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원종성의 에세이를 읽으면 한국판 <큰 바위 얼굴>을 읽는 느낌이다. 잃어버린 진주를 찾으려는 간절함이 바로 ‘진주’라는 가르침은 불교의 화두지만 원종성은 원로 에세이스트답게 이를 장자(莊子)의 입술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에세이집에서 원종성이 주시하는 것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우리의 ‘발걸음’이다. 그 발걸음은 꿈이다. “꿈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내가 사는 동안 추구해야 할 삶의 의지(意志)”인 것이다. 그는 이 의지로 가득한 발걸음을 마음의 추상화를 그리는 행위, 그리고 그 그림 안으로 들어가서 체험하는 시간의 문제와 연계해서 독자들의 마음에 찍어 놓으려 한다. 골자부터 말하면 그런 발걸음이야말로 우리 마음의 추상화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라는 것이다.
원종성이 말하는 추상화는 그러한 얼굴의 기원에 대해서 묻는 그림이다. 점과 선과 면이 어지럽게 얽히며 짜인 그림이라서 원근법 같은 것도 중요하지 않다. 시간 또한 과거−현재−미래로 흐르지 않는다. 이 그림 속 세상은 내가 타인과 맺어야 할 ‘다른 관계’에 대해 보게 해 준다. 이 추상화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본 사람은 거기에 생사 문제와 관련된 “빛깔”이 자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빛깔로 가득한 추상화는 새로운 노래가 울려나오는 세계다. 이 마음의 추상화 안에는 종전의 마음 지도를 바꿔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마음의 프로그램은 이 에세이집에서 원종성이 그리고 있는 마음의 지도이기도 하다. 이 지도에는 장자가 심어 놓은 숱한 나무들과 그 나무에서 우는 새들이 있다. 더 따라가 보면 우리가 올라가야 할 어떤 생명의 능선 같은 것들도 거기 있다. 이전에 그린 마음의 지도는 한 번에 바뀌지 않는 법이다. 조금이나마 새로운 지도로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그리고 그런 생각을 지속할 때 우리의 마음 프로그램은 결국 바뀐다.
200자평
우리가 애타게 갈구하고 평생 찾아 헤매는 보물은 어디에 있을까? 그 보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원종성의 수필은 이 보물을 찾는 지도와 같다. 그의 글은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를 과거로, 고향으로, 삶의 본질로 인도한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찾아 헤매던 보물은 바로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지은이
원종성(元鍾盛)은 필명이며 본명은 원종목(元鐘睦)이다. 1937년 11월 27일, 강원도 횡성 치악산 자락에서 부 원치복 (元致馥) 모 김호필(金浩弼)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린상고와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명예 문학박사를 수여받았다.
1960년대는 원종성의 삶에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대와 같았다.
그의 문학 활동은 1963년에 유진오, 김옥길, 이항녕, 한하운, 천경자 등 각계 인사들이 모여 발족한 ‘공론(公論)’ 동인회에 참여하면서 시작된 셈이다. 그리고 월간 ≪세대(世代)≫지에 수필을 투고하면서 수필가의 길을 걷기 시작해, 현재 ≪월간(月刊)에세이≫ 주간(主幹)에 이르기까지 그가 수필과 연을 맺어 온 세월은 50년이 넘는다. 유소년 시절의 일제 강점기와 청년기의 6·25동란을 빼고 나면 그의 인생은 수필과 함께 동고동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그는 기업가이기도 했다. 1960년 초반에 한국에서 처음 엘리베이터 사업을 시작했다. 세계 여행 중에 이탈리아 아파트 공사장에서 처음 엘리베이터를 보았다. 그리고 한국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엘리베이터는 필수적일 거라는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당시 원종성은 세운상가에 처음으로 이탈리아제 피암(Fiam) 승강기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동양에레베이터”의 전신이 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 엘리베이터 협회 초대 회장직에 있으면서 당시 재정난으로 폐간 위기에 몰려 있는 월간 교양지 ≪수상(隨想)≫을 오소백, 김지하와 함께 물려받았다. 하지만 ≪수상≫은 그에게 시련과 문단의 패거리 문화에 대한 실망을 남겨 주었다. 결국 그는 출간된 잡지와 단행본 등 트럭 12대분을 한국제지 양잿물 속에 쏟아 버리고 문예지 출판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수필 문학에 대한 꿈은 지워지지 않았다. 1981년에 한국문인협회 수필 분과 회장에 선임되고 그 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거치면서 기업인으로서 한국 문학의 제도권 안에 수필 문학을 정착시키고자 노력했다. 당시 그는 김동리 선생과 종종 교분을 나누었는데, 김동리 선생은 원종성에게 “이보게, 사업하는 만큼 문학도 그만큼 하게” 하고 당부했다 한다. 그 말씀은 늘 그의 뇌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런 연유로 자연스럽게 수필 전문 문예지를 창간해야겠다는 의지로 1987년 봄 ≪월간에세이≫가 탄생하게 된다. 그 창간사에서 제호(題號)를 ‘수필’이라 하지 않고 ‘에세이’라 한 연유에 대해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되 아무렇게나 써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음을 단호하게 밝혔고 수필가를 위한 문예지가 아니라 수필 독자를 위한 문예지가 될 것임을 천명했다. ≪월간에세이≫가 창간 30주년을 목전에 둔 오늘까지도 창간사에서 밝혔던 뜻을 불문율로서 고수해 왔다.
