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유주현은 철저한 사실주의자였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그는 시대를 반영한 작품을 썼고,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모순됨을 직시하였다. 6·25전쟁의 비극성과 전후의 황폐함, 이승만 정권의 폭압 정치와 4·19혁명, 그리고 전통사회의 붕괴 등 그 시대가 짐지고 있는 가장 무거운 십자가를 지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소설들을 썼다. 미학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고 다소 미흡한 점도 보였지만 주제의식의 튼튼함에 있어서는 별다른 흠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1964년부터 역사소설로 전환을 꾀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긴 했지만 1950∼1960년대 우수한 중·단편소설을 쓰던 작가가 상업성을 띤 신문연재소설과 역사소설로 가버린 것은 한국 소설계로 봐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200자평
신문 연재 소설가로 성공한 작가 유주현. 그러나 그의 단편 소설은 당대 사회상과 인간의 모순을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충실히 드러낸다. 그의 작가 정신이 잘 드러난 문제작 중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7편의 단편을 엮었다.
지은이
유주현은 1921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조부 세열 씨는 성리학자로 인근에 이름이 높았는데 항일의병운동에도 참가한 애국자였다. 어렸을 때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들은 이야기는 훗날 일제 강점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 <조선총독부>와 <대한제국>의 밑거름이 된다. 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원산, 청진 등을 방랑하다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고학하면서 와세다대학 전문부를 다닌다. 졸업은 하지 못하고 귀국한 이후 소설 쓰기에 전념해 1948년 <백민>에 <번요(煩擾)의 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국방부 편집실 편수관이 되어 기관지 <국방>을 편집한다. 1·4후퇴 때 대구로 피난 가 있는 동안 공군문인단을 창설하여 기관지 <창공>의 편집간사가 된다. 1952년 대구에서 월간 <신태양> 편집에 참여했고 1954년 서울로 올라온 이후부터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이 해에 장편 <바람 옥문을 열어라>를 <신태양>에 연재한 이후 유주현은 1960∼1970년대 내내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문연재소설가로서 이름을 떨친다. 이 기간 동안 20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신문과 문예지에 연재하는 왕성한 필력을 보여준다.
1974년, 나이 54세 때 유주현은 생의 전환점에 서게 된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출강하기 시작했고 동료문인들과 함께 한국소설가협회를 창립, 초대회장에 취임한 것이다. 다음해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취임하여 제자 양성에 애를 쓰지만 교수 생활은 오래 가지 못한다. 유주현은 1978년, 척추골절로 병상에 누우면서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강의도 거의 중단하고 만다. 환갑을 갓 넘긴 1982년에 5월 26일에 숙환으로 사망,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태평리 선산에 묻힌다.
엮은이
이승하는 1960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김천에서 성장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공포와 전율의 나날≫ 등이 있고, 시론집으로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 ≪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패배자
하일원정
온천장 야화
인생을 불사르는 사람들
투정
밀고자
허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정심은 그 길로 남편 현수 앞에 몸을 던지며 흐느껴 울었다. 울부짖었다.
“물에라도 꼭 빠지고 싶었지만 또 지꾸진 사람들이 건져놓고선 진실되게 살라고 설교할 것이 두려웠어요…”
그러나 현수는 이미 정심의 이 울부짖음을 듣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마지막 맥박이 팔딱하는 순간이었다. 음독이다. 천정으로는 쥐가 우르르 지나간다.
-<패배자>