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 문학사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고전으로 취급된다. 교육과 문명을 거부하는 주인공 허클베리 핀이 직접 스스로의 경험을 회고하며 서술하는 자서전식의 글쓰기 방식을 택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전통적인 사고에 도전하는 미국의 신세계적 사고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흑인을 주인공의 동반자이자 분신으로 세우며 인종 차별을 과감히 풍자하면서도 미국 고유의 정서인 유머로 미국 문화의 토대를 조심스레 두드리는, 이 책의 중심 가치인 용기는 미국의 개척 정신과도 부합한다.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소설은, 그러나 제대로 빛을 보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 도서관 위원회는 이 책을 ‘쓰레기’로 판정하며 도서관 장서 목록에서 삭제하는가 하면 미국 전역에 걸쳐 많은 학교에서 이 작품을 학생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로 지정했다. 주인공 헉 핀이 거짓말과 욕설, 상스러운 말을 밥 먹듯이 하며, 당시 미국 사회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와 도덕성 그리고 학교 교육을 조롱하고 거부한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이 책의 흑인 표현은 아직까지도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흑인을 무시하는 용어인 ‘검둥이(nigger)’가 소설 지면에 300번에 가깝게 등장하고, 짐의 인물 묘사도 미신적이고 어리석어서 흑인 학생에게 모욕감을 준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마크 트웨인의 진의를 왜곡한 백인 중심적인 사고의 결과다. 흑인과 인간적으로 가까웠던 트웨인이 풍자와 기지를 섞어 가며 흑인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교묘한 노력에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백인 학자들은 트웨인은 흑인을 동정하기는 하지만 흑인을 다룰 때 심한 조롱 섞인 말투를 사용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트웨인이 흑인을 무시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흑인 학자 데이비드 스미스(David L. Smith) 박사는 트웨인의 탁월한 언어 사용 기술을 이렇게 설명한다. 즉, 흑인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이 얼마나 기막히게 말이 안 되는지를 표명하기 위해, 트웨인은 흑인에 대한 오해를 우스꽝스럽게 과장해서 풍자적으로 해체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여행기인《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여행 그 자체보다는 여행을 통해 주인공이 얻게 되는 각성이 중요한 주제로 제시된다. 헉과 짐은 동반자로서 미시시피강을 따라 함께 뗏목 여행을 하며, 짐은 노예 제도가 부여하는 육체적인 구속과 속박의 멍에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한편, 헉은 문명사회가 부여하는 모든 제약이나 구속에서의 해방, 즉 정신과 영혼의 자유를 추구한다. 이처럼 둘이 함께 자유를 추구하는 모습은, 독자에게 자유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동기와 용기를 선사한다.
200자평
헤밍웨이가 “미국의 모든 현대 문학은 마크 트웨인이 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책 한 권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했을 만큼 미국 문학사, 나아가 세계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원서발췌 시리즈로 선보이는 이번 책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흑백 갈등, 즉 헉과 짐이 연관된 부분을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해 원전의 감동을 충분히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지은이
마크 트웨인의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Samuel Langhorne Clemens)로 1835년에 태어나서 1910년에 사망했다. 사업가였던 아버지가 파산하자, 어린 나이에 인쇄소에서 식자공으로 일했고, 나룻배가 증기선으로 바뀌자 선원이 되어 배가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는 깊이인 ‘트웨인(수심 약 3.7미터)’을 ‘마크’, 즉 표시한다는 뜻으로 뱃사람들이 외치는 신호 “마크 트웨인”을 필명으로 선택했다. 1861년에 남북전쟁으로 수로가 폐쇄되자 형 오리온을 따라 네바다로 가서 은광 발굴과 투기에 열중했다. 투기에 실패하고 저널리즘에 투신해, 서부 유머 문학의 명수로 인기를 끌었다. 1865년 《뉴욕 신문》에 발표한 단편 〈뛰어오르는 개구리(The Celebrated Jumping Frog)〉로 일약 명성을 얻었다. 신문사 특파원으로 유럽과 성지를 도는 관광 여행단 참가 경험을 정리한 《시골뜨기의 외유기(The Innocents Abroad)》(1869)는 미국이 유럽에 대해 취했던 비굴한 태도와 구대륙의 부패와 위선을 비판하고, 건전한 미국 문화와 민주주의를 옹호한 유명한 베스트셀러였다. 1870년 동부의 부유한 탄광주의 딸 올리비아 랭혼(Olivia Langhorne)과 결혼해서 동부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며, 《야영(Roughing It)》(1872), 《톰 소여의 모험(The Adventures of Tom Sawyer)》(1876),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1882), 《미시시피강의 생활(Life on the Mississippi)》(1883), 《허클베리 핀의 모험(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1884), 《아서왕 궁의 코네티컷 양키(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1889), 《잔 다르크에 대한 개인적 회고(Personal Recollections of Joan of Arc)》(1896), 《적도를 따라서(Following the Equator)》(1897) 등 탁월한 해학이 담긴 걸작들을 발표했다.
옮긴이
김봉은은 서강대학교 영문학 학사와 석사, 국회 영어 번역관, 미국 마켓대학(Marquette University) 영문학 석사, 미국 테네시주립대학(The University of Tennessee, Knoxville)에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나타난 인종 문제를 주제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주립대학(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영문과에서 풀브라이트(Fulbright) 연구교수로 마크 트웨인과 미국 인디언 문학을 연구했으며, 마크 트웨인과 미국 인디언 문학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국내외에서 발표했다. 저서로는 《소수 인종의 문학으로 본 미국의 문화》, 《노튼 포스트모던 미국 소설》, 《미국 소설 명장면 모음집》, 《마트 트웨인의 모험》 등이 있다. 고신대학교 영어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허클베리 핀의 모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암만 좋은 일을 하려고 별러도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아 버렸다. 어렸을 적부터 좋은 일 하는 걸 배우지 못한 인간에게 기회는 와 주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고 나서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가만있자 내가 옳은 일을 해서 짐을 남의 손에 넘겨주었다면, 내 마음이 지금보다 더 편할까? 천만에, 기분이 좋지 않았을 거야. 아마 지금과 같은 기분이었을 거야. 나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옳은 일을 하는 데 힘이 들고, 나쁜 짓을 하는 데는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똑같다면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무 소용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젠 이 일에 대해 생각을 접고, 이제부터는 그때그때 제일 편리한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2.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그러고는 편지를 북북 찢어 버렸다.
그것은 끔찍스러운 생각이었고 무서운 말이었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내뱉은 말을 취소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 모든 생각을 머리에서 말끔히 씻어 버렸다. 다시 나쁜 짓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란 놈은 자라나기를 그런 식으로 자라났으니 나쁜 짓이 내 천성에 맞고, 착한 일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맨 첫 번째 일로 나는 짐을 다시 한번 노예 상태에서 훔쳐 내겠다고,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일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그것도 하겠다고 다짐했다. 나쁜 짓을 하기로 한 이상, 더구나 끝까지 하기로 한 이상, 철저하게 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