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원나라를 대표하는 문학
산곡은 원나라(1271∼1368) 때 등장한 노래 가사로, 당시 가장 많이 지어지고 사랑받은 형식이다. 송대에 유행한 노래 가사 형식인 ‘사(詞)’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북방의 음악을 기반으로 발전했고, 사보다도 더 자유롭고 통속적이었으며 명청대까지 꾸준히 지어지면서 사랑받았다. 원대 이래 800여 년간 많은 작품이 산실되었지만 약 2만 수 정도가 전한다.
송대의 사(詞)와 마찬가지로 산곡은 노래 가사인 만큼, 한 구의 글자 수, 멜로디와 리듬, 소리의 높낮이, 라임 등의 규칙이 모두 정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산곡은 내용을 밝힌 제목 외에 어느 곡조에 맞춰서 불러야 하는지를 밝힌 곡조의 제목 ‘곡패(曲牌)’를 반드시 밝히고 있다.
가장 솔직하고 거침없는 문학
은유와 상징, 함축이 묘미인 시와 달리, 산곡은 감정을 직설적으로 쏟아 낸다. 같은 노래 가사인 사(詞)에 비해서도 더 통속적이고 재기발랄하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울부짖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미우면 밉다고 소리치며, 괴로우면 괴롭다고 숨김없이 말하는 등, 표현도 거리낌이 없다. 부패와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를 대놓고 비판하고 세상을 마음껏 조롱하며 황제와 성현, 자신까지도 희화화한다. 인생도 역사도 모두 덧없다고 한탄하기도 하고 사랑의 설렘과 그리움, 봄을 잃은 슬픔, 규방의 눈물, 나그네 설움, 신세타령을 늘어놓기도 한다. 거기에 기방의 모습이나 저잣거리의 자질구레한 일들부터 기이한 사람들의 모습, 은일의 소망과 기쁨까지, 안 다루는 제재가 없어 중국 시가사상 가장 광범위한 내용을 다룬다고 칭해진다.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다
이는 원나라라는 시대 특성에서 기인한다. 문인 사대부가 지배 계층이었던 당송대와는 달리, 이민족인 몽고족이 지배한 원나라에서 한족 지식인의 지위는 ‘8계급인 창기와 10계급인 거지 사이’라고 자조할 정도로 낮았다. 소수의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서회(書會)라는 작가 조직에 속해 글을 팔아 먹고살았다. 사회의 밑바닥까지 추락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본 경험, 명예도 권력도 없이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다양한 계층, 특히 하층민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경험은 원대의 산곡과 희곡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송대를 거치며 형성된 독서인 계층의 자부심이 무의미해지고 주변인적 삶을 살아야 했던 작가들은 가장 낮은 곳에 처해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에 대해 갈등하며 내적·외적 탐색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표현했던 것이다. 작가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거나 삐딱한 반골 기질을 거침없이 표현하기도 했으며 세상을 향해 분노하거나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숨거나 세상을 조롱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현재까지 집록된 산곡은 1964년 중화수쥐(中華書局)에서 나온 ≪전원산곡(全元散曲)≫에 따르면 독립된 짧은 노래인 소령(小令) 3853수, 여러 곡으로 구성된 모음곡 (套數) 457편에 약간의 잔곡이 있다. ≪원대 산곡선집≫에는 그중 원대 대표 작가들의 가장 많이 알려진 노래 103수를 소개한다. 작품은 주제별로 묶어 다양한 내용을 감상할 수 있다. 옮긴이 하경심 교수는 작품 해설과 주석으로 각 작품의 특징과 작가, 작품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 이 책은 2023년 세종 교양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200자평
저잣거리로 내려온 시인, 세상 모든 것을 노래하다
원나라 때 유행한 노래 가사 산곡 103수를 국내 처음으로 소개한다. 이민족의 통치로 관직에서 내려와 민중 속으로 들어간 지식 문인들은 겉치레와 점잔을 벗어버리고 소박한 민중의 희로애락을 솔직한 언어로 꾸밈없이 노래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을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조롱하며, 때로는 한탄하며 읊은 이 노래들은 오늘날 우리 가슴에도 손쉽게 스며든다.
