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덕망과 공로와 문장과 절개 중에서 하나만 얻어도 어진 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물며 그것들을 한 몸에 겸하였음에랴.” 《홍재전서(弘齋全書)》
이항복(李恒福, 1556∼1618)에 대한 정조(正祖)의 평가다. 이항복은 인재 등용에 있어 청탁과 뇌물이 관행이던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공도(公道)를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면서도 매사 도량이 크고 관대했다. 그러니 ‘덕망’이 높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종사(宗社)를 회복하고 나라를 중흥시키는 일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호종공신(扈從功臣) 일등에 봉해졌다. ‘공로’에서도 최고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항복의 문집 《백사진(白沙集)》을 살펴보면 그가 ‘문장’에서도 일가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절개’는 또한 인목대비 폐모 반대 상소인 〈정사헌의(丁巳獻議)〉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항복은 덕망과 공업, 문장과 절개로 이름을 떨친 당대 최고의 재상이었던 것이다.
이항복은 호방한 성격과 해학으로 좌중을 사로잡을 줄 알았던 해학의 달인이기도 했다. 그의 지인들이 지은 각종 제문이나 시에서 이항복을 수식하는 말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말은 ‘호(豪)’, 즉 호방함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공사석에서 늘 해학을 즐겼으며 때로는 그 해학이 당대 정치판에 대한 풍자로 나아가기도 했다. 이항복이 오랜 시간 동안 각종 문헌과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랑을 받았던 것은 덕망과 공업, 문장과 절개로 이름을 떨쳤던 조선 최고의 재상이었던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던 호방한 면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항복 이야기는 《백사집》을 비롯해 《어우야담》, 《송천필담》, 《기문총화》, 《계압만록》, 《실사총담》 등 40여 개의 문헌에 총 177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역사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문헌 설화 가운데 가장 많은 수에 해당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도 만만치 않아 그 수가 170~180편에 달한다. 이항복의 이야기는 1920년대 후반에 주요 설화를 모아 이야기책으로 간행되기에 이른다. 회동서관의 《오성기담》, 신구서림의 《한음과 오성실기》, 문광서림과 세창서관의 《오성과 한음》이 그것이다. 긴 세월 동안 사랑 받으며 전해지던 그의 이야기가 최초로 근대적인 출판물로 공간된 것이다.
이 책에는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는 문광서림의 《오성과 한음》과 회동서관의 《오성기담》을 담고 있다. 허구와 사실의 결합을 통해 이항복의 일생을 총체적으로 보여 주고자 했던 《오성과 한음》. 이항복의 인간상 가운데 해학과 지모를 부각하는 《오성기담》. 두 작품을 함께 살펴보면 이항복의 생애는 물론, ‘이항복 이야기’의 총체적 면모를 핍진하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오성 이항복. 임진왜란 때 종사(宗社)를 회복하고 나라를 중흥시키는 일에 큰 공을 세워 높은 벼슬을 지냈음에도,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 덕망과 공업 모두에서 이름을 떨쳤다. 오랜 세월 수많은 문헌과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승되던 그의 이야기는 1920년대 여러 이야기책으로 묶이며 당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는 〈오성과 한음〉, 〈오성기담〉을 소개한다. 사실과 허구를 교직해 만든 ‘팩션’을 통해 조선 최고의 재상 이항복의 생애와 인간상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
차충환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하고 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판소리 이본 전집, 판소리 작품 교주서, 《판소리문화사전》 발간 작업을 공동으로 했고, 단독으로 쓴 책으로는 《숙향전 연구》(1999), 《한국고전소설작품연구》(2004), 《한국 고소설의 새 지평》(2016), 《고소설의 개작과 신작》(2021) 등이 있다. 현재는 국외 소재 한국 고소설, 조선 시대 인물 전기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차례
오성과 한음
오성기담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아버지, 왜 나를 속였소? 담 밖에 벽도화 꽃이 벌써 두 번이나 떨어졌는데 어찌 이제야 오셨습니까? 나는 한번 잠결에 아버지를 뵙고 아침에 일어나 찾으니 없습디다.”
하며 두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하고는 다시 말이 없다. 오성은 그 머리를 쓰다듬으며,
“처음에는 네가 장난만 하고 글은 원수로 알기에 내가 오지 않았고, 한 번은 네가 글을 읽나 안 읽나 보려고 밤중에 잠깐 다녀갔고, 요사이는 아마 잘 읽을 듯하기에 내가 돌아왔다.”
정남은 손등으로 눈물을 씻으며,
“나는 대고모께 말씀을 들으니까 아버지도 어렸을 적에 글은 원수로 알고 장난만 하셨다 하기에 나도 아버지 하시던 대로 하였습니다.”
오성은 어이가 없어 한번 웃고 말았다. 오늘날 이와 같이 가정이 화락하니 잠시나마 풍진 속에서 겪었던 노독을 잊을 만했다.
<오성과 한음>
그때는 여름이라. 마침 큰비가 쏟아져서 개천물과 강물이 넘쳐흘러 사람이 통행하지 못하므로 부고를 가져간 사람이 미처 오성 댁에 도달치 못하였는데, 오성은 무슨 수로 알았는지 집안사람에게 분부하여 한음 상공의 염습을 하러 갈 터이니 행장을 수습하라 하여 비를 무릅쓰고 길을 떠나 힘을 다하여 물을 건너 이틀 만에 한음의 상가에 도달하였다. 상가에 있는 사람들은 부고 전하는 사람이 오성 댁에 도달하지 못하였을 줄 아는 고로 민망히 여기는 중인데, 오성이 행차하심을 보고 십분 다행히 여기며 모두 나와 문안하며,
“우리 댁 대감께서 유언이 계시와 염습을 하지 못하고 대감께 사람을 보내었으나 비와 물에 막혀 분명 들어가지 못하였을 터이온데, 대감께서 어찌 아시고 행차하셨나이까?”
하고, 한음의 신체가 있는 방을 열고 수의를 가져다 놓는다. 오성이 한음의 신체 곁에 나아가 살펴보니, 운명한 지가 이틀이요 삼복더위로되, 조금도 냄새가 없고 가만히 누워서 자는 모양 같았으나, 다만 눈을 감지 않았다. 오성은 한음의 신체를 어루만지며,
“명보야. 내가 뒤를 이어 상소하지 않았던 것은 목숨을 아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다음 일을 기다린 것이니, 명보는 나의 마음을 아는 바에 어찌 이처럼 경계하는가?”
그 말이 끊어지자 한음은 눈을 감았으니…
<오성기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