스승 이통과 학문을 논하다》, 《중국의 음식디미방, 수원식단》, 《초간독(草簡牘)》, 《퇴계 편지 백 편》, 《한문 독해 첩경 문학편》, 《한문 독해 첩경 사학편》, 《한문 독해 첩경 철학편》, 《항전척독(杭傳尺牘)》, 《허균 척독(許筠尺牘)》 등 다수가 있다.
차례
자서(自序)
경지(京之)에게 보내는 답장
경지에게 보내는 답장[두 번째]
경지에게 보내는 답장[세 번째]
중일(中一)에게 보내는 편지
중일에게 보내는 편지[두 번째]
중일에게 보내는 편지[세 번째]
창애(蒼厓)에게 보내는 답장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두 번째]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세 번째]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네 번째]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다섯 번째]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여섯 번째]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일곱 번째]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여덟 번째]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아홉 번째]
설초(雪蕉)에게 보내는 편지
치규(穉圭)에게 보내는 편지
중관(仲觀)에게 보내는 편지
어떤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중옥(仲玉)에게 답하다
중옥에게 답하다[두 번째]
중옥에게 답하다[세 번째]
중옥에게 답하다[네 번째]
북쪽 이웃의 과거 급제를 축하하다
사강(士剛)에게 보내는 답장
영재(泠齋)에게 보내는 답장
영재에게 보내는 답장[두 번째]
아무개에게 보내는 답장
성지(誠之)에게 보내는 편지
석치(石癡)에게 보내는 편지
석치(石癡)에게 보내는 편지[두 번째]
석치에게 보내는 편지[세 번째]
석치에게 보내는 편지[네 번째]
어떤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아무개에게 보내는 편지
아무개에게 보내는 편지[두 번째]
군수(君受)에게 보내는 답장
중존(仲存)에게 보내는 편지
경보(敬甫)에게 보내는 편지
경보에게 보내는 편지[두 번째]
원심재(遠心齋)에게 보내는 편지
초책(楚幘)에게 보내는 편지
성백(成伯)에게 보내는 편지
성백에게 보내는 편지[두 번째]
종형(從兄)에게 올리는 편지
종형에게 올리는 편지[두 번째]
대호(大瓠)에게 보내는 답장
대호에게 보내는 답장[두 번째]
대호에게 보내는 답장[세 번째]
담헌(湛軒)에게 보내는 답장
해설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경지에게 보내는 답장[두 번째]
정밀하고 부지런히 글 읽을 사람으로 포희씨(庖犧氏)와 비교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그의 정신과 태도는 우주에까지 펼쳐져 있고 만물에 흩어져 있지만, 이는 다만 문자나 글로 표현되지 않는 문장입니다.
후세에 부지런히 글을 읽는 사람들은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바싹 마른 먹과 낡은 종이 사이에서 시력을 다해 그 속에 있는 좀의 오줌이나 쥐똥을 찾아 모으고 있으니, 이는 이른바 ‘술을 마시면서 도리어 취해 죽을 것 같다’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어떻게 애처롭지 않겠습니까?
저 허공을 날며 우는 새는 얼마나 생기발랄합니까? 그런데 적막하게 ‘조(鳥)’라는 한 글자로 사물을 뭉뚱그려 표현한다면 본래의 색깔도 사라져 버리고 모양이나 소리도 흩어져 버리고 맙니다. 이는 모임에 가는 시골 늙은이의 지팡이 끝에 새겨진 비둘기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상투적으로 사용하던 말이 싫어서 부드럽고 청아한 소리가 나는 글자로 변화를 주려고 ‘금(禽)’ 자로 바꾸는 경우도 더러 있기도 하지만, 이런 짓은 글을 읽고 문장을 짓는 사람들의 병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이 우거진 뜰에 철 따라 우는 새가 재잘대고 이어, 부채를 들어 책상을 두드리며 마구 소리 질러,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울고 화답하는’ 글이다. 다섯 가지 다양한 색깔의 문장이라고 한다면 문장 중에 이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 오늘 나는 제대로 글을 읽었다”라고 했습니다.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일곱 번째]
그대는 짐을 풀고 안장을 내리십시오. 내일은 비가 올 것 같습니다. 샘물 소리가 울리고 물비린내가 나며, 섬돌에 개미가 떼로 몰려오고 학이 울면서 북으로 날아가며, 연기는 땅에 깔려 치닫고 별똥은 서쪽으로 흐르며 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옵니다.
중옥(仲玉)에게 답하다
귓속말은 애초에 듣지 말고, 누설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이 알까 두려운 말을 무엇 하러 말하며 무엇 하러 듣는단 말입니까? 이미 말을 해 놓고 다시 누설하지 말기를 경계하는 것은 상대방을 의심하는 것이고, 상대방을 의심하면서도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초책(楚幘)에게 보내는 편지
그대는 신령한 지각과 기민한 깨달음이 있다고 해서 남에게 교만하거나 다른 사람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저들에게 만약 한 부분의 신령한 깨달음이 있다면 어찌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만약 저들에게 신령한 지각이 없다면 교만하고 업신여긴들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냄새나는 가죽 자루 속에 몇 개의 문자를 터득한 것이 남들보다 조금 많은 데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니 저 나무에서 매미가 울고 굴속에서 지렁이가 우는 것도 시를 읊고 책을 읽는 소리가 아님을 어찌 알겠습니까?
종형(從兄)에게 올리는 편지
사람들이 혹독한 더위와 모진 추위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옷을 벗어 부채질해도 불꽃같은 더위를 견디지 못하면 더욱 덥기만 하고, 화롯불을 쪼이거나 털배자를 입어도 추위를 견디지 못하면 더욱 춥기만 하니, 독서에 몰두하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가슴속에서 추위와 더위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