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삼국지≫의 바탕이 되다
≪위진세어≫는 제목 그대로 위나라와 진나라의 유명한 역사 인물에 대한 소문들을 기록한 것이다. 역사 기록처럼 완전히 사실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저자인 곽반이 당대에 직접 보고 듣고 읽은 소문을 엮은 것이라 비교적 신뢰도가 높으며, 시대 특성상 국가 대사에 관한 이야기의 비중이 크다. 이로 인해 이후 역사가들이 위진대의 역사서를 편찬할 때 ≪위진세어≫를 참고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삼국지≫와 ≪진서≫, ≪수경주≫ 등의 편찬에 많은 사료를 제공했다. ≪삼국지≫의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캐릭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은 ≪위진세어≫로부터 비롯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소설의 시조가 되다
≪위진세어≫와 같이 역사의 일화를 기록한 것을 역사쇄문류(歷史瑣聞類) 필기 문헌이라고 한다. 루쉰은 괴이한 일들을 다룬 지괴 소설(志怪小說)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실제 역사 인물의 일화를 그린 소설을 지인 소설(志人小說)이라고 명명했는데, ≪위진세어≫는 실존 인물의 언행과 풍모를 전문적으로 그린 위진 남북조 최초의 지인 소설이다. 역사 인물을 다뤘지만 단순한 사실 기록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형상화와 배경 세부 묘사에 중점을 두고 적절한 허구와 과장을 가미해 ‘소설’로서의 특성을 갖췄다. 이렇게 역사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은 기록들은 이후 ≪세설신어≫를 비롯한 각종 지인 소설에 여러 차례 채록되었으며 중국 고대 소설 형성의 기틀이 되었다.
≪위진세어≫ 연구의 첫 문을 열다
그러나 ≪위진세어≫는 그 역사적, 문학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10권이나 되던 원전이 망실되어 그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아직 체계적인 집일이나 교주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지식을만드는지식 ≪위진세어≫는 세계 초역일 뿐 아니라 이 작품의 연구를 위한 원전 텍스트를 복원, 정립하는 첫걸음이 된다.
연세대 김장환 교수는 각종 문헌에 남아 있는 일문들을 집일하고 교감해 세계 최초로 정본을 확립했으며 이를 우리말로 옮기고 독자 이해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더했다. 옮긴이가 집록한 일문 159조 중 145조는 ≪위진세어≫ 본문에 수록하고, ≪위진세어≫의 일문으로 보기 어려운 춘추 전국 시대의 고사와 325년 이후의 고사 14조는 부록으로 수록했다. 연구자들을 위한 원문과 교감주도 함께 실었다.
200자평
위나라와 진나라의 유명한 역사 인물에 대한 소문을 기록한 책이다. ≪삼국지≫와 ≪진서(晉書)≫의 바탕이 되었으며, ≪세설신어≫를 비롯한 수많은 소설과 희곡의 모티프가 된, 역사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중요한 작품이다. 원본이 망실되어 그간 연구가 부족했으나 김장환 교수가 각 문헌의 일문을 집일, 교감해 세계 최초로 정본을 확립했다.
지은이
≪위진세어≫의 찬자 곽반(郭頒)은 사서(史書)에 그의 전(傳)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행적을 거의 알 수 없지만, 관련 전적에 보이는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 그 대강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곽반은 서진(西晉) 때 사람으로 자가 장공(長公)이고, 처음에 영사(令史)를 지내다가 나중에 지방관으로 나가 양양령(襄陽令)이 되었으며, 동진(東晉) 초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진세어≫ 10권 외에 ≪군영론(群英論)≫ 1권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모두 망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옮긴이
김장환(金長煥)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지인소설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2004∼2005), 같은 대학교 페어뱅크 센터(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 객원교수(2011∼2012)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이다.
그동안 쓴 책으로 ≪중국 문학의 흐름≫, ≪중국 문학의 향기≫, ≪중국 문학의 향연≫, ≪중국 문언 단편 소설선≫, ≪유의경(劉義慶)과 세설신어(世說新語)≫, ≪위진세어 집석 연구(魏晉世語輯釋硏究)≫, ≪동아시아 이야기 보고의 탄생−태평광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중국 연극사≫, ≪중국 유서 개설(中國類書槪說)≫, ≪중국 역대 필기(中國歷代筆記)≫, ≪세상의 참신한 이야기−세설신어≫(전 3권),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전 4권), ≪세설신어 성휘운분(世說新語姓彙韻分)≫(전 3권), ≪태평광기(太平廣記)≫(전 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 8권), ≪봉신연의(封神演義)≫(전 9권), ≪당척언(唐摭言)≫(전 2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고사전(高士傳)≫, ≪어림(語林)≫, ≪곽자(郭子)≫, ≪속설(俗說)≫, ≪담수(談藪)≫, ≪소설(小說)≫, ≪계안록(啓顔錄)≫, ≪신선전(神仙傳)≫, ≪옥호빙(玉壺氷)≫, ≪열이전(列異傳)≫, ≪제해기(齊諧記)·속제해기(續齊諧記)≫, ≪선험기(宣驗記)≫, ≪술이기(述異記)≫, ≪소림(笑林)·투기(妬記)≫, ≪고금주(古今注)≫,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 ≪원혼지(寃魂志)≫, ≪이원(異苑)≫, ≪원화기(原化記)≫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 논문이 있다.
