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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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만필(西浦漫筆)≫은 1687년(숙종 13년) 선천(宣川) 유배 이후인 말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서포만필≫에는 주자주의를 견지하면서도 주자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보여주는 글들이 담겨 있다. 또한 김만중의 사상적 편력과 박학한 지식을 알려주는 여러 가지 기사들이 엿보이며, 불가(佛家)·유가(儒家)·도가(道家)·산수(算數)·율려(律呂)·천문(天文)·지리(地理) 등 구류(九流)의 학에 대한 견해도 살펴볼 수 있다.
주자주의적 문화관에 대한 비판
당시의 문화관은 주자주의적 문화관, 즉 , 중국 중심주의에 입각한 문화관으로서 ‘화이론(華夷論)’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만중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하나는 주자의 오류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또 하나는 국어문학의 독자성과 가치를 인정함으로써다. 김만중은 주자의 문화관이 변방 나라의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폭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화이론’에 타격을 주었다. 그 예로, 인도의 불경이 중국의 고전인 ≪열자≫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고 본 것이라든가, 중국인의 시에만 각운이 등장한다고 오해한 것을 지적한다. 또 같은 맥락에서 송강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과 <전후사미인곡(前後思美人曲)> 같은 가사 작품이 중국의 <이소>와 맞먹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은 중국의 문학만이 가치 있다는 통념을 거부하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주자주의적 문학관에 대한 비판
당대의 문학관 역시 주자주의적 문학관이었다. 당대에는 문학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른바 ‘재도론(載道論)’이라 하여, 문학은 철학이나 사상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김만중은 문학 자체의 독립적인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백사 이항복의 시조가 광해군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일화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또 역사책인 ≪삼국지≫를 읽을 때와는 달리, 소설 ≪삼국지연의≫를 읽을 때면, 주인공인 유비가 패배할 때는 함께 슬퍼하고, 그 적대자인 조조가 패배할 때는 쾌재를 부른다면서, 문학인 소설이 독자적인 감동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논증했다. 이와 같이 문학을 역사나 철학의 수단으로 여기던 통념이 지배하던 그 시대에, 김만중은 문학의 자율성, 독자성을 적극 주장함으로써 문학관의 진보를 자극했다.
200자평
국문 소설인 ≪사씨남정기≫, ≪구운몽≫을 쓴 김만중의 수필 비평집. 김만중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책으로 꼽힌다. 이 책은 대부분 시와 관련한 이야기 및 비평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소설, 산문과 관련한 것들도 있다. 주자주의를 견지하면서도, 주자주의적 문화관과 문학관을 비판했으며 우리말로 이루어진 국어문학의 독자성과 의의를 주장했다. 김만중의 선진적이고도 주체적인 견해는 문학관의 진보를 도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은이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정치가이며 문인이다. 아버지 익겸은 일찍이 정축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윤씨한테서 형 만기와 함께 자상하고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어머니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직접 아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만중은 형 만기와 함께 오직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윤씨 부인은 두 형제가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김만중은 16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9세에 문과에 장원급제를 한 이래 정계에 진출하여 대사간·대사성·대사헌·예조판서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문인의 최고 영예로 꼽혔던 대제학이란 직책을 두 차례나 지냈다. 하지만 강직한 성격 때문에 임금 앞에서 바른말을 서슴지 않아 여러 차례 벼슬에서 쫓겨나야 했다. 귀양도 세 번이나 갔다. 남해에 유배 가 있을 동안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죄인의 몸이라 갈 수가 없어, 슬피 울부짖다가 병을 얻어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김만중은 주자주의가 지배하는 조선 왕조에서 집권 세력의 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주자주의로 일관했을 법하다. 하지만 훌륭한 가문이라서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때문인지, 주자주의에 대한 회의를 내비치기도 하고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기도 함으로써 진보적인 성향을 보여주어 주목된다. 국문학계에서 높이 평가하는 ‘국어문학론’도 그 한 예다. 우리 민요가 그 진실성 면에서 일반 사대부의 한시보다 나으며, 정철의 가사 작품은 중국의 명작인 굴원의 <이소(離騷)>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고까지 극찬함으로써, 우리 어문학 또는 민족문학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는 쪽으로 접근했다. 당시의 보편 문어였던 한문으로 써야만 글로 여겼던 당대 분위기에서 김만중의 이 같은 자각은 매우 이례적이고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옮긴이
이복규(李福揆)는 서경대학교(옛 국제대학)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한문초서 연수과정도 수료한 바 있다. 전공이 고소설이지만 고소설과 아주 가까운 관계인 우리 구전설화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데도 힘을 기울여, 탈북자를 통해 북한 구전설화를 조사하고,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구전설화도 채록했다. 고소설과 설화의 배경을 이루는 우리 민속에도 매력을 느껴 틈틈이 관련 논문이나 책을 쓰고 있다.
서경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서, 국제어문학회 회장, 국어국문학회 전공이사 겸 편집위원, 동아시아고대학회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종교민속연구회에 가담해 ≪종교와 조상 제사≫, ≪종교와 일생 의례≫ 등 종교·민속 관련 공동 저서를 제9집까지 출간했다.
1993년에 집문당에서 ≪임경업전 연구≫, 1998년에 집문당에서 ≪부여·고구려 건국신화 연구≫(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2009년에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임장군전≫과 ≪사씨남정기≫, 2018년에 지식과교양에서 ≪설공찬전의 이해≫, 2020년에 책봄에서 ≪톡톡 안녕하십니까≫, 새물결플러스에서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잡기≫ 등을 낸 바 있다. 그간 45종의 단독 저서와 23종의 공편저를 출간했다.
차례
서(序)
서포만필(西浦漫筆)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사람의 마음을 입으로 표현한 것이 말이고, 그 말이 리듬(節奏)을 갖춘 것이 시가문부(詩歌文賦)다. 사방의 말이 비록 같지는 않지만,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각각 그 말에 따라 리듬을 갖춘다면, 똑같이 천지를 감동시키고 귀신과 통할 수 있는 것이지 중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자기 말을 내버려 두고 다른 나라 말을 배워서 표현한 것이니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 여염집 골목길에서 나무꾼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에야디야 하며 서로 주고받는 노래가 비록 저속하다 해도 그 진실성 여부를 따진다면 결코 학사(學士)·대부(大夫)들의 이른바 시부(詩賦)라고 하는 것과 같은 기준으로 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