지은이
관한경(關漢卿, 1234 이전∼1300 전후)은 자가 한경(漢卿), 호는 이재수(已齋叟), 또는 기재수(己齋叟)·이재(已齋)·일재(一齋)로, ≪녹귀부(錄鬼簿)≫에 따르면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 사람이며 태의원윤(太醫院尹 : 의사와 관련 있는 곳으로 보임) 출신이다. 원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산곡가로, 당시 ‘연극계의 영수, 작가들의 우두머리, 잡극의 대가(驅梨園領袖, 總編修帥首, 捻雜劇班頭)’[종사성(鍾嗣成)]로 평가되었으며 ‘거리낌 없는 성격에 박학다식하고 해학과 풍류가 당시에 으뜸이었다(生而倜儻, 博學能文. 滑稽多智, 蘊藉風流, 爲一時之冠)’[웅몽상(熊夢祥)]고 전한다. 벼슬에는 뜻이 없었고 ‘직접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고 하며 전문 희곡인으로서 희곡 작가들, 주렴수를 비롯한 예인들과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옥경서회(玉京書會)에 속해 활동하면서 원대 극작가 중 가장 많은 수인 잡극 60여 편을 지었고 남송 멸망 후에는 항주(杭州)·양주(揚州) 등지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잡극 60여 편 중 <두아원(竇娥冤)>·<호접몽(蝴蝶夢)>·<구풍진(救風塵)>·<망강정(望江亭)>·<단도회(單刀會)> 등 약 16편이 전하는데 특히 <두아원>은 원대의 어두운 사회 현실을 폭로한 비극으로 중국 고전 희곡의 대표작이다. 산곡은 소령 50여 수와 투수 13편을 남겼으며 주로 남녀의 연정과 이별의 정서, 나그네 생활과 자신의 신세 등을 읊었다.
옮긴이
하경심(河炅心)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중국 고전 희곡을 전공했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맹칭순(孟稱舜) ≪교홍기(嬌紅記)≫의 비극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는 ≪중국 연극사≫(학고방), ≪두아 이야기/악한 노재랑≫(지식을만드는지식), ≪전한 희곡선≫(학고방), ≪조우 희곡선≫(학고방), ≪부득이≫(일조각), ≪송대의 사≫(학고방), ≪펑쯔카이 만화 고시사≫(일조각)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무대 위의 건괵 영웅−중국 전통극 중 여성 영웅 형상의 탄생과 변용>, <중국 전통극 제재의 변용에 관한 일고−혼변고사를 중심으로>, <마치원의 산곡 투수 소고>, <원대 ‘조소’ 산곡 소고> 등이 있다.
차례
1.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원망
[쌍조(雙調)·보보교(步步嬌)] 기원하노니(祝願)
[쌍조(雙調)·득승락(得勝樂)] 붉은 해 기울고
[남려(南呂)·사괴옥(四塊玉)] 그대를 보내며(別情)
[쌍조(雙調)·대덕가(大德歌)] 봄은 왔건만(春)
[쌍조(雙調)·대덕가(大德歌)] 가을밤(秋)
[쌍조(雙調)·침취동풍(沉醉東風)] 이별 장면
[월조(越調)·빙란인(凭闌人)] 첫눈에 반했네
[월조(越調)·빙란인(凭闌人)] 부칠까 말까(寄征衣)
[쌍조(雙調)·수양곡(壽陽曲)] 주렴수를 보내며(別珠簾秀)
[쌍조(雙調)·수양곡(壽陽曲)] 노소재에게 답하다(答盧疏齋)
[쌍조(雙調)·수양곡(壽陽曲)] 야속한 사람
[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서릉의 이별(西陵送別)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누가 내 꿈을 망쳤나(閨思)
[쌍조(雙調)·섬궁곡(蟾宮曲)] 이제야 알 듯한데(春情)
[월조(越調)·빙란인(凭闌人)] 봄의 상심(春愁)
[쌍조(雙調)·청강인(淸江引)] 그리움의 빚(相思)
[중려(中呂)·홍수혜(紅綉鞋)] 조금만 더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기녀의 원망(妓怨)
[선려(仙呂)·일반아(一半兒)] 기다리는 마음
[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그리움(相思)
[남려(南呂)·사괴옥(四塊玉)] 천생연분(風情)
[중려(中呂)·분접아(粉蝶兒)] <기녀에게(贈妓)> 중에서
[쌍조(雙調)·섬궁곡(蟾宮曲)] 서상 이야기
[중려(中呂)·조천자(朝天子)] 약속(赴約)
[쌍조(雙調)·수선자(水仙子)] 세 가지 괴로움(相思)
[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정이란(題情)
[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이별이란(憶別)
[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그렇게 다정하더니(憶別)
[정궁(正宮)·새홍추(塞鴻秋)] 달 같은 내 사랑
[중려(中呂)·홍수혜(紅綉鞋)] 하나부터 열까지의 이별
[중려(中呂)·홍수혜(紅綉鞋)] 그대 때문에
[쌍조(雙調)·수선자(水仙子)] 사랑하고 배신하고(雜詠)
[정궁(正宮)·새홍추(塞鴻秋)] 떠나는 길(山行警)
2. 고달픈 인생, 한숨과 한탄
