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맨스필드 파크≫(1813)는 오스틴의 소설들 가운데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은 작품으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켜왔다. 오스틴이 20대 초반에 쓴 ≪분별력과 감수성≫이나 ≪오만과 편견≫, ≪노생거 사원≫과는 달리 이 작품은 10년 이상의 공백이 있은 후 30대 후반에 완성됐고, 넓고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원숙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에마≫, ≪설득≫과 함께 후기 작품으로 분류되지만 이 소설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복합적 성격은 우선 이 소설이 제기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 토머스 버트럼 경의 큰딸 마리아가 결혼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다른 남자와 달아나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장남이 방종한 생활로 파탄에 이르는 소설의 줄거리를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은 전통적인 상류사회의 도덕적 몰락과 신분사회의 와해를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작품의 후반부에서 패니 프라이스가 에드먼드 버트럼과 결혼해서 맨스필드 가문에 영입되는 과정을 통해서 상류 가문의 존속을 위해 새로운 도덕적 힘이 수혈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토머스 경의 자식들의 그릇된 자만심이 결국 자기 파괴를 가져오는 이야기를 통해서 의무와 원칙을 내면화하는 심성 교육의 중요성을 제기하는 측면도 있다. 한편 런던의 부유한 계층 출신으로서 맨스필드의 평온한 삶에 파문을 일으키는 헨리 크로퍼드와 메리 크로퍼드를 통해서 시골의 순수함과 도시의 타락, 혹은 전통적 신분사회와 신흥 상류층의 대립을 문제 삼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또 다른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는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소설을 개작한 퍼트리샤 로제마의 영화 <맨스필드 파크>(1999)는 어린 패니가 처음 맨스필드 파크로 가는 길에 해안에 정박된 배에 실린 노예들의 함성을 듣는 장면이나 토머스 경이 안티구아에서 여자 노예에게 저지른 야만적인 비행을 그린 그림들, 헨리 크로퍼드와 마리아의 정사 장면 등 충격적인 장면들을 삽입해서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 소설이 이러한 상상의 여지를 남길뿐더러 그런 상상들이 어느 정도 심리적인 신빙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이 소설이 함축하고 있는 복잡한 의미를 드러낸다. 당시 노예 매매가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머스 경이 안티구아에 갖고 있는 농원이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유지되는 사탕수수 농장이며 그가 안티구아에 가서 해결하려는 일이 노예들의 폭동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혐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00자평
≪맨스필드 파크≫는 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인 오스틴의 1914년 작품이다.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는 여러 인물들의 애정과 욕망, 갈등이 얽힌 소우주를 제시한다. 메리와 헨리의 과오에 연민을 보낼 것인지, 패니의 소망 충족에 공감할 것인지, 에드먼드 부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을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이 작품은 원문의 약 4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중요한 부분들을 중심으로 발췌, 번역했다.
지은이
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과 어머니 커샌드라 사이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였고, 열두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1795년에는 《엘리너와 메리앤》이라는 첫 장편소설을 완성했는데, 1797년 이 소설은 개작되어 《이성과 감성》으로 재탄생한다. 1796년에는 직접 경험한 사랑의 아픔을 바탕으로 《첫인상》을 집필하였는데, 소설 집필에 소질이 있다고 느낀 그녀의 아버지는 《첫인상》을 한 출판사에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하지만 오스틴은 이후에도 습작과 초기 작품의 개작을 계속했다. 1805년 1월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3년간 형제, 친척, 친구의 집을 전전하다가 아내를 잃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의 권유로 햄프셔 주의 초턴이라는 곳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1811년 《이성과 감성》을 익명으로 출판하였고, 《첫인상》을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하여 1813년에 출판했다. 1814년 《맨스필드 파크》, 1815년에는 《에마》를 출간하여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다음 해 《설득》을 탈고한 이후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 1817년 《샌디션》을 집필하고 있었으나 건강 악화 때문에 중단해야 했고, 작품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같은 해 7월 42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사후에 《노생거 수도원》과 《설득》을 비롯해 개작된 작품이나 생전의 습작품, 편지 등이 출간되었다.
차례
제1부
제2부
제3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결혼이 항상 속는 것은 아니란다.”
“결혼이 특히 그래요. 결혼할 때 속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모든 거래 중에서 결혼이야말로 상대에게 가장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 스스로는 가장 정직하지 않게 처신하는 거래예요.”
“아, 너는 숙모님 댁에서 결혼에 대해 나쁜 교육을 받았어.”
“분명 가엾은 숙모님은 결혼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었어요. 하지만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결혼은 서로 조작하는 일이에요. 어떤 이득이나 상대방의 훌륭한 자질을 믿고 기대하며 결혼해서는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정반대의 상황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보았거든요. 이게 속는 게 아니면 뭐겠어요?”
2.
그는 사랑에 빠져 있었고, 그것도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 사랑은 섬세하기보다는 격정적이고 활동적이며 낙관적인 그의 기질에 영향을 미쳐서, 그는 그녀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그것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면서 기쁨뿐 아니라 영예를 누리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3.
이 문제에 관해서 나는 일부러 시기를 명확히 밝히지 않을 것이다. 극복할 수 없는 열정을 치유하고 변할 수 없는 애정을 옮기는 것은 사람마다 시간차가 있을 터이므로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나름대로 시기를 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가 사람들에게 간청하는 바는,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울 때, 그리고 일주일도 더 이르지 않은 때에, 에드먼드는 크로퍼드 양을 좋아하기를 그만두었고, 패니가 원하는 만큼이나 패니와 결혼하기를 열망했다고 믿어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