차례
위세어
1. 조숭
2. 교현
3. 태조
4. 중모현의 공조
5. 위자
6. 정욱
7. 진궁
8. 왕필
9. 응소
10. 장기
11. 조 공
12. 조앙
13. 양덕조
14. 원소의 병력
15. 조 공의 병력
16. 최계규
17. 유비
18. 견후
19. 설제
20. 공융의 아들
21. 양곡
22. 조식의 부인
23. 곽심
24. 오질
25. 등애
26. 하후칭과 하후영
27. 위풍
28. 양수
29. 탁룡사의 나무
30. 하후돈
31. 조위
32. 공계
33. 조상과 명제
34. 주양성
35. 외희
36. 어환
37. 석경
38. 명제 때의 경학박사
39. 양위
40. 유엽
41. 진건
42. 진본
43. 사총·팔달·삼예
44. 선비족 노비
45. 만총
46. 화흠
47. 제갈무후
48. 신비
49. 제갈량·제갈근·제갈탄
50. 닭 모양의 그림
51. 우송
52. 사마선왕
53. 유방과 손자
54. 조조
55. 주태
56. 하안
57. 하후현
58. 종회
59. 조상 형제
60. 조상의 꿈
61. 손겸
62. 장제
63. 조상
64. 노지와 양종
65. 곽회
66. 하후패
67. 하후연의 아들들
68. 정효
69. 이풍
70. 이풍
71. 하후현
72. 이익
73. 사마문왕
74. 혜강
75. 관구검 정벌
76. 두우
77. 관구전
78. 부하
79. 제갈탄
80. 오강
81. 만장무
82. 석포
83. 왕경
84. 상웅
85. 왕경
86. 왕업
87. 여소
88. 신헌영
89. 종육 형제
90. 종회
91. 강유
92. 강유
93. 사찬
94. 거대한 물고기
95. 곽창
96. 완씨 집안사람들
진세어(晉世語)
97. 손초
98. 손자형
99. 옥장
100. 왕혼
101. 장효
102. 노흠
103. 왕순
104. 반양중
105. 왕융과 화교
106. 완혼
107. 교단의 개
108. 능운대
109. 유표의 무덤
110. 위관
111. 순우
112. 환능
113. 사마예
114. 위관과 색정
115. 허기와 허맹
116. 민회태자
117. 배 복야
118. 진수
119. 동수
120. 왕돈
121. 가모
122. 한나라 때의 철추
123. 유식
124. 등낭
125. 임랑의 주옥
126. 왕기
127. 양남·양의·양침
128. 노지
129. 최양
130. 화회
131. 유초
132. 곽박
133. 조협
134. 포남해
135. 공연
136. 주백인
137. 왕세장
138. 두이
139. 부선과 부창
140. 원종
141. 백자고
142. 성법제
143. 오환
144. 교응
145. 푸른 꿩
부록 : ≪위진세어≫의 일문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고사
1. 백리해
2. 왕자교
3. 사인조
4. 학융
5. 강유
6. 왕동정
7. 석의
8. 고장강
9. 손성
10. 왕자유
11. 범영
12. 서막
13. 왕효백
14. 은중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유비(劉備)가 번성(樊城)에 주둔하고 있을 때 유표(劉表)가 그를 예우했는데, 그의 사람됨을 꺼려 그다지 신임하지는 않았다. 일찍이 유비를 연회에 초청했을 때, 괴월(蒯越)과 채모(蔡瑁)가 그 기회를 틈타 유비를 잡아들이려 했는데, 유비가 알아차리고 거짓으로 측간에 간다고 하면서 몰래 도망쳐 나왔다. 유비가 타는 말은 적로(的盧)라고 했는데, 유비가 적로를 타고 달리다가 양양성(襄陽城) 서쪽 단계(檀溪)의 물속으로 떨어져 빠진 채로 나올 수 없었다. 유비가 다급하게 말했다.
“적로야, 오늘처럼 곤궁한 지경에 어찌하여 힘을 쓰지 않느냐!”
적로가 [유비의 말을 알아듣고] 단번에 세 길을 뛰어올라 마침내 지나갈 수 있었다. 유비가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 중류쯤 갔을 때 추격병이 도착해 유표의 뜻을 전하면서 사과하며 말했다.
“어찌하여 그렇게 속히 떠나시오!”
태조(太祖 : 조조)가 업성(鄴城)을 공략했을 때, 문제(文帝 : 조비)가 먼저 원상(袁尙)의 관부(官府)로 들어갔는데, 어떤 부인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때 묻은 얼굴로 눈물을 흘리면서 원소(袁紹)의 부인 유씨(劉氏)의 뒤에 서 있었다. 문제가 물었더니 유씨가 대답했다.
“원희(袁熙)의 처입니다.”
그녀가 돌아보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비녀를 꽂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는데, 용모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다. 문제가 가고 난 뒤에 유씨가 견후(甄后)에게 말했다.
“죽을 것을 걱정하지 마라!”
견후는 마침내 문제에게 간택되어 총애를 받았다.
위왕(魏王 : 조조)이 일찍이 출정할 때, 세자(世子 : 조비)와 임치후(臨菑侯) 조식(曹植)이 함께 길옆에 있었다. 조식이 위왕의 공덕을 칭송했는데, 말을 하면 바로 문장이 되었기에 좌우 신하들이 눈여겨보았으며 위왕도 기뻐했다. [이를 본] 세자가 기가 죽어 낙심하자, 오질(吳質)이 세자의 귀에 대고 말했다.
“왕께서 떠나실 때 그저 눈물만 흘리면 됩니다.”
작별할 때 세자가 울면서 절하자, 위왕과 좌우 신하들이 모두 흐느껴 울었다. 그리하여 모두들 조식은 문사(文辭)가 매우 화려하지만 성심(誠心)이 세자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