[중려(中呂)·양춘곡(陽春曲)] 세상 풍파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흐려도 맑아도(嘆世)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오늘은 젊지만(嘆世)
[월조(越調)·천정사(天淨沙)] 가을 시름(秋思)
[남려(南呂)·금자경(金字經)] 서글퍼라(感憤)
[선려(仙呂)·상화시(賞花時)] 객사의 비(孤館雨留人)
[정궁(正宮)·앵무곡(鸚鵡曲)] 농부는 비를 기다린다(農夫渴雨)
[쌍조(雙調)·침취동풍(沉醉東風)] 깨달음(自悟)
[쌍조(雙調)·수선자(水仙子)] 밤비(夜雨)
[중려(中呂)·양춘곡(陽春曲)] 상인의 아내(閨怨)
[남려(南呂)·사괴옥(四塊玉)] 누에 신세(嘆世)
[쌍조(雙調)·수선자(水仙子)] 이노비에게(贈李奴婢)
[선려(仙呂)·해삼정(解三酲)] 저는 원래
3. 나, 이런 사람이야
[남려(南呂)·일지화(一枝花)] 난 죽지 않아(不伏老)
[쌍조(雙調)·침취동풍(沉醉東風)] 나는 어부(漁夫)
[정궁(正宮)·취태평(醉太平)] 각설이의 후예
[정궁(正宮)·취태평(醉太平)] 가난한 훈장
[정궁(正宮)·녹요편(綠幺遍)] 산림의 장원(自述)
[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나는야 신선(自述)
[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할 줄 아는 게 없소(自述)
4. 피해 살기, 숨어 살기, 취해 살기
[중려(中呂)·양춘곡(陽春曲)] 팔짱 끼고(知幾 1)
[중려(中呂)·양춘곡(陽春曲)] 피해 살기(知幾 4)
[선려(仙呂)·기생초(寄生草)] 취해 보자(飮)
[남려(南呂)·사괴옥(四塊玉)] 한가한 삶(閑適 2)
[남려(南呂)·사괴옥(四塊玉)] 멍청한 건 나(閑適 4)
[쌍조(雙調)·벽옥소(碧玉簫)] 돌아가자
[쌍조(雙調)·발불단(撥不斷)] 국화 필 때
[쌍조(雙調)·야행선(夜行船)] 가을 상념(秋思)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마음이 흡족하면
[쌍조(雙調)·수선자(水仙子)] 진짜 즐거움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나를 다잡다(自警)
[쌍조(雙調)·매화성(賣花聲)] 세상 살아보니(悟世)
[중려(中呂)·만정방(滿庭芳)] 어부의 노래(漁父詞)
[삼봉고성빈(三棒鼓聲頻)] <도연명취귀도>를 보고(題淵明醉歸圖)
[쌍조(雙調)·안아락과득승령(雁兒落過得勝令)] 하나면 되는 인생
[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조용히 살다(隱居)
5. 안타깝다! 역사 유감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굴원은 왜(嘆世 12)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소하의 죄(嘆世 15)
[남려(南呂)·사괴옥(四塊玉)] 마외파에서(馬嵬坡)
[남려(南呂)·일지화(一枝花)] <장종의 행락(詠莊宗行樂)> 중에서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여산에서(驪山懷古)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동관에서(潼關懷古)
[중려(中呂)·매화성(賣花聲)] 옛일을 생각하며(懷古)
[중려(中呂)·만정방(滿庭芳)] 악왕 전기를 읽고(看岳王傳)
[쌍조(雙調)·섬궁곡(蟾宮曲)] 강엄사에서(江淹寺)
[쌍조(雙調)·전전환(殿前歡)] 굴원을 애도하며
[정궁(正宮)·새홍추(塞鴻秋)] 능효대를 지나며(凌歊臺懷古)
6. 비판과 풍자, 조롱
[선려(仙呂)·취중천(醉中天)] 미인 얼굴의 사마귀(佳人臉上黑痣)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공정한 세상이길(嘆世 4)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돈을 쌓아 두고(嘆世 19)
[반섭조(般涉調)·초편(哨遍)] 고조, 고향에 돌아오다(高祖還鄕)
[중려(中呂)·주리곡(朱履曲)] 관리가 되는 건
[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겨울날 소회(冬日寫懷)
[정궁(正宮)·취태평(醉太平)] 누가 돈을 싫어해
[쌍조(雙調)·침취동풍(沉醉東風)] 잠꾸러기 기녀(嘲妓好睡)
[정궁(正宮)·단정호(端正好)] <고 감사께(上高監司)> 중에서
[쌍조(雙調)·수선자(水仙子)] 다 허풍일세(譏時)
[쌍조(雙調)·낙매풍(落梅風)] 눈아!(詠雪)
[중려(中呂)·보천락(普天樂)] 훈장님 말씀(嘲西席)
[중려(中呂)·조천자(朝天子)] 불공평한 세상(志感 1)
[중려(中呂)·조천자(朝天子)] 파란 지폐가 최고(志感 2)
[정궁(正宮)·취태평(醉太平)] 위대한 원나라
[정궁(正宮)·취태평(醉太平)] 벼룩의 간 빼먹기(譏貪小利者)[상조(商調)·오엽아(梧葉兒)] 욕심쟁이(嘲貪漢)
[상조(商調)·오엽아(梧葉兒)] 키 큰 여인(嘲女人身長)
7. 사회 풍속도
[반섭조(般涉調)·사해아(耍孩兒)] 농부가 극장을 몰랐더라(莊家不識构闌)
[반섭조(般涉調)·사해아(耍孩兒)] 말을 빌려 달라니(借馬)
[월조(越調)·채아령(寨兒令)] 기원은 무서워(戒嫖蕩)
[중려(中呂)·양춘곡(陽春曲)] 찻집(贈茶肆)
[중려(中呂)·만정방(滿庭芳)] 미운 기생 어미(刺鴇母)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쌍조(雙調)·청강인(淸江引)] 그리움의 빚(相思)
그리움은 빚이라도 진 듯,
매일같이 재촉이로다.