그가 자신의 수필 창작에 대한 열의를 억제하면서 수필 문학이 보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해 ≪월간에세이≫가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도록 혼신의 정열을 쏟아왔음은 ≪월간에세이≫ 그 자체로써 증명된다. 그는 2012년 ≪월간에세이≫가 창간 25주년이 되었을 때, 장석남 시인이 보내 준 축사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월간에세이는 내 삶의 후원(後園)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낮이 있다면 반드시 저녁이 있습니다. 그 저녁의 짧은 시간이 어쩌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 같은 잡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다작(多作)보다는 긴 창작의 산고(産苦)를 거쳐서 작품을 일구어 내는 수필가다. 그런지라 1991년에 발표한 ≪향 싼 종이에선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 난다≫는 대표적 수필집이 3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그의 <나의 자화상>은 중등 국어 교과서에, <큰 바위 얼굴>은 고등학교 작문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간행된 그의 수필집은 ≪1234569≫, ≪빛은 빛으로 남아≫, ≪엉뚱한 추억의 나래≫, ≪木木の攝ぎ≫(일역판), ≪영원이 오는 자리≫, ≪향 싼 종이에선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 난다 1, 2≫, ≪빨간 우체통≫, ≪노자의 세 가지 보물≫, ≪인사동 골목은 좁아야지≫, ≪돌아온 메아리는 언제나 있고≫ 등이다. 한국수필문학상, 국제PEN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해설자
최종환은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차례
향 싼 종이 1
창문을 여는 마음
봄이 오는 소리
한 노인의 쏘가리 사냥
참나물 비빔밥
첫겨울에 만나는 고갱
낯선 그림을 보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들
장자(莊子)의 능청 1
장자(莊子)의 능청 2
장자(莊子)의 능청 3
장자(莊子)의 지혜(智慧)
노자(老子)의 영언(永言) 1
노자(老子)의 영언(永言) 2
노자(老子)의 영언(永言) 3
노자(老子)의 영언(永言) 4
대궐 안의 강아지
두보(杜甫)는 울지 않는다
서울과 베이징의 먼 길 1
서울과 베이징의 먼 길 2
논어(論語)의 충고(忠告) 1
논어(論語)의 충고(忠告) 2
논어(論語)의 충고(忠告) 3
논어(論語)의 충고(忠告) 4
논어(論語)의 충고(忠告) 5
만리장성에서 만난 부자(父子)
내가 향(香)이라면
토중석(土中石)의 묘미(妙味)
정수동(鄭壽銅)의 기지
달동네와 명당(明堂)
슈베르트의 겸손
밤의 단상(斷想)
우공(愚公)의 꿈
황금 두 덩이
술 낚시에 걸린 벼슬
향 싼 종이 2
땡감과 곶감 인생
내 안에 놓여진 길에 관한 단상
황희 정승의 훈계
‘큰 바위 얼굴’을 보자
나의 자화상
인사동 골목
인사동 골목
시인의 집
애벌레 밥상
동그라미 감옥
신들의 귀띔
시간에 숨겨진 비밀 지도
느리게 가는 기차
손녀와 사동(使童)
≪월간에세이≫와 병사
빨간 우체통
4월의 편지
청제비
등성이 소나무의 꿈과 배반
해설
지은이에 대해
해설자에 대해
책속으로
과거를 생각하라. 그러면 마음속의 그림자들이 상처인지 환희인지 마음이 알게 될 것이고 상처의 그림자들은 상처에 기댄 것이고 환희의 그림자들은 환희에 기댄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상처의 그림자이거든 아파하고 영광의 그림자이거든 기뻐하여도 된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간 사실이다. 어디로 지나갔을까?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것을 알라. 그러면 인간의 시비가 허망한 것임을 알 게다. 이렇게 장자(莊子)는 능청을 경(景)과 망량(罔兩)의 대화로 떨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대화를 마음속으로 옮겨 본다면 누구나 마음속에 걸려 있는 그림자들이 얼마나 무서운 과거인가를 말해 줄 것이고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도 말해 줄 것이다.
<장자(莊子)의 능청 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