늘 수심 한 짐 짊어지고,
늘어나는 이자는 갚을 길이 없네.
본전은 그를 만나야 계산할 텐데.
相思有如少債的, 每日相催逼. 常挑着一擔愁, 准不了三分利. 這本錢見他時才算得.
[중려(中呂)·홍수혜(紅綉鞋)] 그대 때문에
나는 그대 때문에 엄마 욕 실컷 먹고,
그대는 나 때문에 일도 집도 팽개치고.
나는 그대 때문에 연지도 안 바르고,
그대는 나 때문에 아내도 버리고,
난 그대 때문에 머리 자르고,
우리 두 사람 똑같이 초췌해졌네.
我爲你吃娘打罵 你爲我棄業抛家. 我爲你胭脂不曾搽, 你爲我休了媳婦, 我爲你剪了頭髮. 咱兩個一般的憔悴煞.
[월조(越調)·천정사(天淨沙)] 가을 시름(秋思)
마른 등나무, 고목, 저녁 까마귀,
작은 다리, 흐르는 물, 인가,
옛길, 서풍, 앙상한 말,
석양은 지는데,
애끊는 이는 세상 끝에 있네.
枯藤老樹昏鴉, 小橋流水人家, 古道西風瘦馬, 夕陽西下, 斷腸人在天涯.
[정궁(正宮)·단정호(端正好)] <고 감사께(上高監司)> 중에서
[곤수구]
작년 모 심을 때
하늘 변화무쌍하더니,
어디 때맞춰 비 내렸나!
가뭄에 온 들판 황폐해졌지.
벼 싹은 안 오르고,
보리는 안 자라니.
만민이 실망,
하루하루 물가는 치솟고.
원래 가격에 3할을 더하고,
잡곡 한 말은 4냥이 깎이니,
처량하기 그지없네.
[당수재]
부자들 양심 없이 사기 치고,
사재기 상인들 부당하게 세상을 속이네.
코끼리도 삼킬 욕심에 나쁜 재주까지.
곡식에 쭉정이 더하고,
쌀에다 겨 섞으면서,
어찌 그 자손 잘되길 바라는가?
[곤수구]
시루에 먼지 나니 노약자들 굶주리고,
쌀이 진주마냥 귀하니 젊은이들 까칠하네.
금은이 있다 한들 어디에 저당 잡히나!
굶주린 배로 가만히 누워 석양을 맞네.
느릅나무 껍질 벗겨 먹고
들풀 골라 맛보니.
황벽 껍질 맛, 곰 발바닥보다 낫고,
궐근 가루로 건량을 대신하네.
별꽃, 고채는 뿌리까지 달이고,
억새 순, 줄기 상추는 이파리까지 삼키니,
남은 건 못 먹을 냇버들, 녹나무뿐.
[滾綉球] 去年時正揷秧, 天反常, 那裏取若時雨降! 旱魃生四野災傷. 穀不登, 麥不長, 因此萬民失望, 一日日物價高漲. 十分料鈔加三倒, 一斗粗粮折四量, 煞是凄凉.
[倘秀才] 殷實戶欺心不良, 停塌戶瞞天不當. 呑象心腸歹伎倆. 穀中添粃屑, 米內揷粗糠, 怎指望他兒孫久長.
[滾綉球] 甑生塵老弱饑, 米如珠少壯荒. 有金銀那裏每典當! 盡枵腹高臥斜陽. 剝楡樹餐, 挑野菜嘗. 吃黃不老勝如熊掌, 蕨根粉以代糇糧. 鵝腸苦菜連根煮, 荻筍蘆萵帶葉噇, 則留下杞柳株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